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통신업체 소프트뱅크의 도쿄 매장에서 한 고객이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인공지능(AI) 로봇 ‘페퍼’의 안내를 받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일본 통신업체 소프트뱅크의 도쿄 매장에서 한 고객이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인공지능(AI) 로봇 ‘페퍼’의 안내를 받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우주비행사를 닮은 로봇이 음식을 들고 손님에게 다가간다. 손님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연신 음식과 로봇을 번갈아 쳐다본다. 주문을 받는 것도 로봇 웨이터의 몫이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지난 3월 보도한 중국 랴오닝 성(遼寧省) 셴양(瀋陽)의 한 식당 풍경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로봇 웨이터는 한 번에 최대 7kg까지 운반 가능하며 센서를 통해 음식물을 주방에서 고객 테이블까지 쏟지 않고 안전하게 운반한다.

한 번 충전으로 최대 8시간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다. 로봇 웨이터의 최대 장점은 별도의 팁은 물론 급여를 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보는 손님들이야 즐겁겠지만, 생계를 위해 음식점에서 일하는 입장에서는 흐뭇한 광경일 리 없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 1월 보고서를 통해 로봇 기술과 인공지능(AI)의 발달로 향후 5년간 710만명이 일자리를 잃고 21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제까지 중국을 중심으로 등장한 로봇식당은 손님을 끌기 위한 마케팅 목적으로 로봇 종업원을 이용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미국 패스트푸드 업계를 중심으로 비용 절감을 위해 로봇 기술 이용을 검토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전국적으로 최저임금 인상 바람이 불면서 인건비 인상 부담을 느낀 업체들이 로봇 종업원 도입과 무인 매장 확대를 검토하고 나선 것.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근무하는 저소득층 시간제 근로자들이 대거 일자리를 잃을 경우 실업률이 증가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뜩이나 심각한 소득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면서 경제 회복도 뒷걸음질 칠 가능성이 있다. 미국 경제가 후퇴하면 북미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글로벌 경기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완전고용에도 고용의 질은 저하

존 윌리엄스(John C. Williams)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5월 23일(현지시각)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사실상 완전고용에 도달했다”고 선언했다. 완전고용은 노동의 의지와 능력이 있는 모든 사람이 고용되는 상태를 말한다.

완전고용은 물가안정과 함께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양대 통화 정책 목표다. 이에 앞서 윌리엄 더들리 뉴욕 연은 총재는 “환율 등의 변수가 있지만,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인 2%로 오를 것”이라며 연준의 이달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윌리엄스 총재의 언급대로 미국에서는 지난 2년간 월평균 2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때 10%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은 5%로 떨어졌다. 문제는 고용의 질(質)이다.

미국 중산층의 임금 상승은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완전고용에 도달할 경우 임금 상승률은 연 3~3.5%에 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현재는 2.5% 수준에 머물고 있다. 윌리엄스 총재도 “임금 부분은 혼란스럽다”며 “기대만큼 오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금융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제조업과 건설업의 고임금 포지션이 대거 사라졌지만, 숙박업과 케이터링 등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직종의 신규 고용이 두드러졌다는 것을 고려하면 고용의 질 저하는 이해할 수 있는 변화다. 특히 패스트푸드점 근로자를 비롯한 시간제(파트타임) 근로자의 증가는 미국 경제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의 최근 자료를 보면, 2016년 현재 미국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원하는 시간제 근로자는 600만명에 달한다.

금융위기 이전에 400만명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큰 폭의 증가다. 600만명 중 3분의 1이 넘는 210만명은 두 개 이상의 시간제 근무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5~2014년 평균(180만명)보다도 늘었다. 전문가들은 복수의 직장에서 시간제 근무를 하는 것이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생계문제 해결을 위한 피치 못한 선택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CNN머니는 이와 관련해 최근 기사에서 텍사스주 윈터스의 제조업체 공장에서 일하다 금융위기 직후 일자리를 잃으면서 궁여지책으로 세 곳의 다른 직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55세의 여성 얼린다 델라크루즈(Erlinda Delacruz)의 고단한 삶을 조명했다.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 델라크루즈는 세금을 제하고 월 2000달러(약 240만원)의 급여에 연 4주의 유급휴가, 의료 혜택까지 보장받았다. 하지만 노인 복지시설과 월마트, 편의점에서 주 60시간을 일하는 지금 그가 받는 급여는 월 1600달러에 불과하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늘면서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거세졌다. 2012년 11월 미국 뉴욕시의 패스트푸드 레스토랑 직원 200여명이 시간당 15달러로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시작했다.

이들의 시위는 3년 동안 이어지며 전국으로 퍼졌고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졌다. 캘리포니아주 상·하원은 지난 3월 31일 주 최저임금을 현행 10달러에서 2022년까지 15달러로 단계적으로 올리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뉴욕주도 현재 9달러 수준인 최저임금을 늦어도 2022년까지 15달러로 인상하기 결정했다. 현재 연방법에 따른 최저임금 기준은 7.25달러다.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주도 23개나 된다. 이 때문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연방 최저임금을 10.1달러로 올리는 법안을 제안했지만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은 기업 경영에 부담을 줘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이유로 반대해 왔다.

결국, 대통령 행정명령을 통해 연방정부 산하 용역 직원들만 10.1달러의 최저임금을 적용받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논란은 대선이 다가오면서 정치권의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각각 시간당 12달러, 15달러로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힐러리는 지난해 최저 시급을 15달러까지 인상하는 데 동의한다고 밝혔지만, 12달러로 한발 물러섰다. 공화당의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애초 시간당 7.25달러의 최저임금도 너무 많다는 입장이었지만 5월 3일 대선후보로 사실상 결정된 뒤 가진 인터뷰에서는 “나는 대부분의 다른 공화당원들과 다르다”며 “최저임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해 공화당 지도부를 당혹스럽게 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맥도널드 매장 앞에서 종업원들이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맥도널드 매장 앞에서 종업원들이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로봇 웨이터 도입하는 패스트푸드 업계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최저임금 인상 움직임에 부담을 느낀 맥도널드와 피자헛, 웬디스 등 패스트푸드 업체들이 로봇 종업원을 도입하고 무인 판매점을 늘리는 등 비용 절감을 위한 실험에 나선 것. 가장 적극적인 곳은 세계 3위 햄버거 체인인 웬디스(Wendy’s)다. 웬디스는 올해 하반기 중으로 6000개가 넘는 미국 내 매장에 무인 주문과 결제를 할 수 있는 컴퓨터 자동 주문 시스템 ‘키오스크(kiosk)’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피자헛은 올해 안에 소프트뱅크가 개발한 인공지능(AI) 로봇 ‘페퍼(Pepper)’를 일본 매장에 도입하기로 했다. 페퍼는 고객들과 대화하고 질문을 받아 대답하면서 스마트폰에서 마스터카드의 디지털 지갑인 ‘마스터패스(MasterPass)’로 고객들의 계산을 돕는다.

페퍼는 이미 일본의 시중은행에서도 일자리를 얻었다. 일본 미즈호은행은 페퍼를 일부 지점에 배치하고 고객 안내에서부터 직접 금융상품을 설명하는 업무까지 맡겼다. 페퍼가 일하는 미즈호은행은 올해 말까지 100개 지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맥도널드는 이미 일부 매장에서 터치스크린 키오스크 시스템을 선보이고 있다. 고객은 매장에 들어서 직원이 아닌 터치스크린 기계에서 메뉴를 주문하고 결제를 한다. 주문 시 본인이 원하는 입맛에 맞게 재료의 크기와 양도 조절할 수 있다.

1991년부터 1997년까지 맥도널드의 CEO로 재직했던 렌지는 5월 25일 폭스TV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최저임금을 전국적으로 시간당 15달러(약 1만7700원)로 올리면 일자리가 믿을 수 없을 만큼 크게 줄어들 것”이라며 로봇 한 대 가격은 3만5000달러(약 4100만원)지만 감자튀김을 포장하는 일을 하며 시간당 15달러를 받는 사람을 쓰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신이 처음 맥도널드에서 일을 시작한 1966년에는 매장당 70∼80명의 직원이 일했지만 지금 절반 이하로 줄었다며 “미국의 젊은 흑인 남성의 경우 실업률이 50%에 달하는데 최저임금이 15달러로 높아지면 노동시장 진입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5월 초 발표된 미국의 4월 실업률은 5.0%로 전달과 같았다. 하지만 4월 한 달 동안 새로 생겨난 일자리는 16만개로 시장 전망치인 20만명에 미치지 못했다. 앞서 발표된 일자리 증가폭도 하향 조정됐다.

2월에는 애초 24만5000명으로 발표됐다가 23만3000명으로, 3월에는 당초 21만5000명에서 20만8000명으로 조정되면서 두달간 1만9000명 줄었다. 이에 앞서 4월 말 발표된 미국의 1분기 경제성장률은 0.5%(연율) 증가에 그쳐 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올 1분기 경제성장이 0.5%에 그친 데 이어 고용마저 주춤해지고 있는 데 대해 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무인기술의 눈부신 발전이라는 변수와 엮이면서 미국과 세계경제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Plus Point

韓·英·日도 최저임금 인상 공방

최저임금 인상이 중요한 사회 쟁점이 된 것은 미국만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가 저성장 기조로 돌아서면서 소득 불균형이 커진 데 대한 반작용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전 세계적으로 높아졌다.

영국은 ‘생활임금’ 제도를 도입해 시간당 6.7파운드였던 최저임금을 올해 7.2파운드, 2020년 9파운드(약 1만5000원)로 단계적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최저생계비 이상의 생활을 보장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본은 매년 최저임금을 3%씩 올려 1000엔까지 높이기로 했다.

국내에서는 내년 최저임금을 둘러싸고 노동계와 경영계의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4월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17년 최저임금 논의를 시작했다.

올해 최저임금은 6030원이지만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원’을 주요 투쟁 목표로 세우고 서명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정치권도 힘을 보태고 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각각 2020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을 8000원, 1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오를 경우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Plus Point

“최저임금 올리면 고용 줄어” “올려도 영향 없다”
경제학계 최저임금 인상 논쟁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에 대한 논란은 90년대 이후 경제학계에서 찬반 진영이 팽팽하게 맞서왔다. 앨런 크루거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1992년 뉴저지주에서 이뤄졌던 최저임금 인상과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10대들의 임금 관계 분석 결과를 인용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10대의 고용이 감소했다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데일 벨먼 미시간주립대 교수도 2013년 “최저임금이 고용에 부정적인 효과를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류 경제학자들은 여전히 “최저임금이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요나 루빈스타인 브라운대 교수와 제러미 웨스트 MIT대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보수성향의 헤리티지 재단은 2013년 연구를 통해 오바마 대통령이 주장한 시간당 10.1달러의 최저임금을 현실화할 경우 2014~2023년 사이 21만7000개의 일자리가 줄고,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299억달러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합리적인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을 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5년 고용전망 보고서는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움직임에 힘을 실어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몇년간 최저임금을 인상한 영국의 실업률이 낮게 유지되면서 최저임금 상승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는 경제학자들 주장이 도전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올해 2월 석달간 영국의 실업률은 5.1%로 2006년 초 이후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