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영씨는 파리국립고등음악원 석사 졸업시험에서 25명 중 유일하게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최고점수를 받아 1등으로 졸업했다.
임희영씨는 파리국립고등음악원 석사 졸업시험에서 25명 중 유일하게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최고점수를 받아 1등으로 졸업했다.

지난 2월 말 한국 음악계에 희소식이 전해졌다. 세계적인 명문 악단인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첼리스트에 최초로 한국인이 뽑힌 것이다.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로 1918년 창단해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전설적인 지휘자 빌렘 멩겔베르크를 시작으로 데이비드 진먼, 발레리 게르기예프 등 명지휘자들이 거쳐 갔으며, 2008년부터는 차세대 거장으로 꼽히는 야닉 네제 세갱(Yannick Nezet Seguin)이 상임지휘자 겸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 수석은 한 번 결정되면 은퇴할 때까지 활동하기 때문에 자리가 나기 쉽지 않다. 15년간 활동한 전(前) 수석첼리스트가 뮌헨 필하모닉으로 옮기면서 생겨난 공석을 차지한 주인공이 바로 첼리스트 임희영씨다.

그는 현재 로테르담 필하모닉의 유일한 한국인 단원이자 최초의 한국인 수석연주자다. 국적·성별 등 편견을 없애기 위한 블라인드 테스트를 두 차례 거친 뒤 상임지휘자인 야닉 네제 세갱과 전(全) 단원들 앞에서 연주해 만장일치 합격을 이끌어냈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뉴잉글랜드음악원과 프랑스 파리국립고등음악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 바이마르 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과 파리국립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에 합격, 두 학교에서 동시에 최고연주자 과정을 수료했다.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2009년 워싱턴 국제현악콩쿠르 1위, 미국 아스트랄 아티스트 내셔널 오디션 우승 등 다수의 국제 콩쿠르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이메일로 보내 온 그의 인터뷰 답변에서는 직접 만나지 않아도 느껴지는 당당함이 묻어났다.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확신을 수석 오디션의 심사위원들도 높이 평가하지 않았을까.


독일과 이탈리아의 두 후보를 제치고 첼로 수석으로 선정됐습니다. 본인의 어떤 점이 심사위원들에게 어필했다고 보나요.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디션을 즐겁게 준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수석 오디션인 만큼 첼로 솔로가 나온 오케스트라 곡들만 발췌해 첼리스트의 기량과 음악성을 최대한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종종 사람들로부터 저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음악성과 소리가 있다는 말을 듣는데, 이날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께서 제가 가진 특별함에 손을 들어주신 게 아닐까 합니다.”

처음에 어떻게 음악을 시작했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적, 유치원에 있는 피아노에 앉아 귀로만 들은 멜로디를 치며 피아노 앞을 떠날 줄 모르는 제 모습을 보신 선생님께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음악을 시킬 것을 권유하셨어요. 나름 동네에서 잘 치는 초등학생 자격으로 콩쿠르에 나갔는데 보기 좋게 예선 탈락했죠. 나중에 아는 교수님과 진로를 의논할 때였는데, 손이 너무 작아 현실적으로 피아니스트가 되긴 어렵겠다고 하셔서 취미로만 피아노를 배웠어요.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 친구분이 4분의 1 크기의 첼로를 선물로 가져오셨어요.
처음엔 피아노를 포기한 상처 때문에 악기를 배우고 싶지 않아 약 1년간 첼로를 거실에 장식품처럼 방치했죠.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첼로에 관심을 보이는 바람에 저도 덩달아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때만 해도 전공의 길을 가리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 오디션 공고를 보고 지원해 덜컥 합격하는 바람에 첼로 인생이 시작된 거죠.”

2001년 클래식 영재 발굴 시스템인 ‘금호영재콘서트’를 통해 데뷔했습니다. 예원학교(중학교 과정의 예술계 특수학교)를 거쳐 만 15세에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영재 입학했죠. 노력파이기보단‘타고난 천재’처럼 보이는데요.
“어렸을 때는 제가 조금 잘하는 줄 알고 빈둥대기도 하고 게을렀던 적도 있죠.
하지만 유학 와서 ‘첼로 괴물’ 같은 동료들을 보며 ‘타고나는 것은 바로 저런 거구나’ 하고 잠시 좌절하기도 했어요. 그 이후로는 겸손하게 스스로를 담금질하며 뼈를 깎는 노력을 했습니다.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밥 먹는 시간 빼고는 첼로만 연습하는 날이 예사였죠.”

경영계에는 어떤 일이든 1만 시간 정도의 노력을 투자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타고나지 않아도 노력만으로 음악적 성공을 이룰 수 있다고 보나요.
“음악은 다른 분야보다 경쟁이 더 치열하다고 생각합니다.
해마다 세계 각국의 명문 콘서바토리(음악원)에서는 수백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지만 정작 프로페셔널 음악가로 살아가는 음악가들은 5% 미만이죠. 그러므로 재능이 필수지만 여기에 자신의 희생과 끝없는 노력이 동반돼야만 음악가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독일, 프랑스 등 여러 국가에서 다양한 음악교육을 경험하면서 느낀점은 무엇인가요.
“프랑스와 독일 음대의 장점은 국비로 운영하기 때문에 음악공부에 돈이 들지 않으면서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경우 ‘엘리트 양성’에 초점을 두는 편입니다.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은 엄격한 졸업시험을 치르는 것으로 유명한데, 전교생의 모든 과목 성적을 게시판에 공개하는 전통은 학생들이 항상 긴장하고 열심히 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프랑스, 독일 두 곳 모두 대학·대학원으로 올라갈수록 최고가 아니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피라미드 구조로 되어 있죠.”

외국의 음악교육 환경이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요.
“클래식을 전공하는 한국 학생수는 인구 대비 세계 최고이나 재능 있는 음악가들을 지원하는 메세나 사업이나 기업 후원은 외국에 비해 턱없이 모자랍니다. 한 사람의 음악가가 탄생하려면 간장이나 김치가 숙성하듯 오랜 노력이 필수인데 이 기간에 누군가의 지원을 받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한국에서는 인재들의 ‘성과’만 알아주지 물을 주고 싹을 틔우게 해줄 환경을 만드는 데는 무관심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는 새 시즌이 시작하는 8월부터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첼로 수석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오는 11일에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코리안 챔버오케스트라 무대의 협연자로 나선다.


Plus Point

로테르담 필하모닉 수석 선발 과정

임희영씨는 서류 심사와 블라인드 오디션 2회, 최종 오디션을 거쳐 선발됐다.

오디션은 오케스트라마다 진행방식이 다른데, 로테르담 필하모닉의 경우 선발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두 차례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친다. 응시자들은 일체의 정보 공개 없이 번호로 호명된 뒤, 커튼 뒤에서 연주한다. 두 번째 블라인드 오디션은 첫 번째 오디션에서 합격한 사람들과 다른 오케스트라(네덜란드, 벨기에, 이탈리아, 독일 등)에서 현재 수석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임씨를 포함한 3명이 각각 최종 오디션에서 상임지휘자와 전 단원들 앞에서 연주를 한 뒤, 전원의 투표를 거쳐 최종 합격자 1명으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