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생활가전과 프리미엄 TV의 선전으로 2년 만에 반기 영업이익 1조원 고지에 성큼 다가섰다. 분기 기준으로는 8분기 만에 최대 이익을 달성했다. 생활가전 제품만으로 반기 영업이익 1조원에 육박한 것은 업계에서 드문 일로 평가된다.
LG전자는 올 2분기 매출 14조29억원, 영업이익 584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0.5%, 영업이익은 139.5% 성장했다. 상반기 영업이익은 992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5493억원)와 비교하면 1년 새 거의 100% 성장한 셈이다. 전반적으로 수익성 중심의 내실경영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트윈워시를 비롯해 고가이면서도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제품을 잇달아 출시한 것도 수익에 도움이 됐다.
생활가전 영업이익률 10% 육박
H&A(생활가전) 사업부의 영업이익률은 9.7%, 2분기엔 9.2%를 기록했다. 세계 주요 가전기업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실제 미국 월풀의 영업이익률은 6.5%, 스웨덴 일렉트로룩스는 4.5%였다. 가전 부문에서 이처럼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가전의 경우 다른 전자제품보다 인건비 비중이 높아 영업이익률이 통상 5% 안팎에 머문다.
조성진 사장이 이끄는 가전사업은 2분기에 트윈워시 세탁기, 휘센 듀얼 에어컨, 얼음정수기 냉장고 등 프리미엄 가전들이 일제히 견조한 판매를 올리며 수익을 이끌었다. 여기다 TV사업도 최상위 프리미엄군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비중이 확대되면서 3000억원 이상의 이익을 올렸다. OLED TV 시장에선 LG전자를 위협할 경쟁사가 마땅히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 가전 시장은 중저가와 프리미엄 시장으로 양극화되고 있다. 중저가 시장에선 중국업체들이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파상공세를 펼치고 있어 국내 업체들의 시장공략이 만만치 않다. LG전자가 프리미엄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는 이유다.
전체 가전시장에서 프리미엄 비중은 아직 5% 정도로 크지 않다. 하지만 경기 영향을 덜 받고 수익성도 높아 일반 가전보다 3배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LG전자는 프리미엄 제품 판매를 본격화한 올 1분기부터 생활가전 영업이익이 급증했다.
LG전자의 TV와 생활가전의 선전은 프리미엄 전략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LG전자 ‘가전의 힘’은 최근 출시한 초(超)프리미엄 브랜드 ‘LG 시그니처’의 개발 과정 등에 집결돼 있다.
성공비결 1 | 디자인이 최우선… 2~3년 공들여
LG전자는 지난 3월 프리미엄 가전 통합 브랜드인 ‘LG 시그니처’를 론칭하면서 국내를 비롯한 미국과 유럽 등 글로벌 프리미엄 가전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에어컨(휘센), 냉장고(디오스) 등 제품군에 따라 달리해온 브랜드를 통합했다. 제품 라인에는 OLED TV, 냉장고, 세탁기, 가습공기청정기 제품군으로 이뤄져 있다. 시그니처 제품의 가격은 초고가다. 냉장고 가격은 850만원이며 지난달 19일 출시한 시그니처 OLED TV(77형)의 가격은 4100만원에 달한다. TV 1대가 중형 세단 1대 가격과 맞먹는 셈이다.
이경숙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가로 인해 구매층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초프리미엄 전략을 통해 브랜드 위상을 높일 수 있다”며 “그 정도의 고가로 팔 수 있는 품질과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시그니처는 제품개발에서부터 출시까지의 과정이 기존 가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대표적인 차이가 ‘디자인위원회’다. 기존에는 디자인이 결정되더라도 양산되기까지 개발 부문과 협의하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하지만 LG 시그니처는 먼저 최고의 제품을 디자인해놓고 그 디자인이 양산까지 변하지 않도록 했다. 생활가전 총괄인 조성진 사장과 최고기술책임자 안승권 사장, TV 총괄인 권봉석 부사장 등 최고경영진으로 구성된 ‘디자인위원회’가 최종 의사결정뿐 아니라 제품 개발 및 마케팅 등을 총괄한다. 노창호 LG전자 디자인센터장은 “시그니처는 디자인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LG 시그니처는 ‘디자인위원회’에서 2~3년 동안 준비해 내놓은 작품이다. 이 중 거의 70%가 디자인 검토에 걸린 시간이다. 기술·소재·사이즈 등을 협업 부서와 검토해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LG 시그니처 냉장고는 사용자가 다가가 발을 가까이 대면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냉장고 문을 두 번 두드리면 내부 조명이 켜지면서 유리문을 통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내부 소재는 김칫국이 흘러도 냄새가 안 배게 스테인리스를 적용했다.
노창호 디자인센터장은 “냉장고에 발을 대면 문이 열리는 기능은 자동차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기술적으로 구현하기가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강아지가 지나갈 땐 열리면 안 되게 하는 등 문이 열리는 여러 조건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자인에 공을 많이 들인 것은 외부 디자이너와의 협업에서도 나타난다. 세계적 디자이너인 톨스텐 벨루어가 직접 프로젝트 초기부터 참여해 전반적인 디자인 콘셉트 등에 대해 디자이너들과 활발히 논의하고 코칭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LG 시그니처 세탁기는 그의 디자인팀과 LG전자가 협력해 공동작업을 했다.
톨스텐 벨루어는 덴마크를 대표하는 산업디자이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데이비드 루이스 디자이너스(David Lewis Designers)’란 디자인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지난 2011년 회사 창립자 데이비드 루이스로부터 회사를 넘겨받은 그는 세계적 오디오 브랜드 ‘뱅앤드올룹슨’의 디자이너로 활약하며 명성을 얻었다. 이후 독특하고 창의적이면서도 제품의 기능을 극대화한 디자인으로 유명세를 탔고 에이수스(컴퓨터), 엘리카(주방용품), 숄테스(수제명품 빌트인 가전제품) 등 세계적 기업들의 러브콜을 받았다.
성공비결 2 | 6개월간 미국 전역 돌며 시장조사
LG전자는 지난해 미국에서 빌트인(Built-in) 가전 매출을 전년에 비해 2배 이상 확대하고 600여개 유통채널을 확보했다. 7월 10일엔 프리미엄 주방 브랜드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를 출시하고 초프리미엄 빌트인 가전 시장 공략에 나섰다.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는 686ℓ 얼음정수기냉장고, 110ℓ 전기오븐, 5구 전기레인지, 47ℓ 후드 전자레인지, 12인용 식기세척기 등으로 구성된 빌트인 주방가전 풀패키지다. 5개 제품으로 구성된 전체 패키지는 출하가 기준 약 2600만원이다.
모든 제품의 외관을 최고급 스테인리스 소재로 감쌌고 혁신적 성능과 소비자를 고려한 사용편의성 등으로 경쟁사와의 차별화를 꾀했다.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는 2013년 6월 디자인에 착수한 지 3년 만에 내놓은 결과물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에는 LG 브랜드가 없다는 점이다. GE가 모노그램, 월풀이 키친에이드 등 해외 프리미엄 시장에서 독자 브랜드를 운영하는 추세에 따른 것이다. 디자인 개발 프로세스도 기존과 다르다. 기존 빌트인 가전의 경우 개별 제품별로 디자인을 먼저 진행하고 이후 통일감을 맞췄다. 하지만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는 빌트인 주방가전 전 제품을 통합패키지로 디자인했다. LG전자에서도 처음 시도한 사례다.
혁신적인 기술도 적용됐다. 스테인리스를 눌러서 조작할 수 있는 메탈 터치는 빌트인 가전에서는 국내 처음으로 적용됐다. 압력으로 터치하는 방식이지만 미세한 압력에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설계 난이도가 높은 기술이다. 또 전 제품에 무선랜(와이파이)을 적용해 스마트폰을 통해 각 제품의 작동상태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는 미국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미국 초프리미엄 빌트인 시장은 80억달러에 달하는 미국 전체 빌트인 시장의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 빌트인 시장 대비 성장률이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수연 LG전자 H&A디자인연구소 책임은 “미국은 주방을 리뉴얼하거나 이사할 때 가전제품을 모두 바꾸는 편”이라고 말했다.
특히 미국 시장 맞춤형 제품 개발을 위해 LG전자는 철저한 현지 시장조사를 수행했다. 미국 전국 투어만 세 차례나 진행했다. 1회 투어에 대략 2개월이 걸렸으니 전체적으로 6개월이 걸린 셈이다. 조사 대상자들이 선입관을 갖지 않도록 소속을 숨겼고 미국 전역의 유통 거래선을 찾아다니며 반응을 확인하고 개선하기를 반복했다.
김백규 빌트인 상품기획팀 과장은 “제품이 손상되지 않도록 일일이 포장해 고이 모시고 다니며 전국 일주를 했다”며 “유통 거래선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의 반응조사까지 진행했다”고 말했다.
냉장고 1대 목업(부품을 조립해 제작한 디자인 최종 확인모델) 제작비용에만 1억원이 넘는 돈이 들었다. 이렇게 수차례에 걸쳐 샘플을 만들고 버튼의 크기, 디스플레이 각도 등 작은 부분까지 검증과 리뷰를 거듭한 끝에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
성공비결 3 | R&D 투자 6조원… 매년 늘려
전문가들은 2009년부터 암울한 시기를 보냈던 LG전자가 국면 전환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과감한 투자를 꼽는다. 구 회장은 LG전자의 경영 위기 이후 연구·개발(R&D)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이를 위한 인재 확보에 직접 나섰다.
LG전자는 2009년 당시 효자 사업이었던 휴대전화 부문이 적자를 내기 시작했다. 구 회장이 R&D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은 것은 이때부터였다.
2011년 한 해에만 LG그룹은 4조3000억원을 투입했으며 매년 5000억원 이상 늘렸다. 지난해에는 6조3000억원을 투자해 처음으로 6조원대를 돌파했다. 그룹 전체의 R&D 비용 중에선 LG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LG전자는 올 1분기에만 1조148억원을 R&D에 투자했다.
구 회장은 우수 R&D 인재 모시기에도 직접 나섰다. 2012년부터 LG그룹 최고경영진이 회사의 기술혁신 현황 등을 소개하는 ‘LG 테크노 컨퍼런스’에 구 회장도 참석해왔다. 4월 16일에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LG 테크노 컨퍼런스’에 참석해 미국 유학 중인 이공계 석·박사 과정 인재 300여명을 만났다. 구 회장이 직접 나선 덕분에 R&D 인력 규모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LG그룹의 R&D 인력 규모는 2011년 2만4500명에서 2015년 3만2000명으로 늘었다.
가전 핵심은 모터·컴프레서
LG전자의 프리미엄 가전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부품은 모터와 컴프레서다. 컴프레서는 냉장고·에어컨·정수기·제습기 등 냉기가 필요한 제품의 핵심부품이다. 모터는 세탁기와 청소기·공기청정기에 쓰이며 냉장고·에어컨·정수기·제습기 등에는 컴프레서용 모터로 들어간다. 프리미엄 가전은 에너지 효율이 높고 소음과 진동이 적어야 하고 내구성까지 갖춰야 한다. 고효율·저진동·저소음·뛰어난 내구성을 갖춘 모터·컴프레서는 프리미엄 가전 경쟁력의 원천이다.
LG전자는 모터와 컴프레서 연구인력이 신제품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 완제품에 최적화한 부품을 개발한다. 최근 프리미엄 가전 시장을 이끄는 얼음정수기 냉장고·트윈워시 세탁기·듀얼 에어컨 등 다양한 융·복합 가전은 다이렉트 드라이브(DD)모터, 인버터 리니어 컴프레서, 듀얼 인버터 컴프레서, BLDC(Brushless Direct Current) 모터 등 핵심부품의 끝없는 진화와 혁신에 힘입어 태어났다.
이는 특허 건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버터 리니어 컴프레서 관련 국내 특허는 모두 907건이다. 미국·유럽에서 각각 157건, 33건의 특허 등록을 했다. DD모터와 DD시스템도 국내 68건, 미국·유럽 각각 47건, 20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컴프레서 생산량의 3분의 1은 타사에 공급된다.
미국 세탁기 시장에서 9년째 1위
미국 시장에서 LG전자의 위상을 알 수 있는 제품이 프리미엄 세탁기 트윈워시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스티븐슨에 따르면 LG전자는 올 1분기 미국 드럼세탁기 시장점유율 26.4%로 1위(브랜드별 매출액 기준)를 기록했다. 2위와의 격차는 5%포인트 이상이다.
LG전자는 900달러가 넘는 프리미엄 제품군에서도 점유율 34.2%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2위 업체보다 15%포인트 이상 높은 수준이다.
LG전자는 미국 드럼세탁기 시장에서 2007년 처음으로 1위에 오른 이후 지난해까지 9년 연속 1위를 지키며 미국 세탁 문화를 선도해 오고 있다. 특히 LG전자가 지난해 말 출시한 트윈워시가 올해 드럼세탁기의 판매 성장세를 주도하고 있다. 트윈워시의 지난 1분기 북미 지역 매출액은 3조9359억원으로 역대 최고다.
드럼세탁기 하단에 통돌이 세탁기를 결합한 트윈워시는 미국서 판매되는 세탁기 중 최고 몸값을 자랑한다. 건조기와 함께 구입하면 5000달러에 육박한다. LG전자는 트윈워시 호조세를 몰아 라인업을 다양화하고 출시국가를 18개국에서 올해 연말까지 40여개 국가로 확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