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 고백이나 생일 축하에 빠지지 않는 장미는 우리나라 화훼농가의 대표 품종이다. 하지만 생산농가나 소비자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국내 대부분의 장미는 외국산이다. 이들 장미의 로열티는 1주당 2000~2500원에 달한다. 높은 로열티는 장미 농가의 경영을 악화시키는 주범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산 품종 개발을 통해 로열티 극복에 앞장서고 있는 ‘장미 명인’이 있다.
2월 23일 경남 김해시 진례면의 도원장미원. 한겨울 추위가 맹위를 떨쳤지만 비닐하우스 안에는 빨강, 분홍, 하얀색 장미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모두 국산 장미다. 8250㎡(2500평)에 달하는 도원장미원의 지난해 매출은 3억원이 넘는다. 도원장미원의 김원윤(65) 대표는 우리나라에 한 명뿐인 최고농업기술 장미 명인이다.
장미농사를 짓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군대를 제대하고 사진관을 했었어요. 그러다 둘째 형이 장미농사를 짓는 걸 보고 뛰어들 결심을 하게 됐어요. 돈이 꽤 됐거든요.(웃음) 25살이던 1975년이니까 이제 40년이 넘었네요.”
농사 경험도 없었는데, 장미 재배가 수월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장미농사에 뛰어들 당시는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었죠. 난방에서 품종 선택에 이르기까지 온갖 시행착오를 거쳤어요. 고비도 많았죠. 1977년 2차 석유파동 때는 장작을 직접 패가며 치솟는 기름 값과 싸웠어요. 1979년에는 화재로 목조 시설하우스가 몽땅 타버리기도 했죠. 1987년 7월 태풍 ‘셀마’ 때는 시설하우스가 폐허로 변했어요. 단 한 포기의 장미도 못 건졌고, 5억원가량의 빚더미에 올라앉았죠. 장미농사를 접을까 생각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어요.”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장미 재배 농가 대부분은 외국산 품종에 의존하고 있었다. 김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품종보호권에 대한 인식이 없던 때라 외국 품종을 무분별하게 재배했다. 그는 “로열티가 전체 비용의 30% 정도를 차지한다”며 “로열티를 주고 나면 남는 게 없었고 태풍 같은 자연재해가 닥치거나 병충해 방제를 잘못하면 적자였다”고 말했다. 그가 2005년 국산 장미품종 개발에 뛰어든 것도 이 때문이다.

품종개발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외국 품종보다 더 우수한 품종을 개발하겠다는 오기로 시작했죠. 경남농업기술원이 개발한 국산품종을 도입해 품종 개발에 나섰어요. 외국 품종과 국산 품종을 수백차례 교배해 거기서 한 품종을 골라내는 식이죠. 99%가 실패이고, 성공은 단 1%예요. 한 품종을 개발하는 데 3~4년이 걸렸어요.”
지난 10여년간 그가 이렇게 개발한 품종은 6종이다. 그동안 그를 포함해 농촌진흥청 등에서 개발한 국산 장미 품종은 모두 152개다. 우리나라 장미시장에서 국산 품종이 차지하는 비율도 2004년 2.3%에서 지난해 30%에 육박할 정도로 늘었다. 10여년 동안 10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국산 품종이 늘어나면서 농가의 로열티도 많이 줄었다. 국산 품종의 로열티는 1000원 정도다. 1ha(3000평)에 국산 장미를 재배한다면 6000만원가량의 로열티를 절감할 수 있다.
국산 장미 보급이 더디다고 합니다.
“처음으로 국산 장미를 개발하고 재배할 때 주위에선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어요. 국산 장미는 품질이나 수확량, 병충해 등에 대한 위험 부담 때문에 농가들이 재배를 꺼리거든요. 하지만 계속된 품종 개량 등으로 보급이 차츰 확대되고 있어요.”
국산 장미를 수출도 합니까.
“지난 2009년 48만달러어치의 국내산 장미를 일본에 팔았어요. 에콰도르에는 품종을 수출하기도 했고요. 요즘은 수출 가격이 낮아져 국내 판매에 주력하고 있어요.”
그는 국내 장미농가에 국내산 장미의 우수성을 알리고 재배 확대를 위해 사비를 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2007년부터 7년간 여섯 차례에 걸쳐 국산장미 품종 현장 평가회를 농장에서 직접 열었다. 2010년 태풍 ‘곤파스’로 피해를 입은 충남 서산 장미재배농가에 자신이 개발한 ‘필립’과 ‘한마음’ 등 5만본을 기증하기도 했다. 태풍 피해 농가를 돕는다는 뜻도 있지만 우수한 국내산 장미 품종의 재배를 확대해 화훼산업을 활성화한다는 데에 더 큰 의미를 뒀다.
“이제 국내산 장미의 품질이 외국산에 비해 더 좋습니다. 외국산만 고집할 게 아니라 국산 장미에 더 큰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우리 품종으로 해외에서 로열티를 받을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