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소프트웨어 ‘알파고(AlphaGo)’의 대결 이후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다. 인공지능이 미래 산업을 이끌 것으로 평가받지만, 인간의 일자리를 똑똑한 로봇이 대신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거세다.
실리콘밸리의 AI 전문가인 제리 카플란 스탠퍼드대 법정보학센터 교수는 고등교육이 필요한 일자리는 인공지능이 빼앗고, 단순 업무를 하는 노동자는 기계가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급속한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대부분 새 기술을 배울 기회조차 얻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카플란 교수는 그에 대한 해법으로 교육 개혁과 ‘직업 대출’을 제안했다. 수요 변화에 맞춰 새 기술을 배우려는 구직자는 잠재적인 고용주의 보증으로 교육비를 대출받은 다음 기술을 체득하고, 취업 후에 이를 갚으면 된다. 고용주는 일자리에 필요한 기술자를 확보하고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카플란은 AI로 인해 극단으로 치달을 경제적 불평등을 줄일 방안도 제시했다. 예컨대 기술 혁신으로 창출한 부를 최대한 널리 분배하기 위해 소유구조가 광범위하게 분산된 기업에 법인세 감면 혜택을 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전통적인 가치와 사회제도의 변혁이 이뤄져야 로봇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지난 5월 17일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석한 그를 만나 미래 노동시장에 대해 들어봤다. 180cm가량의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의 카플란 교수는 가끔 농담을 섞어 가며 물음에 답했다. 공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카플란은 AI 시대의 심장부인 실리콘밸리에서 네 개의 스타트업을 공동 창업해 두 곳을 매각하는 등 연쇄창업가(serial entrepreneur)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AI 시대의 부와 노동의 미래를 다룬 <인간은 필요없다(Humans Need Not Apply)>를 쓴 저자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에서 알파고가 승리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알파고가 승리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기계는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을 앞서고 있습니다. 인간과 기계의 대결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한 것은 잘못된 겁니다. 기계는 사람이 아닙니다. 인간인 척, 감정을 가진 척 할 뿐입니다. 인간과 경쟁하거나 인간을 능가하는 로봇에 대한 논의는 애초에 잘못된 겁니다.”
미래에 등장할 인공지능은 어떤 모습일까요.
“기술 발전에 따라 마법과 같은 일들이 일어 날 수도 있습니다. 로봇이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을 수행하는지 여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보다 주어진 일을 더 빨리, 더 정확하게, 더 적은 비용으로 해낸다는 점이 의미가 있는 것이죠. AI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AI의 모습은 달라질 겁니다. 마치 원자력이 도시를 한 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위협적인 무기인 동시에 청정 에너지원인 것처럼 말이죠.”
AI가 우리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AI는 인간의 삶과 생계수단을 통째로 바꿀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노동시장의 변화가 클 겁니다. 그렇다고 일자리 자체가 모두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AI는 오래 전 시작된 자동화 과정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자동화의 폭넓은 확장일 뿐 직업 자체를 자동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동화는 일부 일자리를 없애기도 했지만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는 데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렸다는 점이죠.”
그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시스템이 등장하면 제기될 경제적 위험이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사무직 근로자와 생산직 근로자들은 머지않아 AI에게 일자리를 뺏길 것이라는 얘기다. “미래에는 놀랄 정도로 많은 정신적, 육체적 생산활동이 새로운 기기들로 대체됩니다. 자동화 기기나 프로그램을 구입하면 되는데 굳이 사람을 고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고등교육이 필요한 일자리는 인공지능이 빼앗고, 단순업무는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게 될까요.
“1920년대 중반만 해도 계산을 하는 것은 전문직 종사자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자계산기가 이 일을 합니다. 전문직이 했던 일을 이미 기계가 하고 있는 겁니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기계가 대체할 일은 난이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2살짜리 아이도 기계를 이용하면 어려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AI로 인해 인류가 더 편리해질 수 있도록 활용하면 됩니다.”
가장 취약한 일자리는 무엇인가요.
“신용카드 발급 대상자를 정하는 것처럼 구체적이며 객관적인 기준이 있거나, 고객 서비스처럼 업무분장이 체계화돼 있는 일자리들은 이미 기계가 하고 있거나 앞으로는 기계가 하게 될 겁니다. 미국에선 300만명에 달하는 운전기사들이 가장 큰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20~30년 내로 자율주행차량이 도로를 누빌 것이기 때문이죠. 자율주행 트럭들은 피곤하지도, 술에 취하지도, 아프지도, 지루함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쉬었다 갈 필요없이 24시간 운행할 수 있으므로, 비용은 줄어들고 운송시간은 더욱 단축될 겁니다.”
그는 물류창고의 근로자도 로봇으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은 크기와 모양이 다른 다양한 상자들을 어떻게 들고 어떤 방식으로 쌓을지에 인간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조만간 로봇이 트럭을 들여다보고 상자를 골라서 집어들게 될 것입니다.”
지적 노동자의 입지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미국의 한 스타트업에서는 기계학습과 자연언어처리기술을 이용해 법리와 판례와 같은 문서를 찾을 수 있다. 법률도서관을 직접 찾아가 기존 컴퓨터 검색도구로 찾아보는 데 드는 막대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변호사 자리도 위협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AI가 발달해도 인간의 영역은 그대로일 것이라는 반론에 대해 “50년 전 IBM이 컴퓨터를 개발했을 때를 상기시킨다. 당시 신기술이 일자리를 뺏을 거라고 걱정하는 이들에게 IBM은 ‘컴퓨터는 프로그램된 기능만 수행할 수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 등으로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로봇과 인간이 공존할 방법은 없나요.
“인간은 더욱 가치 있는 일을 하게 될 겁니다. 기계가 인류 번영을 위해 어떤 역할까지 수행할지가 문제죠. 한국이나 일본 등 고령화가 빨리 진행되는 국가에서는 기계가 많은 도움을 줄 겁니다. 한국의 경우 AI 같은 신기술이 본격화되는 시기가 인구 감소 시기와 맞아떨어지면서 더욱 풍요로워질 겁니다.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가로채는 게 아닙니다. 기계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일을 할 뿐입니다. 다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의 특성이 바뀌겠죠.”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반면 새로운 일자리도 생겨나지 않을까요.
“물론입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기계가 효율적인 일을 수행하면서 사회는 더욱 부유해지고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직업이 생겨날 겁니다. 특히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직업이라든지, 공동체 의식을 다지는 일자리가 그런 거죠. 산업혁명 초기 방직공장을 가득 채웠던 노동자들은 자동방직기가 들어선 이후 모두 사라졌어요. 하지만 생산라인과 자동방직기를 관리할 새로운 직업이 생겨났죠. 기계의 발전은 인간이 하는 일의 특성을 바꿀 뿐입니다. 생산성 향상으로 부가 축적되면 새로운 서비스와 재화가 등장하고 이에 맞춰 새로운 직업이 생겨날 겁니다.”
“인간은 필요 없다? 그렇지는 않을 것”
카플란 교수는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인간은 필요할 것”이라며 “인간의 감각이나 손길이 필요한 직업은 계속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파티 플래너, 플로리스트, 장의사 등을 미래에도 살아 남을 직업으로 꼽았다.
“누가 술을 마시면서 AI 바텐더에게 개인적인 고민을 털어놓겠어요. 이런 특급호텔에서 로봇이 반기는 것을 원하는 고객이 있을까요. 교회에서 로봇목사가 하는 설교를 들으려고 하는 신자도 없을 겁니다. 자신의 결혼식 파티를 로봇에게 맡기지 않을 거고 내 가족의 수의를 로봇이 입히게 하지도 않을 겁니다. 지금도 기계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제품보다는 사람이 직접 손으로 만든 제품이 더 인기를 끌고 있잖아요.”
그는 다만 기술의 진보로 인해 생기는 실업문제는 심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업은 일자리 부족보다는 일자리가 요구하는 기술의 진보 때문에 발생한다. 기술의 발전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학교에서 배우고 그 다음 일을 찾는 시스템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겨우 한 분야에서 선두에 섰다고 생각한 순간 뒤떨어진 기술이 돼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학교에서 가르치는 스킬(skill)이 미래에도 경제적인 가치가 있게끔 교육과정을 개선해야 합니다. 기술발전의 속도가 노동자들이 적응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교육방식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기술발전을 따라잡지 못합니다. 지금의 직업 훈련 시스템은 대대적으로 현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는 경제적인 여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동안은 상당한 사회적 혼란이 있을 겁니다.”
AI가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고 보나요.
“AI가 인간을 지배하지는 못합니다. 그건 할리우드에서 만든 미신이죠. 미래세계는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터미네이터 시대’보다 기계와 인간이 공존하는 ‘스타트렉 시대’에 가까울 겁니다. 로봇을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 수 있지만 인간이 로봇과 의미 있는 감정 관계를 맺지는 못합니다. 로봇과의 대결도 실현되지 않을 겁니다. 기계들이 인간의 지배를 무력화하려고 폭동을 일으키거나 무기를 차지할 리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AI와 인간의 대결보다는 AI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대부분의 기업이 그렇듯이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서비스만을 제공하고 남은 이익은 모두 자기 호주머니에 거둬들입니다. 미래엔 AI를 만들고 소유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이익을 가져가면서 부자는 더 부자가 될 겁니다. 반면 서민들은 로봇을 갖기는커녕 일자리만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수혜자는 소위 말하는 상위 1%에 해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기술발전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노동을 자본으로 대체하고 그렇게 새로 창출되는 부는 부유한 사람들에게 많이 배분됩니다. 이게 우리가 직면할 가장 큰 도전입니다. 부의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부가 사회에 보다 넓게 분배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카플란 교수는 “우리가 미래성장분에 따른 이득을 더 넓게 나눠줄 수 있다면 소득 격차는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득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무조건 부자에게 거둬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 줄 필요는 없다. 지금의 정치, 경제환경에서는 실현 가능성도 없다.
“지금 미래를 내다보고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선택받은 소수의 행운아들을 제외한 많은 사람들이 50년이나 그 이상의 세월을 가난과 불평등 속에 살아야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어찌 됐든 기계와 공생하거나 기계에 의존해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가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발전의 방향을 정하고 폐해를 줄이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희망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