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보통신(IT) 분야의 핫이슈는 단연 가상현실(Virtual Reality·VR)이다. 헬멧형 특수 안경을 머리에 쓰고 그 내부에 있는 광학 디스플레이를 바라보면 눈앞에 가상현실이 펼쳐진다. 미국 공상과학 영화 ‘미션 임파서블’처럼 눈앞에 가상의 공간이 펼쳐지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가상현실 기술은 모바일 환경에 적용하기 어렵다. 헬멧형 특수 안경은 부피가 크고 무거워 쓰고 다니는 사람이 없다. 또 전력 소모가 큰 탓에 모바일 형태로 사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주요 IT업체들은 콘택트렌즈 형태의 웨어러블(wearable) 가상현실 기기를 주목하고 있다. 기존 콘택트렌즈 위에 투명하고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를 구현해 가상의 정보를 사용하고 즐기는 것이다. 특히 착용한 듯, 착용하지 않은 듯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콘택트렌즈는 모바일 가상현실 기기의 형태로 가장 적합해 보인다.
‘스마트 콘택트렌즈’를 개발하기 위한 기술 경쟁은 2014년 시작됐다. 구글, 삼성전자, 소니는 이미 스마트 콘택트렌즈 관련 미국 특허를 출원한 상태다. 소니의 스마트 콘택트렌즈는 렌즈 내에 투명 디스플레이, 카메라 센서, 압력 센서, 메모리, 프로세서를 집적(集積)한 형태다. 렌즈를 착용한 사용자가 눈을 깜빡이면 콘택트렌즈에 압력이 가해지는데 이를 압력 센서로 감지할 수 있다. 사용자의 의도적인 눈 깜빡임을 감지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카메라 센서로 촬영하는 것이다. 또 렌즈에 삽입된 디스플레이에 미리 저장된 가상정보를 표시할 수 있어 가상공간을 즐길 수 있다.
삼성·구글·소니 3파전
삼성전자의 경우 소니와 마찬가지로 렌즈 내부에 카메라와 눈 깜빡임 감지 기능이 내장돼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렌즈 내부에 저장 장치가 없고, 스마트폰과 같은 외부 기기로 촬영한 사진을 전송한다는 점이다. 구글이 적극 투자하고 있는 미국 스타트업 매직리프(Magic Leap)의 목표는 현실 세계의 모습과 렌즈 위 디스플레이에 표시된 가상정보를 결합해 구현하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AR)용 렌즈이다.
이들 특허는 세부적인 기술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투명하고 휘어지는 디스플레이와 카메라를 콘택트렌즈에 집적해 가상현실을 즐기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스마트 콘택트렌즈를 개발하기에는 현실적인 기술 장벽이 너무 높다. 가장 큰 문제는 전력 공급 시스템이다. 특허에 기술된 스마트 콘택트렌즈는 배터리를 내장하기보다는 외부에서 무선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형태다. 현재의 무선 전력 공급 효율을 고려하면 스마트 콘택트렌즈의 디스플레이와 카메라를 구동할 수 있는 충분한 전력을 공급하기 어렵다. 이를 위해 무선 전력 공급 효율을 높이거나 초저전력 카메라와 디스플레이 구동회로를 개발해야 한다. 또 콘택트렌즈 위에 시야를 방해하지 않을 만큼 작게 위치시켜야 한다.
편의성 측면도 문제다. 증강현실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카메라에 비친 사물을 인식해야 하고 관련 3차원 그래픽 영상처리가 필요한데 콘택트렌즈상에 이런 고성능 연산장치를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외부 장치에서 이를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영상을 무선으로 전송하기 위한 전력 소모가 많아 현실성이 떨어진다.
특허에 기술된 스마트 콘택트렌즈가 렌즈 하나만으로 작동하는 형태가 아니라 스마트폰 등 외부 기기와 짝을 이뤄 작동(페어링·pairing)한다는 것도 한계다. 스마트폰과 반드시 연동해야 하는 스마트 워치의 불편함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눈을 깜빡일 때마다 렌즈 위치가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문제가 있는데, 이를 어떻게 고정시키고 어떻게 보상해 화면 출력을 할 수 있을지 보완해야 한다. 이외에도 스마트 콘택트렌즈를 상용화하기까지는 극복해야 할 과제가 수없이 많고, 아직까지는 콘셉트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스마트 안경이 더 현실적
이런 상황에서 ‘스마트 안경’이 보다 현실적인 웨어러블 가상현실 기기로 여겨지고 있다. 스마트 안경은 헬멧형 특수 안경보다 훨씬 가볍고 편의성이 좋다. 안경 위에 작은 디스플레이와 카메라가 있고 배터리 구동이 가능하다. 2013년 개발자용 구글 글라스가 출시된 이후 부직스(Vuzix), 메타(Meta), 마이크로소프트 등 해외 IT 기업과 벤처가 안경 형태의 스마트 기기를 출시하고 있다.
스마트 안경 시장의 성공 열쇠는 어떻게 하면 기존 스마트폰이 제공하지 못하는 새로운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기존 스마트 안경의 면면을 살펴보면 하드웨어, 특히 부족한 중앙처리장치(CPU) 성능 때문에 흥미로운 가상현실 혹은 증강현실을 구현하지 못하는 한계가 존재했다. 스마트폰과는 다른 스마트 안경의 소프트웨어 특징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존 스마트폰에 적용한 CPU를 그대로 사용해 전력 소모는 많고 실시간 가상현실 처리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국내에선 카이스트(KAIST)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카이스트는 2014년 저전력 증강현실 시스템온칩(System on Chip·SoC)을 개발해 세계 최초로 증강현실이 구현된 스마트 안경 ‘케이글라스(K-Glass)’를 선보였다. SoC란 비메모리 반도체칩으로 CPU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plication Processor)가 이에 해당한다. 카이스트는 2015년에는 새로운 이미지 센서칩과 인공지능(AI)칩을 개발, 이를 이용해 눈동자만으로 마우스와 같은 기능을 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를 K-Glass2라는 스마트 안경에 구현했다. 올해에는 실시간 저전력 증강현실 인공지능칩과 구글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같은 심층신경망(Deep Neural Network)이라는 기계학습 기반 저전력 손동작 인식 반도체칩을 개발, 적용한 K-Glass3를 발표했다.
스마트 안경 전용 CPU나 SoC를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움직임은 해외에서도 감지된다. 최근 구글로부터 거액을 투자 받은 모비디우스(Movidius)는 컴퓨터 비전 전용 모바일 반도체칩을 출시했다. 그래픽칩 제조업체인 엔비디아(Nvidia) 역시 모바일 환경을 목표로 그래픽처리장치(GPU) 라인업을 꾸준히 발전시키고 있다. 이제는 국내 기업도 급성장하고 있는 스마트 안경, 스마트 콘택트렌즈 시장을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