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동주(吳越同舟, 서로 적의를 품은 사람끼리 같은 처지에 있음을 비유)와 와신상담(臥薪嘗膽, 복수나 목적을 위해 괴로움을 참고 견딤)의 무대, 춘추시대 오(吳)나라와 월(越)나라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월왕 구천(句踐)은 오왕 부차(夫差)에게 회계산에서 패하여 겨우 목숨만 유지한 채 오나라로 끌려가 온갖 수모를 감내한다. 오나라에서 풀려난 구천은 복수를 다짐하고 경제전문가인 계연(計然)을 기용하여 그에게 전권을 맡긴다. 도주공(陶朱公) 범려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 계연은 약 2600년 전 인물이다.
사마천은 ‘화식열전’에서 계연이 월나라를 일으켜 구천을 패자(覇子)의 지위에 오르게 한 묘책을 소개하고 있다. 계연은 사업이란 전쟁과 같다고 보았다. 전쟁을 아는 사람이 평시에 군사 준비를 하듯이 상품을 세상의 흐름에 맞추어 유통시키려면 시기에 따라 필요한 물품을 사전에 충분히 비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각종 상품의 시세를 정확하게 관찰하고 파악해야 한다는 뜻이다.
계연의 이론에 귀를 귀울여 본다. 먼저 물자의 등락을 장악하는 방법론으로 든 사례이다. “큰 가뭄이 있은 뒤에는 반드시 홍수가 있기 때문에 곧 미리 배를 잘 준비해 두고, 큰 홍수 뒤에는 반드시 가뭄이 있으므로 홍수가 난 해에는 곧 미리 수레를 준비해야 한다.” 이어 그는 풍년이 든 해에 흉년을 준비하고, 기아가 창궐할 때 풍년을 예비하라. 물가가 높이 오를 때 가격 폭락을 예측하고, 물가가 폭락했을 때 미리 물가 폭등이 곧 다가올 것을 예측하라고 한다. 국가경제의 기본인 물가안정책을 최초로 제시한 사람이 바로 계연이다.
다음은 물자 비축론이다. “쉽게 저장할 수 있는 물건을 견실하게 비축하되 지나치게 오래 보관하지 않음으로써 자금 회전을 쉼 없이 해야 한다. 만약 상품의 교역을 진행할 때에는 쉽게 부패하거나 부식되는 물자는 절대로 오래 비축하지 말 것이며 특히 희귀한 물건을 쌓아놓고 이익을 노려서는 안 된다.”
사치품이나 희귀품을 매점매석하여 폭리를 취하지 말라는 건전한 상도의를 강조하고 있다. 계연은 물건과 화폐는 마치 흐르는 물과 같이 끊임없이 유통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물자의 가격이 올라 일정한 수준을 넘게 되면 마치 인분(人糞)을 보듯이 하여 한 점 주저함이 없이 내다 팔아야 하고, 가격이 떨어져 일정한 수준에 이르게 되면 물건을 마치 진주 보듯이 하여 주저함 없이 사들이라”고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인간의 심리를 절묘하게 간파한 상품의 유통론이 아닌가! 계연의 상품경제학은 완전히 예측과 운용, 응변의 지혜를 활용한 것으로 손자병법의 “기묘한 계책을 잘 내는 자는 천지와 같이 막힘이 없고 강과 바다처럼 마름이 없다.(세편, 勢篇)”의 경지와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
수요예측한 계연과 오나시스 닮은 꼴
이와 같은 계연의 정책을 채택하여 시행한 지 10년 만에 월나라 경제는 부유해져서 구천은 군사들에게 후한 보상을 내렸다. 그때 병사들이 사기충천 하여 전쟁터로 용맹하게 전진하는 모습을 사마천은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얻은 듯하다”고 묘사하고 있다. 드디어 구천은 부차에게 복수를 하고 강대한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이어 구천은 군사를 북상시켜 중원에서 군대를 사열하고 위세를 과시하여 ‘춘추 5패(五覇)’의 하나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적절한 시기에 정확하게 시장을 예측하는 것은 경영자(CEO)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부를 이룰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정확한 예측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사마천이 화식열전에서 다룬 탁월한 화식가(상인)들은 모두 시장의 변화를 파악하고 예측하는 데 능한 전문가들이었다. 그러한 현대의 유명한 화식가로서 케네디 대통령 미망인 재클린과 결혼하여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그리스의 선박왕 애리스토틀 오나시스(1906~75)를 들 수 있다.
오나시스의 사업적 행운은 1929년 터진 20세기 최악의 경제공황 때 찾아왔다. 그는 위기야말로 돈을 벌 수 있는 최대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기회를 이용해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구입한 자가 이후에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오나시스는 경제 위기 속에서 가장 심각한 경기 침체에 빠진 해상운송업을 주목했다. 사람들은 가지고 있던 선박을 싼값에 잇달아 내놓아 선박 가격은 급락했다. 오나시스는 전재산을 투자하여 선박을 구입한다.
당시 캐나다로부터 경매로 구입한 여섯 척의 선박은 10년 전만 해도 그 가격이 20만달러에 육박했었다. 그러나 그 무렵에는 한 척당 2만달러에 불과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해상운송업은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되었고 캐나다에서 구입한 6척의 배는 움직이는 금광처럼 오나시스에게 끝없는 부를 가져다주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세계는 다시 불경기 속으로 빠져들었지만 그는 세계경제가 다시 번영기에 접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오나시스는 “경제 발전은 에너지, 석유의 수요를 자극해 에너지와 석유 소비량이 곧 급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조선의 운송비도 필연적으로 급등할 것이다”고 예측했다. 이 예측은 현실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오나시스는 대규모의 자금을 투입해서 유조선을 제작했고 그로 인해 그의 사업은 최고의 황금기를 맞았다.
미래의 시장에 대한 예측 능력과 굳은 믿음, 강인한 의지가 바로 그를 성공으로 이끈 비결이다. 시장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먼 곳을 내다보는 안목과 사물의 발전 추세에 대한 장기적인 예측이 가능해야 한다. 오나시스가 과연 사마천의 ‘화식열전’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화식열전의 대화식가들인 계연, 백규, 범려, 자공과 같은 반열의 미래를 예측하는 안목과 사업의 중요성을 파악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물론 이러한 예측은 반드시 사물의 발전 추세를 근거로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행해져야 한다. 맹목적인 자신감에 따라 무작위로 행해지는 예측에 근거한 사업 경영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화식열전은 심도 있게 설파하고 있다.
▒ 이석연
전북대 법학과, 서울대 법학 박사, 28대 법제처장, 현 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 책권하는사회운동본부 대표, 한국사마천학회 이사장. 주요 저서는 <책, 인생을 사로잡다>, <사마천 한국견문록>, <호모 비아토르의 독서노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