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대 ‘컴퓨터’의 세기의 대결이 막을 내렸다. 대국을 지켜본 전 세계인은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가 개발한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의 발전 속도와 정확한 계산 능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경기는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AI) 기술이 미래 도래할 ‘4차 산업혁명(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1차 산업혁명이 물과 증기의 힘을 이용한 기계적 혁명이었다면, 2차 산업혁명은 전기와 노동의 분업화를 통한 대량생산체제의 구축이었다. 뒤이은 3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생산의 자동화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앞으로 다가올 4차 산업혁명은 변화의 속도와 범위, 사회적 파급효과 측면에서 기존의 산업혁명을 훨씬 능가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러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핵심 기술에는 앞서 언급한 AI 외에도 빅데이터(Big Data), 가상현실(VR), 사물인터넷(IoT), 그리고 핀테크(FinTech)가 있다.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핀테크는 금융산업에 커다란 변혁을 일으킨 파괴적 기술 중 하나다. 그동안 글로벌 핀테크 산업은 금융 강국인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미국은 압도적인 기업 수와 관련 투자 규모 면에서 핀테크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8년 정보기술을 무기로 기존 금융체제에 도전하는 핀테크 기업들이 금융위기 상황 속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후 실리콘밸리의 기술력과 뉴욕의 발달한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핀테크 산업 생태계가 조성됐다.
전통적 금융 강국인 영국에서는 런던의 국제금융센터와 스타트업 클러스터인 테크시티(Tech City)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빠르게 핀테크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특히 테크시티 내에 있는 ‘레벨(Level) 39’은 유럽 최대의 핀테크 클러스터로 관련 분야 성장의 견인차 구실을 하고 있다.
최근 KPMG는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The Fintech 100 Global Innovators)’ 보고서를 발간하며 글로벌 핀테크 기업 100개를 선정했다. 자본 규모와 시장 영향력,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성 등 다양한 요소를 바탕으로 핀테크 업계 선도 기업 50개와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기업 50개가 꼽혔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100개 기업 중 미국이 34개로 가장 많은 핀테크 유수 기업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18개), 호주(9개), 중국(8개), 이스라엘(6개)이 그 뒤를 이었다.
이번 발표에서 눈에 띄는 점은 중국 핀테크 기업들의 약진이다. 핀테크 분야에서 중국은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인다.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 중 중국의 핀테크 기업은 8개로 아시아 지역 전체 12개 중 3분의 2를 차지했다. 특히 마윈 알리바바 회장, 마화텅 텐센트 회장 등이 함께 2013년에 설립한 중국의 온라인 보험회사 ‘종안보험(ZhongAn)’이 전체 글로벌 핀테크 기업 순위에서 1위에 선정됐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유일하게 중국만이 ‘세계 핀테크 기업 톱 10’에 자국 기업을 올려놨다.
중국은 미국, 유럽보다 늦은 2012년에 본격적으로 핀테크 산업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중국에서는 인터넷 및 모바일 이용인구 증가와 더불어 제3자 결제시장, P2P(개인 간) 대출 중개를 중심으로 핀테크 산업이 빠르게 성장했다. 핀테크 산업의 신흥 강국으로 발돋움한 중국의 핀테크는 자산관리, 인터넷 전문은행, 크라우드펀딩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중국에서 핀테크 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주요 요소 중 하나는 중국 정부의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태도였다. 중국 정부는 핀테크 산업을 관리, 감독하면서 두 가지 원칙을 고수했다. 첫째는 신성장 동력을 보호하면서 시장의 자율성 유지를 위해 반시장적 규제를 가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금융시장의 기본적인 규율을 따르도록 함으로써 구조적인 시스템 리스크를 예방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신성장 동력으로서의 핀테크에 대해 시장의 자율성에 기반을 둔 성장을 도모하려 했다는 것이다. 즉, 핀테크 규제에서 창의적인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는 미시적인 규제는 삼가고 건전한 생태계 조성을 위한 거시적인 규제에 더욱 초점을 뒀다.
국내 핀테크 시장은 이제 막 태동한 상황이다. 우리 정부 역시 핀테크 생태계를 활성화하고 국내 핀테크 산업이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핀테크 산업 육성을 위해 은행 및 보험권의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 폐지, 크라우드펀딩 입법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 인터넷 전문은행 예비 사업자 인가 등 법적, 제도적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 변화의 핵심은 기업들의 자율성 강화를 위한 생태계 조성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 핀테크 기업들도 이러한 제도 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춰나가기를 기대한다.
▒ 김범석
중앙대 경영학 박사, 호주 퀸즐랜드대 MBA, KPMG 호주 사무소, 한국공인회계사회 기획이사, (사)스페셜올림픽코리아 감사, 현 삼정KPMG 부대표 겸 삼정KPMG 경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