2015년 8월 별세한 이맹희 CJ 명예회장의 시신과 영정을 유가족들이 운구하고 있다.
2015년 8월 별세한 이맹희 CJ 명예회장의 시신과 영정을 유가족들이 운구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별세한 고(故) 이맹희 CJ 명예회장의 유산을 이재현 CJ회장, 이미경 CJ 부회장, 이재환 재산커뮤니케이션즈 사장 등 자녀들이 사실상 상속받지 않기로 했다. 자산은 거의 없고 부채만 180억원가량 남겼기 때문이다.

9일 부산가정법원은 1월 20일 이 명예회장의 부인 손복남 CJ제일제당 고문과 이재현 회장 3남매가 낸 ‘한정상속승인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재현 회장, 이미경 부회장 등은 2015년 11월 한정상속승인 신청을 냈다. 이 명예회장의 국내 거주지로 등록된 곳의 관할 법원인 부산가정법원에서다.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이 명예회장이 남긴 자산은 6억원 정도지만 채무는 18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CJ 관계자는 “이 명예회장이 해외 체류하는 동안 발생한 채무가 있는데 전체 규모가 얼마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한정 승인을 신청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명예회장은 1970년대 삼성의 후계 경쟁에서 밀려난 뒤 해외 생활을 오래 했다. CJ 측의 설명은 이 과정에서 우발 채무가 발생했을 가능성 때문에 한정상속을 신청했다는 얘기인 셈이다.

재계에 따르면 이 명예회장이 진 빚 가운데 대부분은 동생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의 차명 재산 상속 분쟁 과정에서 소송 비용을 대느라 발생했다. 2012년 이 명예회장은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고 이병철 창업주가 생전에 제3자 명의로 신탁한 계열사 주식과 거기에서 발생한 배당금 등 총 9400억원 규모의 재산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패소했다. 이 과정에서 인지대와 변호사 선임비, 상대방인 이건희 회장 측 소송비용까지 총 200억원 정도가 쓰였다.

당시 이 명예회장을 대리했던 법무법인 화우는 “이 명예회장으로부터 관련 비용을 지급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명예회장이 인지대와 변호사 비용을 어디에서 조달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재벌닷컴 보도에 따르면 이재현 회장은 보유한 CJ그룹 계열사 지분 가치만 2조9800억원에 달한다. 이미경 부회장은 CJ 계열사 주식 44억원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이재현 회장은 2015년 12월 조세포탈(251억원), 횡령(115억원), 배임 등의 혐의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현재 만성신부전증과 유전질환인 샤르코마리투스(CMT) 등으로 장기간 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하고 있으며, 구속집행정지 중이다.


한정상속(限定相續)
한정상속은 상속을 받는 사람이 상속 재산을 모두 인계 받지 않고, 그 가운데 자산을 매각해 일부 부채를 갚고 나머지는 물려받지 않는 것이다. 일부 채무만 상환하고 나머지는 상속을 포기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법원의 별도 허가가 필요하며, 허가가 나면 신청인이 사망자의 재산과 채무 목록을 작성해 법원에 제출한다. 만약 숨겨진 재산이 있거나 자산이 축소 신고돼 있을 경우 채무자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2015년 서울가정법원에서 3798건이 신청돼 3643건이 받아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