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화텅 텐센트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회사 지분 1.06%, 2조3200억원어치를 기부해 자선 단체를 설립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마화텅 텐센트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회사 지분 1.06%, 2조3200억원어치를 기부해 자선 단체를 설립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중국 대표 기업가들이 잇달아 거액을 기부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 마화텅(馬化騰) 텐센트(騰訊) 회장 등 IT(정보기술) 업계를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젊은 기업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미국·유럽은 물론 홍콩·대만 등 중화권 기업가들과 비교해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중국 재계의 기부 문화가 바뀔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텐센트는 4월 19일 마화텅 회장이 자선재단을 설립하고 자신이 보유한 텐센트 주식 1억주(1.06%)를 출연한다고 발표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2조3200억원어치다. 마 회장이 보유한 텐센트 지분 8.82% 가운데 8분의 1가량을 내놓는 셈이다. 텐센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IT회사 내스퍼스가 33.5%의 지분을 소유한 최대 주주이며 마 회장은 2대 주주다.

마 회장은 이날 “지난 10년간 다양한 자선 활동에 참여하면서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한 결과, 장기적이고 조직적인 방법으로 꾸준히 사회에 기여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재단 설립을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또 “각종 사업을 맡을 전문가들을 영입해 재단운영을 맡기고 전체적인 방향을 이끌어 나가는 것 이외에는 개입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자선재단은 중국의 보건의료, 교육, 환경보호 관련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다만 재단은 중국이 아닌 홍콩에 설립, 운영된다. 텐센트는 홍콩 증시에 상장돼 있다.


중국 선전 텐센트 본사 사옥
중국 선전 텐센트 본사 사옥

재단 설립해 보건·교육·환경 지원

마 회장은 1971년 중국 광둥성 산터우(汕頭)에서 ‘관얼다이(官二代·관료 2세)’로 태어났다. 부친은 교통부 부국장을 지낸 마천슈(馬陳術)로 선전의 지방항만공사 대표 등을 역임했다. 마 회장의 부친은 이때 선전에서 사업하던 홍콩 기업인들과 교분을 맺는다.

선전대에 입학한 시기는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1989년.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별명이 ‘해커’였을 정도로 컴퓨터에 밝았다. 1993년 대학을 졸업한 뒤 무선호출기(삐삐)의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인 선전룬쉰(潤迅)에 개발자로 취직했다. 1992년 덩샤오핑 당시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선전, 상하이 등을 돌며 개혁·개방 확대를 강조한 남순강화(南巡講話)가 있었던 다음 해다. 이후 선전을 휩쓴 IT 산업 붐을 타고 창업에 뛰어든 게 자연스러웠다는 얘기다. 월급을 쪼개 주식에 투자하던 마 회장은 ‘실시간으로 주가를 확인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생겨 ‘구바(股覇)카드’라는 이름의 컴퓨터용 장치를 선전대 동문들과 함께 개발했다. 선전 유명 전자상가에서 제품이 동날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1998년 마 회장은 한 살 아래 친구인 장즈동(張志東)과 ‘텐센트’를 설립했다. 1999년 2월에 내놓은 첫 작품이 인스턴트메신저 ‘QQ’였다. 미국의 ICQ가 1996년 출시한 인스턴트메신저가 이미 중국 시장을 독점하다시피한 상황이었다. 텐센트의 중국명인 텅쉰(騰訊)도 메신저와 관련이 있다. 텅(騰)은 마화텅을, 쉰(訊)은 메시지를 의미한다.

텐센트가 성공한 비결은 농민적 근면성을 바탕으로 한 미세(微細) 혁신, 모바일 인터넷이란 블루오션에 대한 선착 등이다. QQ는 ICQ와 달리 텐센트 서버에 친구 정보를 저장하게 했다. 어떤 단말기를 써도 자기 아이디(ID)만 있으면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게 한 게 초기 저변을 넓히는 데 주효했다. 친구들이 온라인에 없을 때도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기능이나 자기를 캐릭터로 표시할 수 있도록 한 기능도 미세 혁신의 사례들이다. 미세 혁신을 뒷받침한 건 농민적 근면성이다. 텐센트 직원이 중국 언론에 털어놓은 일화가 대표적이다. 새벽 2시에 파워포인트로 작성한 보고서를 보내고 잠을 청한 이 직원은 20분도 안 돼 ‘이 부분을 고치라’는 답신 메일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휴대전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야 했다고 한다. 2004년부터는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모든 생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을 목표로 적극적으로 인수합병(M&A)에 나섰다. 인터넷을 통해 은행, 보험, 펀드 판매 등을 모두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에까지 뛰어들었다. 부동산, 의료, 물류 사업에도 진출해 있다.

마화텅 회장의 기부 선언은 마윈 알리바바 회장에 뒤이어 중국 IT 거물이 부(富)의 사회 환원을 선언한 것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상대적으로 기부에 인색했던 중국 기업가들이 IT업계를 중심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IT는 다른 산업에 비해서 창업자들이 젊을 뿐만 아니라 서구식 기업 운영 방식에 익숙하다. 또 미국, 홍콩 등 해외 증시에 상장된 경우가 많아 제도적으로도 기부에 유리하다.


IT 거부 중 마윈 회장 이어 두 번째 거액 기부

마화텅 회장에 앞서 2015년 4월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 회장과 차이충신 부회장은 알리바바의 미국 뉴욕 증시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알리바바 주식의 2%에 해당하는 스톡옵션을 자산으로 2개의 공익재단을 설립했다. 알리바바 주가를 감안하면 재단 자산 규모는 총 40억6000만달러(4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러한 기류에 최근 변화가 감지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2016년 1월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행정대학원) 애쉬센터는 중국 기업인 기부 현황 조사 보고서에서 “2015년 민간 기업가들이 사재를 출연해 재단을 세우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기부 금액 상위 100대 기업인을 조사한 결과, 20명이 민간 재단을 설립하는 형태였다”고 덧붙였다.

중국 부자들이 기부에 나서는 이유는 먼저 사회적인 인정을 받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중국 부유층의 해외 유학·이직 컨설팅 회상 만다린컨설턴트의 캐리 월리 사장은 “결국 아무리 많은 자동차와 집을 가지고 있더라도,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고 부를 인정받아야 한다”며 “부자들이 기부에 나선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설명했다. 2006년 쓰촨(四川)성 다이(大邑)현에 중국 최대 박물관인 젠촨(建川)박물관을 세운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 판젠촨(樊建川)은 “인간은 다른 이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때 진짜로 죽는 것”이라며 “박물관을 세우면서 사람들의 기억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된 셈”이라고 건립 이유를 설명했다.

부자들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커진 것도 또 다른 이유로 거론된다. 마윈 회장의 경우 2015년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微博)에서 그를 ‘교양과 지식 없이 사치를 일삼는 벼락부자’를 의미하는 ‘투하오(土豪)’의 대표격인 인물로 거론하며 비난하는 여론으로 적잖은 곤욕을 치렀다. 마윈 회장이 홍콩에서 호화주택을 샀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비난 여론은 크게 확산됐다. 많은 사용자를 확보해야 하는 IT업계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러한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게 중국 안팎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