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e more Jobs(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주십시오).”

미국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이 몇해 전 신년 특집호에 쓴 칼럼 속 문장입니다. 이 글은 편지 형식입니다. 그렇다면 수신인이 지정돼 있겠지요? 찾아보니 과연 그렇습니다. 수신인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입니다.

눈이 밝은 독자라면 프리드먼이 왜 ‘만들다’를 위해 ‘make’ 대신 ‘create’라는 단어를 썼는지, 그리고 일자리가 왜 대문자로 시작하는 ‘Jobs’인지 이미 간파하셨을 겁니다. 프리드먼은 더 많은 ‘미래의 스티브 잡스’를 ‘창조해 달라’고 대통령에게 주문한 것이지요. 어떤 분야에서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스티브 잡스 같은 리더가 많이 탄생할 수 있도록 국가가 창조적 교육을 강화해 달라는 뜻입니다.

“Creative leaders help others think creative(창조적인 리더는 부하가 창조적으로 사고하도록 돕는다).”

이 문장은 리더가 장착해야 할 가장 훌륭한 무기가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2015년 나온 영화 ‘스티브 잡스(Steve Jobs)’를 보는 내내 제 머리를 떠나지 않은 문장이기에 소개합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문장은 아니지만, 잡스는 이를 실천한 리더였으니까요.


프레젠테이션 귀재 잡스의 ‘언어력’

저는 영화 ‘스티브 잡스’를 보며 창조적 리더인 잡스의 ‘언어력(言語力)’을 들여다봤습니다. 이 작품은 1998년까지 세 번의 프레젠테이션 과정을 통해 잡스가 어떻게 혁신적으로 변화해 가는지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프레젠테이션의 귀재인 그가 연출하는 세 번의 대표적 프레젠테이션은 곧 이 영화를 구성하는 세 개의 막이기도 합니다. 1막은 매킨토시 론칭, 2막은 넥스트 큐브 론칭, 그리고 3막은 아이맥 론칭.

속사포 대화로 일관하는 영화 ‘스티브 잡스’는 그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가 한 말을 통해 그의 세계관과 디지털 혁명을 선도한 그의 혁신 정신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이쯤에서 이 영화의 광고 문구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Can a great man be a good man(위대한 자는 선한 자가 될 수 있을까)?”

이 광고 문구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짐 콜린스의 책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가 생각납니다. 그의 책은 “Good is the enemy of great(‘good’은 ‘great’의 적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Good(좋은)’ 수준이라는 칭찬을 받게 되면 대부분 거기에서 만족하고 더 올라가기 위한 노력이나 도전을 멈춥니다. 그러나 훌륭한 리더와 훌륭한 조직은 그 칭찬을 뛰어넘어 ‘great(위대한)’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 무기’를 갈고 닦는다는 뜻이지요.

이제 ‘good’에 만족하지 않고 ‘great’을 향해 도전한 스티브 잡스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There is something in the air.”

2008년 ‘맥 월드 콘퍼런스(Mac World Conference)’ 무대에 오른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일성을 터뜨렸습니다. 어떤 뜻을 담은 문장일까요? ‘공기 속에 뭔가 특별한 게 있다’일까요? 아닙니다.

잡스는 이 문장을 만들기 위해 두 개의 표현을 결합했습니다. ‘There Is Something about Mary’와 ‘Something is in the air’입니다. 전자는 영화 제목이고 뜻은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게 있다’이지요. 후자는 ‘기분 좋은 소식이 있으니 기대해 봐도 좋아’라는 뜻입니다. 희소식이나 기분 좋은 뜻밖의 소식을 공개하기 전에 쓰는 구어 표현입니다.

잡스가 “There is something in the air”라고 말하자 청중은 ‘기분 좋게’ 술렁였습니다. 안 그래도 어떤 혁신적 신제품을 보여줄지 잔뜩 기대하고 있던 터였으니까요. 그리고 청중이 주의를 돌리기 전, 잡스는 도우미가 그의 손에 건넨 사무용 봉투에서 ‘맥북 에어’를 꺼냈습니다. 자연스럽게 앞서 그가 한 말은 ‘맥북 에어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는 뜻이 됐죠. 애플의 초경량 노트북 맥북 에어는 그렇게 세상에 처음 공개됐습니다. 잡스의 창의적인 언어력이 돋보인 순간입니다.


‘실행력’ 부족으로 놓쳐버린 완치 기회

영화 속 잡스의 모습이 빛날수록 그에 대한 그리움도 커집니다. 잡스의 말은 아니지만,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이 자꾸 떠오르는 건 그 때문입니다. 미국 시인 존 그린리프 휘티어(John Greenleaf Whittier)는 이렇게 썼습니다.

“For all sad words of tongue and pen the saddest are these: ‘It might have been!!’(말이든 글이든 모든 슬픈 말 가운데 가장 슬픈 말은 이것입니다. ‘아, 그때 왜 안 해봤을까!!’)”

실행에 옮기지 않아 놓쳐버린 기회를 아쉬워하는 표현입니다.

잡스는 2003년 10월 자신을 치료한 적 있는 비뇨기과 전문의와 만났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신장과 수뇨관 CT 촬영을 받아보라고 권했습니다. 그가 CT 촬영을 마지막으로 받은 지 5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의사는 “촬영 결과 신장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췌장에 음영이 보인다”며 그에게 췌장 검사 예약을 권했습니다.

늘 그랬듯이 잡스는 자신이 처리하고 싶지 않은 정보는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데 능했습니다. 잡스는 검사를 거부했습니다. 집요한 의사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주변 정리를 하는 게 좋겠어요(You should make sure your affairs are in order).” 그래도 잡스는 수술을 거부했습니다. 의사가 자신의 몸을 여는 게 싫었다고 하지요. 그는 수술 대신 침술이나 다양한 약초 요법과 민간요법, 심령술에도 기댔습니다.

그의 병은 진행 속도가 느려 완치율이 높은 희귀성 종양인 췌장 도세포 종양(췌장 신경 내분비 종양)이었습니다. 그것도 조기에 발견돼 수술로 충분히 제거할 수 있는 상황이었죠. 그러나 잡스는 끝까지 고집을 피웠습니다. 그가 수술을 받은 건 2004년 7월 31일의 일이며, 그 이후 결과는 여러분도 다 아는 내용입니다.

잡스가 숨을 거두기 전까지 ‘더 일찍 수술 받을 기회를 잡을 걸’ 하고 후회했을지,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지요. 하지만 그를 떠올릴 때마다 ‘It might have been’이 생각납니다.

그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했던 건 ‘실행력’입니다. 그 실행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않았기에 잡스는 그토록 뛰어났던 창의력을 채 꽃 피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화에서 쓰는 표현을 빌자면 ‘조기 종영’한 셈입니다.


▒ 이미도
영화‘반지의 제왕’시리즈,‘쿵푸팬더’시리즈 등 번역, 저서 <독보적 영어 책> <똑똑한 식스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