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많은 언론 매체가 5월 27일(현지시각) 미 해군이 처음으로 대외 공개한 ‘레일건(railgun)’ 발사 실험 모습을 앞다퉈 보도했다. 무기에 관심 없는 이들에게는 생소하지만, 발사된 탄환의 속도가 음속의 6배에 이른다는 내용만으로도 많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보도된 뉴스를 종합하면 미래 전쟁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꿈의 병기’라고 요약할 수 있다. 보도를 보면 레일건을 이전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방식의 무기로 소개했지만 레일건도 일종의 총포다. 단지 화기라면 당연히 떠오르는 화약이 아닌 전기의 자기장으로 포탄을 발사하는 점이 다를 뿐이다. 사실 무기는 어떻게 사용하는가보다 어떤 위력을 발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레일건은 가히 충격적인 성능을 자랑한다. 약 200㎞ 떨어진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질 만큼 정확도가 높다.
하지만 이 정도의 사거리와 정확도는 이미 각종 유도무기가 실현하고 있는 상황이다. 레일건의 무시무시한 능력은 25파운드(약 11㎏)의 탄자(탄환)를 초속 2㎞의 고속으로 값싸게 날려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폭탄을 장착하지 않더라도 탄자만으로 거의 대부분의 목표물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만큼 빠른 속도인데, 사전에 사격 징후를 파악할 수 없어 지금까지 만들어진 방어 체계로는 요격이 불가능할 정도다.
이번에 미 해군이 공개한 일부 영상만으로도 레일건의 엄청난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마치 스타워즈 같은 SF영화에 나오는 광선총 모습인데, 엄밀히 말하면 이런 종류에 가장 근접한 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미래 무기 같아도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레일건으로 목표물을 공격하는 방법은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전부터 사용해 왔던 무기들과 기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너무 빨라서 요격 불가능
독가스 같은 화생방무기, 화염방사기 같은 화공무기 그리고 아직 현실화됐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소음이나 전자파 등을 이용해 상대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기타 무기 등을 제외하면, 인간이 지구상에 등장해 현재까지 만들고 사용한 대부분의 인마살상용 무기는 물리적으로 타격을 가하는 메커니즘을 사용한다. 한마디로 때리거나 찔러서 살상하는 방식이다.
레일건도 날려 보낸 탄자로 목표물을 공격하는 방식이므로 종래의 재래식 총포와 동일하다. 단지 화약이 아니라 전기의 힘을 쓴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인간은 보다 강력한 무기를 보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한시도 참은 적이 없다. 역설적으로 이런 욕심이 인류의 발전을 이끌어 온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석기, 청동기, 철기처럼 선사시대를 구분하는 대표적 유물이 바로 무기다. 사실 과거에 무기와 도구는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무기는 인류가 생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무기의 위력을 증가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화약의 등장 이후 폭발할 때 발생하는 가스압을 에너지원으로 삼게 되면서 탄환처럼 예전에는 살상 도구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작은 물체도 치명적 살상 수단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중에는 19세기에 본격적으로 실용화되기 시작한 전기와 같은 에너지를 이용하는 기술도 있었다. 거의 100년 전인 1918년에 프랑스의 발명가 포숑-빌레플르(Louis Octave Fauchon-Villeplee)는 전기의 자기장을 이용한 발사체의 가능성을 제기했고 1922년에는 미국에 특허를 내기까지 했다. 이것이 바로 레일건이다.
나란히 놓인 2개의 전도성 레일 사이에 탄자를 넣은 후, 강한 전압을 걸면 자기장이 형성되고 이 힘은 전자기력이 약한 탄자 쪽으로 강하게 흐르게 된다. 그렇게 발생한 에너지로 탄자를 가속시켜 빠른 속도로 발사하는 것이 레일건의 기본 원리다. 이처럼 100년 전에 구상된 내용은 미 해군이 최근 공개 실험을 끝낸 레일건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결론적으로 생각을 현실화하는 데 거의 한 세기가 걸린 셈이다.
이처럼 미래의 무기 같지만 레일건은 오래전에 개념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전통적인 무기다. 그런데 무기사에서 이런 사례는 생각보다 흔하다. 예를 들어 최신 전투기를 상징하는 첨단 기술인 스텔스에 관한 기본적인 원리는 제2차세계대전 중에 발견했을 정도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설령 무기가 아니더라도 과거의 기술을 사장시키거나 실패로 끝난 기술을 폐기시키는 데 신중해야 한다.

발전량 많은 전함만 탑재 가능
오래전에 구상된 레일건이 실제로 모습을 선보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 이유는 관련된 일부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에 여러 나라에서 개발에 나섰지만 한발 쏘면 포신과 탄자가 녹아내려 일찌감치 연구를 포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무지막지한 전기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이번 실험작은 발사에 25㎿ 용량의 전기가 필요한데 이는 약 2만가구가 사용하는 전기량과 맞먹는 엄청난 수준이다.
2018년에 진수될 예정인 최신 줌월트급 구축함 린든 B, 존슨함에 최초로 실전 탑재하기로 예정 한 이유도 기존 알레이버크급 구축함보다 6배의 발전량이 가능한 대출력 신형 엔진을 장착했기 때문이다. 사실 미 육군이 미 해군보다 한 달 앞선 지난 4월 22일에 블리처(blitzer)로 명명된 레일건 시연 행사를 벌였지만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한 이유는 지상에서 효과적으로 전기를 공급받을 방법이 없어 실전 배치가 난망하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레일건이 11세기의 화약이나 20세기의 핵폭탄처럼 역사를 새롭게 바꿀 수 있는 무기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럴듯했지만 결국 실용적이지 못해 퇴출된 수많은 무기처럼 단지 연구만 하다가 사장될 것인지, 아니면 언론 보도처럼 미래의 전쟁 방법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필살기가 될 것인지 현재로서는 확실히 밝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레일건의 미래가 더욱 궁금해진다.
▒ 남도현
럭키금성상사, 한국자동차보험 근무, 무역 대행업체인 DHT에이전스 대표, 군사칼럼니스트로 활동, 주요 저서 <무기의 탄생> <발칙한 세계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