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들이 전략을 고민하는 기획철마다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 그만큼 잘못된 전략기획 절차가 관행처럼 굳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고의 아이디어를 살리는 전략기획을 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베인앤드컴퍼니는 약 300명의 글로벌 기업 임원을 대상으로 각 회사의 전략기획 절차에 관한 평가를 의뢰했다. 야심찬 목표 설정, 시장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 경영진과 일선직원을 위한 구체적인 지침 등 ‘훌륭한 기획의 3대 요인’을 각 회사 절차가 충족하는지 물었다.
우리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조직 전반에 걸쳐 견고한 전략기획 프로세스를 운용하고 있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설문에 응한 임원들의 60%가 기껏해야 평범한 전략으로 이어지는 자사의 기획 프로세스에 대해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왜 그럴까? ‘뛰어난 전략’에 대한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경우도 일부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기획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현행 기획 프로세스가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는 최적의 상태라 생각하고 있거나 프로세스를 개선하기 위해 어렵고 지루한 절차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끔찍한 일을 피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뛰어난 전략을 만들어내는 기업들은 이 문제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자사의 전략기획을 세계 최고수준에 이르러야만 하는, 즉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로 취급하는 것이다. 제조업체가 비용을 줄이고 하이엔드 소매업체가 서비스 품질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듯이, 전략기획을 성공의 열쇠로 여긴다는 뜻이다. 이 기업들은 시장 내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우선순위를 정하고 환경의 변화에 맞춰 이를 조정함으로써 인력, 프로세스, 툴에 투자한다. 이렇게 수립된 프로세스를 통해 집중적인 전략 논의를 위한 시간을 마련하고, 의사결정의 절차를 가속화하고, 조직 전반에 걸쳐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전략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문화를 정착시킨다.
최고의 전략을 만드는 5대 원칙
모든 상황과 환경에 딱 들어맞는 만병통치약은 없다. 하지만 가장 체계적이며 효율적인 전략 기획 절차에는 다섯 가지 공통점이 있다.
원칙 1 | 전략기획과 예산책정을 분리하라

뛰어난 전략은 목표와 현실적 실행안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설정한 목표가 전체를 이끄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목표가 전략을 이끌어 가면 기업의 투자 역시 성장동력 지원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전략과 예산을 하나의 프로세스로 통합하면서 논점을 흐리고 우선순위를 거꾸로 정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전략이 예산에 묶이면 숫자 때문에 트집을 잡고 예산 목표를 수정하는 데 불필요한 시간을 낭비하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예산목표를 수정하는 데 불필요한 시간을 낭비하면서 매년 약간의 성장을 이루는 데 만족하는 기업이 많다.
베인앤드컴퍼니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략기획과 예산책정 절차를 분리하면 전략의 질이 최대 40% 좋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이 정해지기 전 기업 경영진이 고객의 수요와 경쟁의 역학관계, 사업환경 등에 대해 건설적인 토론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산책정이 전략을 뒤흔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경쟁력 있는 전략의 결과물로 따라오는 것이 예산이며 예산이 전략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한 글로벌 자원개발 회사는 매년 상반기마다 전략개발에 집중한다. 이 시기에 회사 현황을 점검하고 시장 변화에 대한 토론을 벌이며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는 것이다. 그 뒤 기업 임원진은 몇달 동안 전략 실용성을 점검하고 세부 예산과 운영계획을 개발한다. 주요 성과지표에 따라 목표를 설정한다. 예산책정의 우선순위가 여러 고려 사항 가운데 높은 순위에 있지만, 다양한 폭의 토론이 이뤄지는 데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원칙 2 | 일선직원과 고객 목소리를 더 들어라
전략기획은 보통 고위 경영진이 주도하는 영역이다. 기획자와 분석가가 안건을 제출하면 고위급 임원들이 여러 방안을 고심한다. 그 뒤 향후 12개월, 또는 그 이상 기간 모든 직원이 지침으로 삼을 산출물을 발표하는 식이다. 이런 접근법의 단점은 전략을 결정하는 사람과 서비스하려는 고객이 완전히 격리돼 있다는 점이다. 또 업무 최전선에서 전략을 시행하는 일선 직원도 의사 결정 과정에서 배제된다. 그 결과는 현실과 동떨어진 전략 설정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가장 효과적인 전략개발 절차는 고객 목소리를 증폭하는 역할을 한다. 또 매일 영업 일선에서 고객과 만나 약속을 전하는 직원들과 깊이 있는 관계를 구축하고 시장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이끌어낸다. 현장과 동떨어진 곳에서 완전한 형태로 구축된 전략을 전달받아 시행하는 대신, 고객의 목소리를 기업의 전략에 녹여넣고 일선 직원들이 전심전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행동지침으로 변환하는 절차인 것이다. 이런 절차를 통해 고위급 경영진과 소비자 사이의 간격을 줄이고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는 조직을 구축할 수 있다.
원칙 3 | 자원 배분은 ‘비민주적으로’하라
많은 기업들이 조직 전반에 자원을 배분할 때

‘작년에 쓴 것보다 많이’ 배분하는 전략을 채택한다. 기획자는 미래의 잠재력을 크게 고려하지 않은 채 ‘민주적인’ 방식으로 각 부서에 공평하게 자원을 배분한다.
그 때문에 각 부서는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로비를 벌이고 기획자는 로비를 더 많이 한 부서에 만족할 만큼의 자원을 배분하는 것을 공정한 보상으로 여긴다.
그러나 기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전략에는 무자비할 정도로 엄격한 우선순위의 적용이 필요하다. 전략기획 절차는 반드시 기업에 가장 중요한 성장 기회의 정의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 더 많은 자금과 시간, 재능 있는 인적 자원까지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기업의 우선순위에서 낮은 가치의 업무를 하면서 재능을 썩히고 있는 인재를 재배치해 ‘중요한 일에 중요한 인력’을 할당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전략은 모든 기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고심하는 것이 아니라, 낭비 중인 자원을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도록 재배치하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기회에 핵심 자원을 집중시켜 짜야 한다.
원칙 4 | 필요하면 1년 내내 수립하라
대부분의 기업이 신년계획을 세우는 시기에 경영전략을 함께 세운다. 그 바람에 자유로운 토론 기회가 많지 않고, 다른 현안과 함께 묶어 논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주요 안건을 논의할 시간이 제한적이고 때로는 아예 논의에서 빠지기도 한다. 그 때문에 많은 경영진은 여러 사안을 동시에 다루면서 목소리 큰 직원의 영향에 따라 즉흥적으로 결정을 내리곤 한다.
한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역동적인 이 시대에 성공적인 전략개발 절차를 유지하려면 전형적인 ‘연간 사업 계획’ 주기에 맞춰 전략을 개발하는 습관을 깨뜨려야 한다. 베인앤드컴퍼니 조사를 보면 달력에 정해진 기간에 의존하지 않고 경영상 필요에 맞춰 전략기획 절차를 짤 때 시의적절하고 중요한 결정을 효과적으로 내릴 가능성이 60% 증가했다. 그러므로 한 해의 특정 시점에만 전략을 고민하는 대신, 1년 내내 현안을 바탕으로 전략 방향을 고민하는 것이 현명하다.
고위 경영진은 이미 우선순위로 설정된 전략에 대해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번 세우고 나면 그만인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는 대신, 핵심 과제는 실시간으로 시행하고 모니터링하며 조정할 수 있는 유연한 주기를 정착시켜야 한다.
한 대형 소프트웨어 업체는 몇년 전에 시장변화 때문에 발생한 전략적 수요와 이를 추진하기 위한 자원 간의 갑작스러운 단절 사태를 겪었다. 이후 달력 기반의 기획 절차에 대한 한계를 느끼게 됐고 결국 연말에는 손실을 보기에 이르렀다. 그 해법은 몇년에 걸쳐 시행할 야심찬 계획을 세우되, 가장 중요한 현안은 지속적으로 토론하며 해결하는 기획을 시행하는 것이었다. 이 회사는 새로운 절차를 통해 전략, 운영 면에서 가장 중요한 현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하면서 새로운 대화 틀을 만들었다.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시장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도 갖추게 됐다.

원칙 5 | 중요한 의사결정에만 집중하라
성공한 기업 경영진은 어떻게 주기적으로 전략적으로 토론할 시간을 확보하는 걸까?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이다. 이들은 전략적 논의에 집중할 시간을 빼앗는 ‘뻔한 사안’을 대화 테이블에서 제외해 경영진이 신경 써야 할 안건을 단순화한다. 다시 말해 재무, 사업부서의 유능한 인재들이 예산과 운영에 관한 중요한 사안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나눠준다는 뜻이다. 기업 경영진은 그 대신 핵심정보를 가려내기 위해 백지상태에서 전략기획 절차를 전면적으로 검토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들이 집중해야 하는 것은 고객에게 경쟁사보다 나은 서비스와 제품을 제공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관료주의적인 기획 절차에서 허우적대느라 낭비할 겨를이 없다.
지금까지 설명한 다섯 원칙을 바탕으로 전략기획을 세울 수 있다면, 기획 절차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잡음을 제거할 수 있다. 또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는 리더십을 갖춘 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 핵심 현안에 대해 토론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우리 회사는 전략을 잘 짜고 있나?
문제는 기업의 전략 역량을 개조하는 일 자체에만 몇년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베인앤드컴퍼니가 수행한 여러 프로젝트와 고객사 상황을 돌아보면 많은 기업이 여전히 기초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업마다 현재 상황을 제대로 진단하고 시장의 역학 관계, 문화 이슈, 개별 회사 특성에 관한 미래의 청사진을 뚜렷하게 설정하는 것이다.
그 출발은 현재 상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다. 전략기획 절차를 고통스러우면서도 마지못해 수행하고 있는지, 혹은 일선 직원부터 최고 경영진에 이르는 모든 구성원이 밝은 미래를 꿈꾸며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는 소중한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는지 판별하는 것이 첫 번째다. 유례없이 불안정한 글로벌 기업 환경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기업 운명을 송두리째 뒤바꿀 수 있다. 시원치 않은 성과에 만족하는 기업이 될지, 아니면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하기 위해 전진하는 기업이 될지가 여기에서 판가름 날 것이라는 이야기다.
- 베인앤드컴퍼니 마크 주다, 더니건 오키피
- 감수=김도균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