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카니 영란은행 총재가 6월 30일 기자회견에서 브렉시트 대응책을 밝히고 있다. 그는 “브렉시트 영향으로 영국 경제성장률이 수개월간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번 여름, 기준금리 인하 등 경기부양 조치를 내놓겠다”고 했다. <사진 : 블룸버그>
마크 카니 영란은행 총재가 6월 30일 기자회견에서 브렉시트 대응책을 밝히고 있다. 그는 “브렉시트 영향으로 영국 경제성장률이 수개월간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번 여름, 기준금리 인하 등 경기부양 조치를 내놓겠다”고 했다. <사진 : 블룸버그>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Brexit)로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환율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4대 기축통화인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31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연말까지 파운드화 가치가 더 하락해 달러와 1 : 1로 교환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약세를 보이고 있는 유로화까지 더해 달러와 유로, 파운드라는 3개 기축통화의 가치가 1 : 1 : 1이 되는 패리티(parity·동등한 가치) 시대가 되는 것이다. 100년 전 ‘대영제국’ 시절 1파운드가 약 5달러의 가치를 지녔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드는 사건이다. 이 역사적 사건을 틈타 각국이 환율 약세를 용인하고 있어 환율 전쟁이 벌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파운드 = 1달러 시대 올 것”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영국의 국민투표가 치러진 6월 23일(현지시각) 영국 파운드화는 1.48달러에 거래됐다. 그러나 투표 결과가 나오자 다음 날부터 10% 넘게 폭락해 7월 초에는 1.3달러를 밑돌기도 했다.

파운드화에 대한 전망은 좋지 않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자문은 CNBC 인터뷰에서 “기본 시나리오는 아니고 위험 시나리오”라고 전제한 뒤 “정치인들이 영국과 EU 회원국 사이의 충분한 자유무역을 유지하는 포괄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1파운드=1달러 시대가 올 수 있다”고 했다.

조지 매그너스 전 UBS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파운드가 브렉시트 국민투표 전보다 20% 더 떨어질 수 있다”며 “경제가 예상보다 심각하게 위축되거나 정치적 혼란으로 신뢰가 크게 낮아지면 1파운드와 1달러 가치가 같아질 가능성이 꽤 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와 시티은행은 파운드 가치가 1.2달러, 도이체방크는 1.15달러까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브렉시트로 영국 경제의 핵심인 금융산업 타격이 현실화되면 파운드화도 악영향을 받는다. 프랑스는 브렉시트로 런던의 글로벌 금융회사가 도버 해협을 건너 대륙으로 이전하려 하자 승부수를 띄웠다. 프랑스 마누엘 발스 총리는 프랑스 금융산업 진흥 단체인 유로플레이스가 개최한 콘퍼런스에서 “파리가 유럽의 핵심 금융센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프랑스 정부는 글로벌 기업을 끌어오기 위해 세금감면 연장 등의 당근도 제시했다.

영국은 한때 세계를 호령했지만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으며 점차 경제적 지위가 약화돼 왔다. 1944년에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출범하면서 국제 무역에서 영국 파운드가 아닌 미국 달러 시대가 열렸다.

영국은 1949년 파운드를 30% 평가절하했고 1967년에도 14% 내려 파운드화는 2.4달러 수준으로 평가 절하됐다. 1976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았고 파운드화는 1.7달러 수준까지 추락했다. 달러가 초강세를 보였던 1985년에 파운드화는 한때 1.05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각국 중앙은행, 통화 가치 하락 방관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환율 하락을 방관하면서 파운드화 가치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또 브렉시트 이후 세계 금융시장에 혼란이 닥치자 각국 중앙은행도 자국 화폐가치 하락을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브렉시트발(發) ‘환율 전쟁’이 터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브렉시트 이후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했지만 마크 카니 영란은행 총재가 특별히 문제삼지 않았고 사실상 파운드 약세를 용인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카니 총재는 6월 30일 “올여름쯤 일부 통화정책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란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파운드화 약세는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6월 말 외환보유액은 전달보다 134억3000만달러 증가한 3조2050억달러로 집계됐다. 위안화는 브렉시트 이후 약세를 보여 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과 일본 채권 가격 상승으로 보유 자산 평가액이 증가한 것 외에도 중국 외환당국이 위안화 매수를 자제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굳이 위안화 약세를 막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밖에 유로화를 쓰지 않는 스위스와 덴마크도 브렉시트로 자국 화폐가치가 급등하지 않도록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스위스 중앙은행은 브렉시트 후 스위스 프랑화 가치가 급등하자 6월 24일 환율 시장에 개입했고 시장 안정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개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덴마크 중앙은행도 유로화 대비 덴마크 크로네화 가치 급등을 막기 위해 시장에 개입해 크로네화를 매도했다. 브렉시트로 저(低)환율 정책이 타격을 받은 일본은 7월 10일 참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두자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12일 조기에 디플레이션 상황에서 벗어나고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경제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자민당에선 10조엔(약 111조원) 넘는 대규모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이 추가적인 금융완화 정책을 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자 브렉시트 이후 1달러에 100엔선 밑으로 떨어지며 강세를 보이던 엔화는 다시 약세 흐름으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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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은행이 발행한 10파운드 지폐. 지폐를 갖고 있는 사람이 요청을 하면 동일한 가치의 금으로 지급하겠다는 문구(I promise to pay the bearer on demand the sum of … pounds)가 적혀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영란은행이 발행한 10파운드 지폐. 지폐를 갖고 있는 사람이 요청을 하면 동일한 가치의 금으로 지급하겠다는 문구(I promise to pay the bearer on demand the sum of … pounds)가 적혀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달러·파운드 달러는 보헤미아 지방의 요아힘스탈 지방에서 유래됐다. 이 지역에서 16세기 초 은광이 발견됐고 이곳에서 주조된 은화에 ‘요아힘스탈러(Joachimstaler)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은화를 흔히 ‘탈러(Thaler)’라고 부르다가 유럽 각 지방에서 사용하는 언어에 맞게 발음이 변형됐고 ‘달러’라는 단어도 탄생했다.
파운드라는 화폐 단위는 고대 로마에서 무게를 재는 단위인 ‘폰두스(Pondus)’가 기원이다.

금본위제 통화 가치를 금의 가치에 연계시키는 화폐 제도. 19세기에 영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금본위제를 도입한 국가들의 화폐 가치가 일정량의 금에 연계돼 있었으므로 화폐 간 가치도 고정돼 있었다. 1영국 파운드의 가치는 4.85미국 달러, 5.25캐나다 달러, 12.10 네덜란드 길더, 26.28 프랑스 프랑, 20.43 독일 마르크, 24.02 오스트리아-헝가리 크로네의 가치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