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경제가 애플발(發) 리스크에 몸살을 앓고 있다. 대만의 주력 산업인 IT(정보기술) 분야 기업들이 애플 아이폰 판매가 정체에 접어들면서 덩달아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들은 애플에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주요 부품을 납품하고 생산도 맡고 있다. 애플이 ‘감기’를 앓으면, 이들 중간재 업체들은 ‘몸살’에 시달리게 되는 구조인 셈이다.

무엇보다 대만 IT 업계의 당면한 문제는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높은 성능과 디자인·UX(사용자경험) 등의 차별화로 사용자를 늘려온 애플의 성장 방식이 구조적으로 한계에 접어들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 자체 스마트폰 회사들은 가격 경쟁력이 있는 자국산 부품을 늘리고 있다. 가뜩이나 침체상태인 PC용 부품 납품 비중이 높은 상황이라 스마트폰의 급격한 범용화는 뼈아플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는 5월 19일 대만 증시가 2007년 4월 이후 가장 저평가된 지점에 도달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대만 증시 상장사들의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4로, MSCI세계증시지수(MSCI All Country World Index)에 포함된 기업의 평균 PBR 1.9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증시 대비 대만 증시의 PBR 비율은 2007년 4월 이후 최저치”라는 게 블룸버그의 설명이다.

대만 가권지수는 2015년 4월 9973.12까지 올랐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락했다. 5월 19일 현재 주가지수는 8095.98로, 지난해 4월 대비 18.9% 낮다. 주가 하락의 주요 원인은 IT 분야 종목들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미국 금융정보회사 S&P캐피털IQ에 따르면 시가 총액 50위(19일 현재)까지 주요 상장사 가운데 통신사를 제외한 IT회사는 모두 19곳(38%). 이 가운데 1년 전과 비교해 주가가 하락하지 않은 기업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회사 TSMC와 대만 최대 LED(발광다이오드) 회사 라이트온뿐이다.

중저가 스마트폰용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회사 미디어텍은 49.0%, 스마트폰용 LCD(액정디스플레이)를 생산하는 치메이이노룩스도 49.0% 각각 하락하면서 주가가 반 토막 났다. 또 다른 LCD 회사 AU옵트로닉스(-47.9%)도, 메모리반도체 회사 난야(-37.9%)도 큰 폭으로 주가가 하락했다. 세계 최대 EMS(IT위탁생산업체) 폭스콘(-28.1%)과 경쟁업체인 페가트론(-32.2%)도 하락폭이 컸다. 이들 회사들은 애플을 비롯해 미국과 일본 IT 완제품 회사를 주요 고객으로 삼고 있다. 하워드 왕 JP모간 자산운용 홍콩 지사장은 “대만 증시는 IT제품의 수출 물량, 특히 애플에 대한 부품 공급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TSMC·훙하이 등 줄줄이 매출 감소

IT회사들의 주가가 급락한 것은 스마트폰 시장 확대로 빠르게 늘어나던 매출과 영업이익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큰 폭으로 역성장했기 때문이다. 대만 시총 1위 기업인 TSMC의 2016년 1분기 매출은 2030억대만달러(7조4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8.4% 줄었다. 영업이익(730억대만달러·2조6000억원)은 16.0% 감소했다. TMSC는 2015년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49.8%, 영업이익은 65.0%가 늘어나는 등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었다. 애플이 삼성전자 대신 TSMC를 AP 주력 공급선으로 삼으면서 아이폰, 아이패드용 AP 주문이 큰 폭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성장세가 뚝 꺾인 것이다. 시총 2위로 폭스콘, 치메이이노룩스의 모회사인 훙하이(鴻海)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훙하이의 1분기 매출(9580억대만달러·34조7000억원)과 영업이익(350억대만달러·1조2800억원)은 2015년 1분기와 비교해 각각 5.5%, 8.5%감소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대만 주요 19개 IT회사의 4월 매출을 자체 집계한 결과 2015년 11월 이후 6개월 연속 줄었다고 최근 전했다. 니혼게이자이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최장기 침체 국면”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디스플레이 분야의 매출 감소세가 두드러졌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설명했다. 치메이이노룩스는 12개월 연속 월매출이 줄었다. 스마트폰 회사 HTC도 지난해 직원 15%를 줄였지만, 13개월 연속 매출이 역성장하는 등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장지아치(張家麒)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대만의 IT 산업은 하드웨어 위주라 PC, 스마트폰 판매 침체에 대단히 취약하다”고 말했다.


폭스콘, 생존 위해 美 MS 휴대전화 사업 인수

대만 기업들이 고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중국 현지 업체의 성장이다. 특히 LCD 분야에서는 BOE, 차이나스타 등 중국 업체들이 빠른 속도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AU옵트로닉스는 1분기 51억대만달러(185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중국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판매 가격이 낮아지고 점유율도 하락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위츠뷰에 따르면 TV용 LCD 패널 시장에서 2015년 11월부터 BOE가 AU옵트로닉스를 제치고 3위 업체가 됐다. 펑솽랑(彭双浪) AU옵트로닉스 회장은 4월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차별화하지 못하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위기감을 표시했다. 터치패널 회사 TPK도 올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0% 줄고 영업 손실로 돌아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훙하이는 3월 일본 디스플레이 회사 샤프에 이어 5월 18일에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노키아 스마트폰 사업부를 인수하는 등 M&A(인수·합병)를 통한 다각화에 나섰다. 노키아 브랜드의 스마트폰 사업을 확보하면서, 훙하이는 스마트폰 부품부터 완제품 제조, 독자 유통망까지 확보하는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다.

훙하이는 궈타이밍(郭台銘) 회장의 고문인 프랑스 기업인 장 프랑수아 바릴을 내세워 노키아 브랜드 사용권과 특허권까지 확보한 상태. 언제든지 ‘노키아’ 브랜드의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독자 생산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훙하이는 이 밖에도 로봇, 스마트공장, 전기차·무인차 등 다양한 신사업에 진출했다. 이를 위해 테슬라, 알리바바, SK 등과 사업제휴를 맺고 있다. 이 같은 훙하이의 행보는 M&A와 사업 제휴를 통해 다른 기업의 역량을 흡수, 빠른 시간 내에 하드웨어 EMS 업체의 한계를 벗어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TSMC, 미디어텍 등 스마트폰용 반도체 업체들은 애플과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 신흥국 공략에 나섰다. TSMC는 “지금 실적 하락은 예상 범위 내”라며 “올해 하반기부터 최첨단 제품을 인도, 인도네시아 중저가 스마트폰용으로 공급하기 위해 판매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디어텍도 인도, 인도네시아 시장 공략에 집중하고 있다. 페가트론 등은 웨어러블 기기 시장을 신성장동력으로 보고 관련 기술력 확보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