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미식가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는 고깃집이 하나 있다. 바로 한육감이다. 어느새 입소문은 장안을 휘감은 지 오래. 날고 긴다는 중원의 고수들은 이미 ‘한육감’의 칼자루를 쥐어본 터. 아직 접하지 못한 과객들을 위해 식후감을 몇 자 적어 보려 한다.
한육감은 디테일이 뛰어난 레스토랑 중 하나다. 위치, 분위기, 동선, 음악, 메뉴, 가격, 의자, 테이블…. 심지어 직원을 부르는 벨까지 곳곳에 디테일이 숨어 있다. 미식을 만끽하며 즐기는 ‘숨은 재미 찾기’가 꽤 흥미진진하다.

등심-안창살 등 3가지 한우 코스
창피함을 무릅쓰고 매장 안내를 부탁했다. 평론가라는 직업을 가진 인간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용기 덕분에 레스토랑 곳곳을 훑을 수 있었다. 통유리를 통해 햇볕이 가득 들어찬 룸이 제일 마음에 든다. 입구가 책장으로 가려져 있어 왕과 기사들이 밀담을 나누던 비밀의 방을 연상케 한다. 아주 기다란 테이블은 황금빛 왕좌 앞에 펼쳐져 있다. 이 방을 제외한 공간들은 전부 열려 있다. 개방돼 있지만 독립적이다. 저마다의 개성으로 무장한 공간은 영화 ‘대부’의 세트장처럼 묵직하고 포근하다. 여기저기서 반짝이는 등 높은 가죽 소파가 말을 걸어온다. 안내받은 자리에서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육각형 스톤 플레이트(stone plate)와 커트러리(cutlery). 100여년 가까이 최고의 디자인과 품질로 인정받고 있는 프랑스 커트러리의 명가 장 듀보(Jean Dubost)의 포크와 나이프가 정자세를 하고 누워 있다. 이 정도면 됐어. 혼잣말을 했다.
요리가 시원치 않은데 명품 커트러리를 사용할 오너는 많지 않다. 일단 기싸움에서 밀렸다. 서버가 건넨 메뉴판에는 화려한 육고기 사진이 그득하다. 먹기도 전에 맛있다. 양 볼에 침이 고인다. 우리 같은 ‘고기테리언’은 안심과 등심을 마다할 능력이 없다. 인체가 그렇게 설계돼 있다. 단품 주문도 가능하고 A, B, C 코스도 있다. 안심과 등심의 구성이 A, 안창살, 살치살, 양념 갈빗살 등이 추가된 것이 B, 샤토브리앙 안심과 크라운 램(crown lamb) 그리고 한우 사골 오븐 구이로 짜여진 녀석이 코스 C다.
고민을 하다 4800만 국민이 그 맛을 다 아는 등심을 제외했다. 양갈비까지 탐닉하려니 선택은 하나 C!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잘 짜여진 극본처럼 배우(서버)들이 동선에 따라 움직인다. 일사불란하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다. 소스와 절임류가 깔린다. 담은 그릇 하나 하나에 스토리가 담겨 있는 듯하다. 허나 대장부가 어찌 대범하지 못하게 일개 소스에 시선을 빼앗기리오. 이런 까닭에 샐러드도 눈에 깊게 담지 않았다. 오로지 샤토브리앙과 양갈비를 목 빼고 기다리는데…. 아뮤즈 부셰(Amuse bouche, 식전 음식)를 내온다. 이름하여 연어 그라브락스(Gravlax). 그라브는 무덤, 락스는 연어를 뜻한다. 무지막지하게 잡히는 연어를 보존하기 위해 고안된 저장식이다. 땅을 파고 소금과 허브류를 넣어 발효한 북유럽 스타일 음식이다. 오늘은 선드라이 토마토와 요거트 소스가 연어를 받치고 있다. 새콤함 뒤에 밀려오는 간간한 갯내가 식욕을 자극한다. 이윽고 주먹만한 유리병이 하나 전달된다. 뚜껑 대신 병의 주둥이를 감싸고 있는 종이 뚜껑에 ‘Tasty invitation’이라 적혀 있다. 맛있는 초대. 철자 하나 하나를 따라가고 있는데 미소를 머금은 직원이 시트러스 소스로 가미한 로브스터란다. 향을 봉인하기 위해 종이를 덮었다고 했다. 종이를 벌리려는 순간 감귤류 향이 스멀스멀 오른다. 보드라운 속살을 깨물자 새콤한 단내가 퍼진다. 단지 두어 번 깨물었을 뿐인데 목으로 미끌어져 넘어간다. 말릴 틈이 없다.
아쉬움을 군침으로 달래는데 드디어 주인공이 등장한다. 핏빛이 강렬한 샤토브리앙. 소 한 마리 잡으면 딱 4인분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귀하디 귀한’ 부위. 새송이와 고구마 그리고 옥수수로 보이는 녀석들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오우 마이 갓! 아니 고기를 구워주겠다고 나선 이가 불판에 파를 먼저 올리는 것이 아닌가. 이런… 낭패다. 어찌 파 나부랭이를 샤토브리앙이 누울 자리에! 안경을 벗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일반 파가 아니다. 이미 한 번 익힌 파다. 아하~ 스페인 전통 요리 ‘칼솟타다(Calcotada, 대파구이)’를 배치한 모양이군.
중독성 강한 ‘한우 사골 오븐구이’

그렇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겉을 태우듯 익힌 파는 단물이 줄줄 흐른다. 내 플레이트에 옮겨준 한 조각을 말없이 입에 넣었다. 아~ 보드랍다. 그리고 달다. 아니 어느새 짭쪼롬한 간이 뒤를 따른다. 파르메잔 치즈 덕분이다. 기분 좋은 경험이다. ‘치지지직~’ 방심한 사이 샤토브리앙이 불판에 속살을 밀착했다. 혼신을 다해 집중하는 서버를 째려보았지만 반응이 없다. 모름지기 고기 굽는 이의 자세는 이래야 한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무아의 지경에 이르러야 완벽한 샤토브리앙을 완성할 수 있다.
레어로 구워준 한 조각을 아무것도 찍지 않고 혀 위에 올렸다. 완벽한 안심은 혀에 닿는 밀착감이 좋다. 자석처럼 척하고 들러붙는다. 음미하는 사이 나마(生) 와사비가 눈에 들어온다. 옳지! 나도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마냥 와사비를 곁들여 먹어봐야겠군. 흥분 상태라 정도가 지나쳤나 보다. 와사비가 코를 찌른다. 눈물이 핑 돈다. 근사한 샤토브리앙이 아니었다면 버럭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참길 잘했다. 황금빛 쟁반에 오른 양갈비 왕관이 바통을 잇는 데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양갈비의 뼈와 살덩이를 이용해 왕관 모양을 만들었다. 그래서 메뉴명이 ‘Crown lamb’이다. 마치 기다란 백립 스테이크를 자르지 않은 채 바깥쪽으로 감아 원형을 만든 것같이 왕관을 만들었다. 오너와 셰프의 천재성이 돋보인다. 실로 ‘호모 검색쿠스’들이 사랑할 만한 아이디어다.
이미 오븐에 한 번 구운 왕관의 머리띠(양갈비를 감싸고 있던 스테이크용 실)를 풀자 사과와 파인애플이 쏟아진다. 박수가 절로 나온다. 풀어헤친 양갈비를 한 조각 한 조각 재단해 불판으로 옮겨 재벌을 한다. 한껏 애교를 부리며 딱 두 대만 뼈와 살을 분리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갈비는 뜯어야 맛이다. 포크로는 느낄 수 없는 정서가 있다. 날카로워진 뼈를 쥐고 입술로 옮긴다. 잠시 심호흡이 필요하다. 크기도 가늠하고 열기도 잠재우기 위함이다. 눈을 부라리며 한입 베어문다. 흐벅진 살덩어리가 입 안을 가득 메운다. 아~ 황홀하다. 구석기 원시인도, 중세시대의 왕도 나와 같은 만족감을 느꼈으리라. 쉬 잊지 못할 기억이다.
한육감 이준수 대표가 설계한 시나리오는 반전의 연속이다. 이만하면 됐다 싶은데… 펀치가 또 날아든다. 하정우 주연의 영화 ‘황해’에서 조선족 건달의 손에 들려있던 뼈다귀가 반으로 갈라진 채 테이블에 오른다. 한우 사골 오븐구이다. 정강이뼈의 골수 위에 빵가루와 허브솔트를 뿌렸다. ‘몬도가네(Mondo Cane, 기이한 행위 또는 식생활)’가 따로 없다. 골수는 마약 같은 중독성이 있다.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게 바로 골수다. 뒤를 따르는 부야베스(Bouillabaisse, 프랑스 해산물 수프)와 인삼을 넣은 티라미수, ‘티삼(蔘)미수’도 꽤나 인상적이다.
▒ 김유진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MBC 프로덕션 예능제작국 PD, 주요 저서 <장사의 신>
샤토브리앙 안심, 양갈비, 한우 사골 오븐구이의 절묘한 조화
A코스안심과 등심 (6만9000원)
B코스
안창살, 살치살, 양념 갈빗살 추가 (8만8000원)
C코스
샤토브리앙 안심, 크라운 램(crown lamb, 양갈비), 한우 사골 오븐구이 (11만원)
모든 코스에는 샐러드, 시트러스 소스를 곁들인 저온 조리한 로브스터 테일, 로스트 릭, 식사 그리고 디저트가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