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5일 한국외대 국제대학원에서 만난 김원호 교수는 현재 베네수엘라에 닥친 위기는 ‘원자재에 대한 지나친 의존’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가 정부 연구소에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98년 당시 멕시코, 브라질 등 다른 중남미 국가들은 다른 산업을 키워 석유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을 시기였기에 베네수엘라 경제부 차관에게 물었죠. ‘많은 중남미 국가들이 제조업을 일으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느냐’고요. 그러자 ‘한국엔 뭐가 나느냐’ 묻더니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갖고 있는 나라인데다 천연가스, 금, 니켈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다면서 우리는 제조업이나 공업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더군요. 과거부터 이어져 온 원자재 일변도의 경제성장책이 위기의 시발점이 된 겁니다.”

원자재에 대한 지나친 의존 외에 또 다른 원인은 무엇입니까.
“현 위기는 1999년 우고 차베스가 등장하면서부터 다 예고됐던 일입니다. 베네수엘라는 외환 수입의 98%, 국가 재정의 80%를 석유에 의존합니다. 차베스 전 대통령은 석유로 벌어들인 돈을 모두 서민을 위한 복지·사회정책에 썼습니다. 운 좋게도 그가 집권한 시기 동안엔 유가가 고공행진했지만, 이후 유가가 떨어지면서 베네수엘라가 지금의 상황이 된 거죠.”

저유가 시대가 오면서 고유가 시기의 재정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거군요.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Carlos Andres Perez) 전 대통령이 1975년 석유산업을 국유화했어요. 그때부터 정부가 석유를 팔아 번 돈을 막 쓰기 시작했고 부패가 시작된 거죠. 포퓰리스트들의 등장으로 국민성 자체가 병들기 시작했어요. 자연스레 ‘석유는 곧 국민의 재산’ 이라는 인식이 생겨난 것입니다. 지금처럼 나라가 살기 어려워지면 ‘정부가 석유로 번 돈을 다 자기 주머니로  집어넣어서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1975년 석유 국유화 이후, 1992년 석유사업 일부가 민영화됐다. 차베스는 집권 후 2003년 석유법을 새로 제정해 다시 석유사업을 국가 독점으로 바꿨다. 이때 차베스는 이를 반대하는 민간 회사의 경영진들과 고급 기술자들을 모두 해고해버렸다. 김 교수는 “당시 정부는 석유에서 나오는 달콤한 과실들을 누리기만 했지 기술이나 생산성 향상을 위해 투자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의 석유업은 퇴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가 다른 산유국보다도 저유가 위기로 인한 타격을 많이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 원자재 수출 기반 경제를 갖춘 나라들은 국제 원자재 가격 변동에 상당히 민감합니다. 변동성 때문에 경제 계획을 세우기도 어렵죠. 어떤 나라는 이런 상황에서 지혜를 발휘합니다. 칠레나 콜롬비아의 경우 주원자재에 대해 일정 기준가격을 정해놓고 가격이 올랐을 때 벌어들인 수익을 비상 공적자금으로 비축합니다. 가격이 떨어졌을 때 기업도산을 막기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죠. 멕시코나 브라질은 일찍이 원자재 수출에만 의존해서는 국가가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 없겠다는 것을 깨닫고 주요 산업을 다변화시켜 왔어요. 베네수엘라도 경제가 잘나갔을 때 산업을 다변화했다면 지금의 모습과는 다르지 않았을까요.”

현 베네수엘라 위기의 돌파구는 무엇일까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석유산업에 재투자해야 하고, 두 번째로 해외로 유출된 인재들의 자리를 메울 고급 인력들을 다시 키워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조업, 공업 등 다변화된 산업 구조를 위한 정책을 펴야 합니다. 원자재 수출 기반 경제가 70~80년 동안 지속되고 있어 변화는 쉽지 않아 보이지만 냉철하게 베네수엘라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바람직한 정책을 펼친다면 희망은 있으리라 봅니다.”


▒ 김원호
한국외국어대 서반아어과, 미국 텍사스대 중남미지역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소장,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