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문 회장은 “로만손 시계는 우리가 주얼리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원천적인 역할을 충분히 했고 앞으로도 실적을 착실히 키워나가겠다”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이신영>
김기문 회장은 “로만손 시계는 우리가 주얼리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원천적인 역할을 충분히 했고 앞으로도 실적을 착실히 키워나가겠다”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이신영>

김기문 회장(창업 사장)이 손목시계 회사 로만손을 설립한 것은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이었다. 당시 국내 시계시장은 삼성시계·오리엔트·한독·아남 등 소위 ‘빅 4’가 점유율 90%를 차지하고 있었고 군소 100여개 회사가 나머지 10%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후발주자 중의 후발주자인 김 회장은 ‘국내 시장에서는 승산이 없다’고 보고 처음부터 해외시장 공략에 나섰다. 당시로선 독창적인 기술(커팅글라스·시계 유리 전면을 정밀하게 깎는 기술)로 제품을 만들어 중동에 수출했는데 이게 대박을 쳤다. 처음에 두바이에 수출했는데 미국 수입상에게서도 연락이 와 15달러에 수출한 시계가 25달러까지 올랐다.

그러나 28년이 지난 지금 국내 시계산업은 어떤가? 88년 당시의 ‘빅 4’는 흔적도 없고 로만손이 1위에 오른 지 오래다. 그러나 로만손마저도 몇년 동안 적자를 냈고 2003년 신규사업으로 론칭한 제이에스티나 주얼리와 2011년 출범한 핸드백 매출이 전체 매출의 80%를 훨씬 넘어서자 지난 6월 초 회사명을 아예 로만손에서 제이에스티나로 바꿨다. 제이에스티나 주얼리와 핸드백 매출은 2011년 731억원에서 작년 1331억원으로 거의 두배 뛰었다. 외국 관광객은 물론 국내 20~30대 소비자 사이에서도 제이에스티나 인지도가 로만손을 크게 앞선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서울 가락동 제이에스티나 본사에서 김기문 회장을 만나 제이에스티나 그리고 로만손의 현재와 미래를 물어봤다.


제이에스티나 주얼리(사진)와 핸드백 매출은 2011년 731억원에서지난해 1331억원으로 두배가량 성장했다.
제이에스티나 주얼리(사진)와 핸드백 매출은 2011년 731억원에서
지난해 1331억원으로 두배가량 성장했다.

2003년 제이에스티나를 론칭했을 때만 해도 로만손 손목시계는 국내 정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주얼리 시장에 새로 뛰어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시계산업에 그동안 두세번의 위기가 왔습니다. 1970~80년대 일본의 디지털시계가 나오면서 스위스 시계산업이 전멸한다고 했습니다. 두번째는 휴대전화 등장으로 위기를 맞았죠. 휴대전화를 늘 갖고 다니니까 굳이 시계를 찰 필요가 없어진 거죠. 세번째가 최근의 스마트워치폰입니다. 하지만 이런 거센 물결에도 시계회사들이 다 망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름 대응을 했죠. 오히려 이 세번의 외부적 충격은 시계산업이 또 다른 발전을 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디지털시계는 스위스에서 스와치로 대응했고 휴대전화는 고급화 시계로 변신하면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스마트워치 등장 이후 시계가 앞으로 또 어떻게 변신하느냐가 관건이죠.”

기존 시계시장 규모가 정체상태에 있다고 판단해 신사업을 했다는 거죠.
“네. 세상이 점점 디지털화됨에 따라 전통사업인 시계 매출에 한계가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잘 나갈 때는 연간 100% 이상 매출이 신장하지만 매출이 답보상태인 적도 있었고요. 그래서 오래 전부터 초정밀사업인 시계에 강점을 가진 우리 회사가 잘할 수 있는 신규사업이 무얼까 고민했습니다. 해서 0.01㎜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시계 제조기술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 주얼리 사업이라고 판단, 제이에스티나를 출범하게 됐습니다.”

제이에스티나 주얼리가 고성장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주얼리라는 아이템은 시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동안 시계를 만들어 판매해온 노하우와 인프라가 주얼리를 정말 정교하게 만들 수 있는 조건인 셈이죠. 제이에스티나는 ‘브리지 주얼리’인데, 국내에서는 우리가 처음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주얼리 시장은 고가의 보석시장과 캐주얼한 액세서리 2개 상품군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외국에서는 액세서라이즈, 스와로브스키, 폴리폴리 같은 디자인 중심의 브릿지 주얼리가 있었지만 국내는 전무한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는 전문가 없이 어려운 여건에서 사업을 시작했죠. 하지만 우리는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시계 디자이너에게 주얼리 설계를 맡긴 거죠. 시계 디자이너는 0.01㎜ 오차까지 설계도면에서 표현해줘야 시계가 방수가 됩니다. 시계가 방수가 안 되면 생명을 잃은 것이죠. 주얼리를 시작했을 때 시계 디자이너들이 테크니컬 드로잉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차별화 요인이었습니다. 다른 회사들은 주얼리 신제품을 만들 때 자세한 설계도면도 없이 스케치 수준에서, 가령 ‘왼쪽으로 비스듬하게 깎아라’ 수준에서 주물 생산을 의뢰했다면 우리는 ‘왼쪽으로 45도 깎아라’는 식으로 정밀하게 주문한 것이죠.
주문자가 어떻게 요구하느냐에 따라 좋은 제품이 나올 수도 있고 주먹구구식 제품이 나올 수도 있죠. 결국 초정밀산업인 시계의 경험이 많았던 우리는 주얼리에서도 상당히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 시장 공략에 제이에스티나의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제이에스티나는 중국을 포함한 동남아 시장에 강점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위상이 대단합니다. 아시아 국가 중 가장 주목받고 있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먼저 한국 드라마를 앞세운 한류 열풍으로 한국 배우·가수가 아시아인들에게서 아시아 다른 어느 나라 스타보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또 아시아 국가를 가보면 한국을 한 번이라도 방문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그만큼 한국 이미지가 좋다는 얘기죠. 지금 아시아 국가들 중에는 빠른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는 신흥개발국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나라들을 주요 마케팅 대상국으로 삼아 적극 공략해야 합니다. 흔히 가장 큰 시장으로 중국을 얘기하는데 중국이 아니더라도 베트남·인도네시아 등도 인구가 1억명이 넘습니다. 태국·미얀마 등도 제이에스티나 입장에서 보면 잠재력이 큰 시장이고요. 때문에 아시아 시장은 당분간은 시장개척에 굉장한 시너지효과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김기문 회장(사진 가운데)이 2007년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재직 시 개성공단을 방문, 한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 제이에스티나>
김기문 회장(사진 가운데)이 2007년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재직 시 개성공단을 방문, 한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 제이에스티나>

로만손 시계부터 지금의 제이에스티나 주얼리, 핸드백 제품까지 자체 생산설비 없이 외주생산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생산라인까지 보유하게 되면 코스트(생산단가)가 올라가 경쟁력 있는 가격의 제품을 만들 수 없습니다. 나이키만 보더라도 ‘굴뚝 없는 공장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할 정도로 전 세계에서 생산을 아웃소싱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마케팅, 기술개발, 영업 등의 핵심역량을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다면 공장(생산)은 철저한 품질관리를 통해 아웃소싱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계의 경우 조립을 우리가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계 부품 중 무브먼트는 스위스에서 가져오고 티타늄은 일본, 사파이어는 독일에서 가져와 최종 조립을 우리가 하는 경우도 있지만 외주생산 원칙은 고수하고 있습니다. 시계나 주얼리 사업의 특성을 감안할 때 본사는 생산보다는 디자인, 기술개발, 마케팅에 역량을 기울이는 게 더 효율이 있다고 봅니다.”

중소기업중앙회장을 8년 하셨는데, 국내시장 확대나 해외진출을 준비하는 중소기업들에 조언한다면?
“우선 유통시장 전체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지금 세계는 상품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엄청난 과잉공급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죠. 이런 레드오션에서 살아남으려면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독창성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성비라고 생각합니다. 가격 대비 얼마나 쓸모 있는 제품을 만드느냐가 관건이죠. 명품만 해도 이제 달라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전에는 이들 해외명품은 계속 가격이 올라야 명품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가격을 내리기도 합니다. 소비자들도 가격 대비 더 편리한 제품을 선호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고요. 이런 시대 트렌드 변화를 잘 읽어야 합니다.
두번째 명심할 것은 몇년 전부터 세일즈에 국경이 없어졌다는 점입니다. 해외직구, 역직구가 일상화되고 있지 않습니까. 유통 패러다임만 해도 얼마나 변화가 빠른지 몰라요. 온라인 매출이 우리나라는 40%에 육박하고 있고 중국은 이미 50%를 넘어섰습니다. 이런 온라인 비중의 급상승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봅니다. 이런 시대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일반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 일반 유통시스템으로 판매한다면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기 어려워 결국 회사는 망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결국 시대 트렌드에 맞는 제품을 만들고 시대 트렌드에 맞는 유통구조도 갖춰야 한다는 얘기죠. 가성비를 갖춘 제품이어야 함은 필수조건이고요. 이런 제반조건들을 갖춘 뒤에야 해외진출을 해야지 무작정 보따리 들고 나간다고 해외진출이 아닙니다.”

손목시계 로만손 비중은 최근 갈수록 줄어들어 제이에스티나 전체 매출 중 15%선에 머물고 있습니다. 앞으로 로만손의 미래는 어떨까요?
“제가 중기회장 퇴임하고 회사로 돌아오니 이미 회사의 주력이 손목시계가 아니라 주얼리, 핸드백이더군요. 주얼리는 이미 상당히 돈을 벌고 있고 핸드백은 론칭 5년 만에 매출 500억원을 달성했습니다. 그런데 시계는 재작년에 40억원 적자, 작년엔 20억원 적자가 났습니다. 물론 다 사정이 있더라고요. 우리 시계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중동, 러시아 등의 시장여건이 크게 악화된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국제유가, 가스가격 인하, 또 주변국가의 불안한 정치상황 등으로 로만손뿐 아니라 상당한 시계회사들이 이 지역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스위스 시계회사들 중에는 중동, 러시아 시장 매출이 40~50%까지 하락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건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요. 올 한해는 이런 시대여건 변화에 맞게끔 유통구조도 바꾸고 해외거점도 신흥시장 위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시계 부문에서 단기적자 탈출, 혹은 소폭이나마 흑자를 볼 것으로 봅니다. 긍정적인 신호는 그동안은 시계 재고가 2~3년치가 있었는데, 이를 대폭 줄여나가 현재는 4~5개월치까지 줄였다는 겁니다. 신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모멘텀을 이제 찾은 셈이죠. 재고가 많으면 신제품 개발이 어렵잖습니까? 올여름을 겨냥한 한 신제품은 한달 만에 다 팔려 추가 생산에 들어갈 정도로 여건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시계사업을 접는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시계사업은 오랫동안 효자노릇을 했고 또 주얼리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원천적인 역할을 충분히 했습니다. 일부 주주들은 ‘시계사업 그만해라, 돈 버는 주얼리만 해라’고 하는데 시계가 돈을 못버는 게 아니라 그동안 이런저런 어려움으로 방치돼 온 것이죠. 이제 시계를 잘 아는 제가 다시 돌아왔으니 앞으로 우리 회사 내에서 시계는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할 것입니다. 2~3년 후 로만손 시계가 어떻게 될지는 두고 보십시오.”

개성공단 초기부터 로만손이 입주해 개성공단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가동중단 상태에 있는 개성공단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개성공단 중단은 남북한 모두에게 적잖은 피해를 줬습니다. 우선 남한의 입주기업 입장에선 청천벽력 같은 조치였습니다. 우리 정부는 차후피해보상을 해주겠다는 입장이지만 기업의 ‘기회손실’은 사실 정부로서도 보상할 수 없는 입장인 걸로 압니다. 또 북한 입장에서도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북한 근로자 5만4000여명이 근무하고 있었고 40만~50만명의 개성 사람들이 공단 가동 덕분에 상대적으로 북한 내에서 어려움 없이 살았는데 갑자기 공단이 문을 닫아버려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겁니다. 남북한이 합의해 재가동을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게 언제 이루어질지 누구도 모르는 거죠. 다행스러운 것은 북한이 최근 화해 제스처를 보이고 있잖아요.”

북한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여전합니다.
“물론 진실성이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요. 개인적인 생각으론 꼭 통일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개성공단 같은 공단이 북한에 10여곳 들어선다면 북한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이 부분은 우리 정부는 물론 여야도 공감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 기업이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으로 생산설비를 확대하고 있지만 사실 개성공단은 비교우위를 갖고 있습니다. 우선 서로 말이 통하고 ‘메이드 인 코리아’도 붙일 수 있고 또 관세가 없잖아요. 이런 장점들을 볼 때 고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기업이 굳이 해외로 나가지 않더라도 제조업을 연장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거죠.”


▒ 김기문
1955년생. 1988년 로만손 창업, 중소기업중앙회 명예회장(2007~2015년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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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지주얼리(Bridge Jewelry) 진짜 보석을 사용하는 ‘파인 주얼리’와 조개껍질, 모조 보석류 등을 사용하는 ‘코스튬 주얼리’의 중간적인 성격을 갖는 것을 말한다. 재료로 실버를 주로 사용하며 합성석, 모조석 등도 많이 쓴다. 제이에스티나는 물론 스와로브스키, 액세서라이즈, 폴리폴리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Plus Point

김연아 마케팅 대박

제이에스티나의 주얼리 모델은 김연아 선수다. 인연은 2008년으로 거슬러 간다. 당시 김연아 선수는 세계 주니어대회를 휩쓴 뒤 성인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지만 피겨 스케이트라는 종목 자체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국내에서 후원기업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제이에스티나 김기석 사장(김기문 회장 동생)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스포츠종목이 피겨스케이트라고 판단, 김연아 선수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2008년 김연아 선수 후원을 시작하면서 매 시즌 김 선수가 출전할 때마다 특별히 디자인된 제이에스티나 주얼리를 선보였다.

때문에 동계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대회에서 김연아가 우승할 때마다 그녀와 함께한 제이에스티나 제품은 ‘승리의 상징’으로 주목받았다. 덕분에 제이에스티나는 국내에서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진행 중인 제이에스티나의 김연아 후원은 대표적인 스포츠마케팅 성공 사례로 꼽힌다. 제이에스티나의 스타마케팅은 최근 절찬리에 방영된 ‘태양의 후예’후원으로 또한번 대박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