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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이 횡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이미 2%대로 하락했고 노령화에 따라 경제전망도 밝지 않다. 사회 전반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증가하고 있다. 종합주가지수는 2011년 4월 2192포인트를 기록한 이후 계속 그 수준을 밑돌고 있다.

주식 투자자들은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개인들은 주식투자에 소극적이고 연기금들은 국내 주식투자보다 해외 및 대체 투자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국내자금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외국인 투자자의 영향력이 증가했다. 외국인이 매도하면 시장이 하락하고 외국인이 매수세로 돌아서면 시장이 반등하는 국면을 지속해 온 것이다.

한편으로는 시중의 자금은 풍부한데 주식시장에 대한 전체적인 전망이 부진하면서 개인 투자자들과 펀드 매니저들은 상대적으로 성장성이 돋보이는 종목과 수익의 안정성이 높은 종목을 주목하게 됐다. 2011년 소위 차화정(자동차, 화학, 정유) 종목들의 급락 이후 형성된 이러한 흐름은 작년까지 지속됐다. 특히 2015년에는 바이오, 화장품, 엔터테인먼트 같은 미래 성장 산업과 중국 수요 관련된 종목들에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엔저현상으로 우리의 수출 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자동차, 화학, 정유, 중공업, 건설 같은 대형 제조업 종목들이 조정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소비재 종목,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종목, 특히 중소형주들에 매수세가 집중됐다. 그 결과 2014년부터 약 1년 반 동안 종합지수는 횡보하는 상황에서 코스닥지수는 40%나 급등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성장주 투자 과열에 가치주 홀대 받아

이러한 흐름은 어쩌면 저금리 환경에서 자연스러운 결과로 보인다. 예금 금리가 1.5% 수준에 불과한 상황에서 안정적 현금 흐름이 예상되는 종목에 대한 선호는 커질 수밖에 없다. 미래의 수익에 대한 할인율이 낮아졌으므로 장기적인 성장 기회에 대한 적극적인 평가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저금리 환경에서 기업 실적의 안정성과 성장성을 주목한 것이지만 지난 2014년과 2015년의 흐름은 다소 과도해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대비 주가 수준) 부담이 증가했다. 성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종목들의 주가수익비율(PER, 현재 주가가 회사 이익의 몇 배에 거래되는지를 표시)이 40배 수준 내지는 그 이상까지 올라갔고 수익의 안정성이 크다고 판단되는 종목들의 PER도 20배를 훌쩍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업 실적이 전년 동기보다 감소하거나 정체될 것으로 보이는 기업, 산업의 경기순환성이 강한 기업들의 주가는 지속 하락해 PER이 10배 이하, 주가순자산비율(PBR, 현재 주가가 회사순자산의 몇에 거래되는지를 표시)이 1배 이하의 기업들이 속출하게 됐다. 기업 간의 밸류에이션 차이가 크게 확대된 것이다.

투자는 기대와 현실 사이의 저울질이다. 이제 시장은 주가가 많이 올랐던 회사들의 실적이 한껏 올라있는 시가총액만큼 꾸준히 성장해줄 것인지에 대해 가늠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영업 실적이 기대를 충족하는 회사의 주가는 추가로 상승하겠지만 시장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종목들의 주가는 조정폭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주가의 불확실성은 기업실적의 변동성에서도 오지만 종종 밸류에이션 수준 자체에서도 발생한다. 이는 모든 성장주들의 딜레마다.


저유가, 엔고로 국내기업 수익성 높아져

이러한 밸류에이션 부담을 반영해 이제 시장의 관심은 점차 주가가 많이 하락한 종목들로 확대되고 있다. 굴뚝산업으로 치부돼 하락을 지속했던 종목들을 다시 볼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된 것이다. 주가가 많이 하락해 PER이 10배 이하인 기업들은 현재 투자자금의 10% 이상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또 PBR이 1배 이하라는 의미는 현재 회사의 순자산 가격 이하에 투자할 기회가 왔다는 것이다. 어떤 종목은 이 두 조건을 충족하면서 배당수익률이 3% 수준을 웃도는 기업들도 있다.

여기에 최근 저유가 환경이 우리 기업들에 유리한 상황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말 미국 금리 인상의 우려 속에서 원화가치가 많이 하락하는 동안 일본의 엔화가치가 반대로 상승하면서 상대적으로 수출기업들의 환율부담이 완화된 것도 우호적인 환경변화 중 하나다.

주식투자의 불확실성이 크다. 따라서 기대수익에 대한 적절한 할인이 필수다. 하지만 금리가 1.5%인 시대에 살면서 현재 주가에 내재된 미래수익에 대한 할인율이 10%가 넘는 종목들을 계속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통적인 가치주를 재발견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했다.


▒ 조세훈
고려대 경영학과, 신한BNPP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 현 수탁고 1000억원 규모의 이룸투자자문 대표. 주요 저서 <나는 주식으로 꿈을 꾼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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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수익비율(Price Earning Ratio, PER) 특정 주식의 주당 시가를 주당 이익으로 나눈 수치로, 주가가 1주당 수익의 몇 배가 되는지를 나타낸다.
주가순자산비율(Price Book-value Ratio, PBR) 주가를 1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것으로 주가가 1주당 순자산의 몇 배로 매매되고 있는가를 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