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관객들이 급증하고 있다. 다양성영화관인 씨네큐브는 영화관 내 음식물 금지, 사전광고 없는 영화상영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오로지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진 : 씨네큐브>
다양성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관객들이 급증하고 있다. 다양성영화관인 씨네큐브는 영화관 내 음식물 금지, 사전광고 없는 영화상영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오로지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진 : 씨네큐브>

#. 전라도 광주에 사는 A(51)씨는 다양성영화(예술·독립영화) 마니아다. 다양성영화 상영관이 많지 않은 지방에선 서울에서 이미 상영된 영화가 비교적 늦게 개봉되는 편인데, A씨는 좀 더 빨리 영화를 보고 싶어 종종 KTX를 타고 서울을 찾는다. 서울 용산역에 내린 A씨는 곧장 다양성영화관을 찾아 2~3편의 영화를 내리 관람한다. 10여년 전부터 이곳을 찾은 A씨는 매표창구 직원에게도 익숙한 얼굴이다.

#. 지난해 경기도 분당구에서 서울 종로구로 이사한 B(60)씨가 이사 지역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따진 기준은 ‘다양성영화관 접근성’이다. 여러 후보군 가운데 종로구를 선택한 이유는 다양성영화 전용극장인 ‘씨네큐브’와 집이 가까워서다.

다양성영화의 인기가 뜨겁다. 비교적 탄탄한 마니아층에 더해 신규로 유입되는 관객들도 많은 모양새다. 30~40대에 집중돼 있었던 다양성영화 관객층은 최근 20대까지 확대됐다. 영화인들은 2015년이 다양성영화가 좀 더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된 해라고 입을 모았다.

통계를 보면 결과는 뚜렷하다. 전체 영화 관객수가 2011년 1억5900만명에서 지난해 2억1500만명으로 약 35% 증가한 것에 비해 다양성영화 관객수는 2011년 476만명에서 830만명으로 74% 늘었다.

다양성영화의 개봉 편수는 2011년 197편에서 지난해 349편으로 77% 증가했다. 다양성영화 관객수는 2014년 ‘최다(1428만명)’를 기록했으며, 이는 2013년 관객수의 1.8배다.


다양성영화 키우는 ‘아트버스터’

다양성영화는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발표한 ‘시네마워크 사업계획안’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다. 독립영화·예술영화·다큐멘터리영화 등 작품성과 예술성이 뛰어난 소규모 저예산 영화를 총칭하는 말로 쓰인다. 개봉한 주(일요일까지)에 개봉관 숫자가 200개를 넘지 않고 상영 횟수도 840회 이상을 넘지 않는 영화에 한해 제작사 및 수입사가 영진위에 다양성영화로 신청할 수 있다.

다양성영화로 선정되려면 △기존 상업영화와 달리 제작비, 배급이나 상영 규모에서 소규모여야 하며 △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단편영화·실험영화 등 시장점유율 1% 이내 범주의 작품이어야 하고 △서울지역 시장점유율 1% 이내인 국가의 작품이자 △영진위의 제작 지원과 배급 지원을 받는 작품, 당해 연도 1% 미만의 스크린에서 개봉된 영화라는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최근 2~3년 사이 다양성영화 산업이 외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아트버스터 작품들의 역할이 컸다.

‘아트버스터’란 ‘예술영화’와 ‘블록버스터’의 합성어로 크게 흥행한 다양성영화를 의미한다. 소수의 영화팬들만 보던 다양성영화(예술영화)가 대중의 주목을 받아 흥행에 성공하면서 아트버스터 개념이 등장했다.

2014년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400만명)’ ‘비긴 어게인(342만명)’ 등 아트버스터의 등장으로 다양성영화의 전체 관객수는 급팽창했다. 지난해에는 영화 ‘위플래쉬’가 다양성영화계의 성공신화로 떠올랐다. 미로비전(수입사)이 6000만원에 수입한 영화 ‘위플래쉬’는 159만 관객을 동원하고, 매출 126억원을 올렸다. 경영난을 겪고 있었던 미로비전은 ‘위플래쉬’를 통해 그동안 밀린 빚을 다 청산하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관객들의 다양성영화 관람 수준이 향상되고 영화의 예술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다양한 영화들이 아트버스터로 발돋움하고 있다. 아트버스터는 다양한 소재로 다양성영화 시장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영화관, 5년간 8→23개로 급증

아트버스터의 흥행에는 CJ CGV와 같은 대형 수입배급사의 역할이 컸다. CJ CGV의 다양성영화 전문관인 CGV아트하우스는 2011년 8개관 960개 좌석에서 지난해 23개관 2629개 좌석으로 확장했다.

CGV아트하우스는 지난해 1월 다양성영화 시장을 키우기 위한 일환으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영화 시장에 진출하기도 했다. 베트남의 경우 하노이와 호치민에 위치한 CGV에 총 3개관을, 인도네시아는 자카르타 CGV 1개 상영관을 아트하우스로 오픈하고 상영 기회가 부족한 현지 다양성영화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최경미 씨네큐브 영화사업팀 차장은 “과거 다양성영화는 소규모 영화관이나 다양성영화 전용 극장에서만 상영했지만 2013년부터 CJ, 롯데, 메가박스 등 대형 멀티플렉스들이 다양성영화관을 확장해 전체적인 규모가 대폭 커졌다”고 설명했다.

영화계 내부에서는 CGV아트하우스가 영화 배급에 뛰어든 것을 두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영화 시장의 수직계열화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투자·제작·배급 등 영화 제작 전반에서 대기업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문화적 가치보다 경제 논리가 영화 시장을 더욱 잠식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최광희 영화 평론가는 “미국에선 제작과 배급·상영을 모두 망라하는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를 독과점이라 정의하고 1940년대에 금지시켰다”며 “대기업들의 다양성영화 수직계열화는 오히려 다양성영화 산업을 죽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기 덕에 수입가 2013년 이후 3~5배 상승

다양성영화 시장은 상업영화 시장보다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아 자본이 쉽게 유입된다. 상업영화에 비해 다양성영화의 수입단가가 낮다 보니 소규모 영화관들도 경쟁에 뛰어든 것이다. 특히 지난해 있었던 ‘위플래쉬’의 성공신화는 이런 양상에 불을 붙였다.

이후 칸국제영화제 마켓에는 ‘대박’을 꿈꾸는 한국 영화수입업자들이 몰려들어 다양성영화들을 웃돈을 주고 싹쓸이해가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과거 상업영화 시장에서는 영화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이 영화 흥행으로 40억~50억원을 벌어들이기도 했는데, 영화 하나로 인생역전하는 경우가 다양성영화 시장으로 옮겨왔다는 분석이다. 이런 자본 유입은 다양성영화의 수입단가를 3~5배까지 끌어올렸다. 예컨대 과거에는 3000만~4000만원에 구입할 수 있었던 영화가 1억8000만~2억원까지 상승했다. 추가로 드는 홍보·마케팅 비용까지 합하면 3억~4억원의 비용이 든다는 얘기다.

과도한 수입 경쟁은 다양성영화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도한 내부 경쟁이 수입영화의 평균단가 상승을 불러와 결국엔 업계 전체적인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했다.

다양성영화에 대한 대중의 취향이 보다 다양해지고 분명해졌다는 것도 특징이다. 영화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과거에는 칸국제영화제 등에서 수상한 영화의 경우 대부분 흥행이 보장됐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일례로 제6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프랑스 영화 ‘디판(Dheepan)’은 6000명도 안 되는 관객들을 모으며,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최경미 차장은 “해외 유수 영화제의 수상 이력이 더이상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하고, 대중이 선호하는 영화 스타일이 보다 다양해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수입사들은 다양성영화관만을 위한 영화보다도 다양성영화관과 상업영화관에 함께 상영할 수 있는 종류의 영화들을 수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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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영화(多樣性 映畫)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용어로 작품성, 예술성이 뛰어난 소규모 저예산 영화(독립영화, 예술영화, 다큐멘터리영화 등을 총칭)를 뜻한다. 대규모 제작비를 들여 만드는 상업영화와 달리 제작비가 소규모다. 배급이나 상영 규모도 소규모로 진행되며, 장르에 제한이 없어 다양한 소재나 문제를 자유롭게 다루거나 실험적 시도로 영화가 제작되기도 한다. 흥행에 성공한 대표적 다양성 영화에는 2013년 개봉해 관객 14만명을 돌파한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 2’가 있다.
아트버스터(artbuster)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예술영화. ‘예술영화(art film)’와 ‘블록버스터(blockbuster)’의 합성어로 예술성을 갖춘 블록버스터를 의미한다. 소수의 영화팬들만 보던 다양성영화(예술·독립영화)가 대중의 주목을 받아 흥행에 성공하면서 아트버스터 개념이 등장했다. 관객들의 수준이 향상되고 영화의 예술성이 널리 알려지며 다양한 예술영화들이 아트버스터로 발돋움하고 있다. 최근 한국 영화계에서 흥행한 아트버스터로는 ‘비긴 어게인’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 ‘위플래쉬’ 등이 있다.

이색적인 다양성영화관

주택가 속에 가정집인 체하는 영화관들이 있다. 딱 봐도 가정집 같은 이곳에 걸리는 영화들은 감독도, 배우도 도통 모를 인물들이다. 좌석이 달랑 5~6개인 영화관에, 더러는 시간표도 없다. 커다란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선 볼 수 없는 영화들이 오도카니 관객을 기다리는 곳, 이색적인 다양성영화 상영관 ‘극장판’과 ‘망월상영관’이다.

1. 단편영화 아지트 ‘극장판’

‘단편영화’의 아지트 격인 극장판은 이태원 우사단로 꼭대기에 있다. 파란 대문을 열고 작은 마당을 지나면 비닐 발이 쳐져 있는 문이 있다. 들어가자마자 정면에 영화관이, 오른쪽에는 ‘매점뽕’이 있다. 필름 모양의 브로치, 장신구 등 영화와 관련된 물품을 팔고 티켓값을 받는 곳이다. 2030세대인 두 대표의 인테리어 감각이 그대로 살아 있다.

이곳에서는 관객이 오면 영화를 튼다. 한 명이든 최대 관람 인원인 여섯 명이 다 모이든 상관없다. 한 달에 3~4편의 단편영화 프로그램이 있는데 관객이 원하는 영화를 고르면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틀어준다.

2014년 7월 문을 연 극장판은 인천 부천에서 운영한 청년 창업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은 낙후된 상권에 청년들이 가게를 꾸려 살려보자는 취지로 진행됐다. 2014년 12월까지 공간은 물론 초기 자금까지 지원받았던 극장판은 계약이 만료된 직후 이태원 우사단로로 이사왔다.

단편영화에 대한 애정’이 두 대표가 극장판을 계속해서 운영하는 이유다.

2. ‘3평 영화관’ 망월상영관

지난해 1월 문을 연 망월상영관은 ‘진짜 가정집’이다. 한성우(32) 대표 가족이 2층에 살고 1층에서 영화관을 운영한다. 누나가 여기에서 한의원을 하다 자리를 옮기자 마침 빈 공간이 생겼고, 한 대표가 그 자리를 냉큼 꿰찼다. 한 대표는 광주의 캐치프레이즈가 ‘문화 수도’인데도 문화를 즐길 곳이 없다는 점에 착안했다. 부모님은 빈 공간을, 친구는 빔 프로젝터와 전축을 빌려줬다. 망월상영관은 2013년 개봉한 영화 ‘머드’로 관객들 앞에 데뷔했다. 시설 이용비는 물론 영화 관람료까지 모두 무료다. 망월상영관의 특징은 상영관이 곧 미니 멀티플렉스라는 점이다. 영화관에서 커피도 내려 마실 수 있을 뿐 아니라 동네 도서관, 비디오방 역할도 한다.

지난해에는 전남 지역의 독립영화감독들이 만든 작품을 모아 상영하는 기획전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