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략하던 때 카불의 한 고등학생은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피신합니다. 의학과 문학 공부에 빠진 이 학생은 훗날 의사가 되고 소설가가 됩니다. 그의 이름은 할레드 호세이니(Khaled Hosseini)입니다.
의사로서 호세이니는 NGO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인도주의적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소설가로서 그는 지금까지 세 권의 걸작을 냈습니다. <그리고 산이 울렸다(2013년)>, <천 개의 찬란한 태양(2007년)>, <연을 쫓는 아이(2003년)>입니다.
데뷔작 <연을 쫓는 아이>는 ‘인간이 저지르지 말아야 할 7대 죄악(The Seven Deadly Sins)’인 분노(wrath), 탐욕(greed), 나태(sloth), 교만(pride), 음욕(lust), 시기(envy), 탐식(gluttony) 중 만악(萬惡)의 근원이라 일컬어지는 시기가 소재입니다. 외교관의 어린 아들 아미르는 장래 작가가 되는 게 꿈입니다. 그의 단짝인 하인의 아들 핫산은 문맹입니다. 하루는 핫산이 아미르가 지은 이야기를 다 듣고는 플롯이 좀 엉성하다고 평해버리는데요, 그 바람에 핫산은 주인님의 시계를 도둑질한 ‘나쁜 놈’으로 몰려 쫓겨납니다. 훗날 성인이 된 아미르는 미국에서 소설가가 되고, 핫산이 하인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곤 충격을 받습니다.
어릴 적 아미르가 한 거짓말은, 진실을 알아야 하는 아버지의 권리를 도둑질한 행위입니다. 핫산이 아버지의 시계를 훔쳐갔다고 거짓말한 것이 곧 도둑질이라는 뜻이지요. 호세이니는 책에 이런 통찰의 글을 심어놓았습니다. ‘There is only one sin, only one. And that is theft. Every other sin is a variation of theft(세상엔 오직 하나의 죄뿐이다. 그것은 도둑질이며 나머지 죄는 다 도둑질의 변형이다).’ 이 대목에서 저는 ‘훔칩시다’라고 제안합니다.

프로메테우스가 훔친 불은 창의력 상징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종종 이렇게 말했습니다. “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뛰어난 예술가는 모방합니다. 위대한 예술가는 훔칩니다).” 이 명문장의 원작자는 잡스가 아닙니다. 피카소입니다. 언어의 연금술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잡스가 이 명문장의 원작자를 밝히고 인용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피카소는 왜 자신은 훔친다고 한 걸까요?
피카소의 ‘훔치기’는 프로메테우스의 행위에 닿아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신화에서 창조자를 상징하는 제우스 몰래 불을 훔쳐 그걸 인간에게 선물한 티탄족 신이지요. 그 덕에 인간은 최초의 진정한 테크놀로지 1호인 불을 발명했고요. ‘프로메테우스가 훔친 불(Promethean Fire)’은 ‘창의력(creativity)’을 상징합니다. 피카소는 자기의 뛰어난 창의력을 마음껏 꺼내 창작하는 행위를 ‘훔친다’고 은유한 것이지요. 우리도 창의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피카소처럼 열심히 훔쳐야 하겠습니다.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프로메테우스’입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사랑의 헛수고(Love’s Labor’s Lost)>에는 이런 글이 나옵니다. ‘여자의 눈엔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항상 타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여자의 눈을 찬미하는 대목이지요. <사랑의 헛수고>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여자의 눈은 교과서이며, 학문이자, 온 세상 사람들에게 인생을 표시하며, 함축하며, 양육하는 것입니다. 이것 이외에 이 세상에 훌륭한 것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창의력’ 말고도 ‘신성한 영감(divine inspiration)’을 은유합니다.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인 ‘프로메테우스’를 보면서도 우리는 그 ‘신성한 영감’을 목격하게 됩니다.
억만장자 사업가가 있습니다. 그가 만든 탐사선 이름이 흥미롭게도 신화 속 인류의 기원인 ‘프로메테우스’입니다. 이 억만장자가 탐사선을 만든 목적은 외계생명체와의 조우입니다. 그의 사업 목적이 두려운 이유는 스포일러여서 가려두기로 합니다.
때는 2093년. 과학 탐사선 프로메테우스는 LV-223 행성에 성공적으로 착륙합니다. 아차차, 시간을 조금만 과거로 돌려보겠습니다. 한 여성 인류학자가 지구 곳곳에서 발견된 고대 유적들 속의 수많은 성도(星圖·star map)를 해석한 결과 디자인이 동일한 이들 그림은 외계생명체가 인간을 초대하는 메시지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 그 연구 결과에 주목한 억만장자가 탐사대를 LV-223 행성에 보낸 것입니다.

인류 기원을 찾아 떠나는 탐사대
착륙 직전 탐사대 일원인 찰리는 활주로 모양의 진입로가 직선인 것을 내려다보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자연은 직선을 만들지 않아(Nature makes no straight lines).” 이미 누군가가 그곳에 존재했거나 존재할 거라는 가능성을 열어둔 판단이지요. 선발대를 이끌고 피라미드 안에 진입한 후 피라미드가 거대한 군사용 요새로 위장한 우주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요, 그때부터 대원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빠져듭니다.
탐사대 일원인 여성 인류학자 쇼는 떠올립니다. 탐사가 시작되기 직전 탐사대원들의 조력자인 인조인간 데이비드가 했던 질문을 떠올린 것입니다. “당신은 답을 찾으러 어디까지 도전해보고 싶은 거죠(How far would you go to get your answers)?” 뼛속까지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쇼는 결정적 정보를 알아냅니다. 과학자들이 ‘엔지니어’라고 부르는 인류의 기원이 피라미드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이 엔지니어가 피라미드 안에 살아남은 유일한 외계생명체라는 사실도 알아냅니다. 쇼는 DNA를 분석합니다. 결과는? 엔지니어의 DNA와 인간의 그것이 일치합니다. 만신창이처럼 곳곳에 찢어발겨진 외계생명체들은 과연 어디서 왔을까요? 그들은 대체 누구에게 살육된 걸까요? 그걸 알아내려는 순간 피라미드가 트랜스포메이션, 즉 합체변신을 합니다. 거대한 우주선으로…!
쇼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외계생명체는 왜 인간을 만든 걸까? 그런데 왜 이제는 인간을 파괴하려는 걸까?” 기필코 답을 찾아내야만 하는 쇼의 눈동자가 이글거립니다. 셰익스피어가 찬미한 여자의 눈엔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가득해 보입니다. 쇼는 그 불을 훔쳐 휘두르기로 하는데요, 엔지니어가 조종하는 거대한 우주선을 쇼가 왜 추적하려 하는지 그리고 ‘엔지니어 행성’의 위치를 쇼가 왜 알아내려 하는지는 일단 여러분의 상상에 맡겨봅니다. 대단원에 이르기 전까지 베일에 가려져 있던 억만장자의 정체와 속셈과 영화의 결말은 특급 스포일러이기에 가려둡니다.
▒ 이미도
영화‘반지의 제왕’시리즈,‘쿵푸팬더’시리즈 등 번역, 저서 <독보적 영어 책> <똑똑한 식스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