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인과 이혼하고 200만위안(약 3억6000만원)의 빚을 진 상태이고 두 자녀와 노부모 그리고 형제들까지 부양해야 하는 43세의 중년 가장. 1987년 동료 5명과 함께 2만1000위안(약 378만원)을 모아 화웨이(華爲)를 창업한 런정페이(任正非·72) 회장이 당시 처했던 상황이다. 지난 2012년 스웨덴 에릭슨을 제치고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가 된 화웨이는 이제 삼성전자가 갖고 있는 스마트폰 세계 1위 자리도 넘본다. 지난해 중국 1위이자 세계 3위 스마트폰 업체로 올라섰다. 지난해 매출이 3950억위안(약 71조1000억원)을 기록한 대기업이지만 매출 증가율이 37%에 이른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화웨이와 런정페이를 당대 상업 역사의 전설이라고 극찬한다. 거대한 중국 시장 덕이라고 폄하할 수도 없다. <포천>이 선정한 2015 글로벌 500대 기업에 진입한 91개 중국 기업 가운데 해외 매출 비중이 절반을 넘은 유일한 기업이 화웨이다. 중국발(發) 다국적기업 1호인 셈이다.
런 회장이 화웨이를 키운 비결은 뭘까. 런 회장은 2014년 6월 시나닷컴과 생애 첫 인터뷰를 할 만큼 언론 노출을 꺼려 중국에서 ‘신비 기업인’으로 불린다. 2015년 1월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공개 발언을 하는 등 최근 들어 신비의 베일을 차츰 벗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화통신은 지난 3월 선전(深圳)에 있는 화웨이 본사에서 3시간여에 걸쳐 런 회장을 인터뷰한 내용을 지난 9일 보도했다. 중국 정보기술(IT)기업의 고성장을 탐구하려는 기업인들에게 적지않은 메시지를 던지는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다.

“첫째, 화웨이의 발전은 국가정치의 큰 환경과 선전(深圳)경제의 작은 환경이 변화한 덕이 크다. 민영기업의 재산권을 명확히 규정한 1987년의 ‘18호 문건’이 없었다면 화웨이를 창업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후 화웨이가 일정 수준 발전한 뒤 세 부담이 크게 늘자 동료들은 번 돈을 나누고 해산하자고 했다. 그 무렵 선전은 기업에 세제혜택을 주는 정책을 내놓았다.
둘째, 화웨이는 28년간 흔들림 없이 오로지 통신 영역이라는 ‘성벽 입구’만을 향해 돌진했다. (직원이) 수십명인 시절에도 하나의 성벽입구를 공격했는데 수백명, 수만명일때도 같은 성벽 입구를 공략했다. 지금 직원 10만명이 넘었지만 같은 성벽입구에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매년 1000억위안(약 18조원)의 탄약을 사용해 이 성벽입구를 포격하고 있다. 연구개발에 600억위안(약 10조8000억원), 시장 서비스에 500억~600억위안(약 9조~10조8000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화웨이는 변혁을 지속하고 있다. 서방기업의 경영을 전면적으로 배우고 있다. 28년이라는 세월 동안 서방을 배웠지만 아직도 에릭슨 같은 기업과 비교하면 직원수는 (화웨이가) 2만명이 더 많고, 연간 관리비용도 40억달러 더 들어간다.
그래도 지금도 끊임없이 조직과 업무흐름을 고도화해 효율을 높이고 있다. 이를 위해 매년 수억달러를 들여 해외 전문가를 초빙한다. 도요타의 이사는 퇴직 후 전문가팀을 데리고 화웨이에서 10년을 일했다.”
화웨이도 약점이 있나.
“있다. 화웨이는 3년 전에 거의 무너질 뻔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 생기면서 힘든 일을 두려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해외로 직원을 파견하려 해도 모두들 베이징에서 집을 사고 아이들과 함께 지내기를 원했다. 좋은 지역에 머물기를 원했다. 그래서 최전선에서 뛰는 직원들의 대우를 올려주기로 했다. 아프리카에서 ‘장군(將軍)’이 되는 기준과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장군이 되는 기준을 다르게 했다. 젊은 친구들은 아프리카에서 매우 빨리 장군이 될 수 있다. 장군이 되면 장군 수준의 돈을 번다. 이제 화웨이의 아프라카 주재원들은 돌아올 생각을 안 한다.”
화웨이 성장과정에 중국 부동산이 폭발적인 성장을 했는데 흔들리지 않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데 투자한 적이 없다”
유혹을 받지 않았나.
“없었다. 당시 회사 건물 밑에 객장이 있었다. 주식을 사는 사람들로 넘쳐났지만 우리는 위층에서 고요한 물처럼 열심히 일했다. 하나의 일에만 집중했다. 성벽입구를 공격하는 게 그것이다.”
그런 문화를 어떻게 만들었나.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미련했다(). 돈이 아닌 이상(理想)을 중심에 뒀다. 돈은 가장 중요한 게 아니다. 이상은 바로 ‘상감령’을 사수하는 것이다.”(중국이 6·25전쟁 중 최대의 승전이라고 주장하는 철원 상감령 전투에서 이 표현을 따왔다.)
화웨이는 왜 상장을 안하나.
“이익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과 목표를 향해 분투할 뿐이다. 상장을 하게 되면 주주들이 증시에서 돈 버는 데 신경을 쓰게 된다(화웨이는 8만4000명 직원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주주가 직원들로 배당금이 급여보다 많을 때도 있다. 최대주주인 런 회장의 지분은 1.4%에 불과하다).”
기업 간의 경쟁은 실제로 매우 잔혹하다. 그런데도 에릭슨과 특허 교차 사용 협약을 체결했다.
“다른 사람들은 상대를 초토화시켜야 한다고 얘기한다. 우리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다. 화웨이는 작은 기업일 때도 매우 개방적이었다. 다른 기업과 전체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수년간 우리는 아주 많은 지식재산권 사용료를 다른 기업에 줬다. 물론 우리도 많은 지재권 사용료를 받았다. 많은 회사들과 지재권 교차 사용 협약을 체결한 것은 타인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발전속도는 타인보다 빠르다. 진입하는 영역도 타인보다 더 깊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세계 첨단기술의 고지다. 중국 혁신의 희망은 어디에 있나.
“이론의 혁신이 없으면 지속할 수도, 성공할 수도 없다. 이론혁신은 기초연구보다 더 앞에 나가 있다. 기초이론이 대형 산업으로 발전하는 데 수십년의 내공이 소요된다.
전략적인 인내가 필요하다. 가장 앞선 이론이 나오면 인류는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100여년 전 누구도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많은 과학자들의 노력 끝에 그의 이론이 맞다는 것이 증명됐다. 화웨이 해외연구소의 과학자는 대부분 외국인이다. 화웨이에서 일하는 과학자는 2012년 700여명에서 올해 1400여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