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전모가 드러난 미국 뇌들러 화랑의 위작판매 사건은 1994년 딜러 로잘리스가 추상표현주의 작품 40점을 뇌들러에 들고 오면서 시작됐다. 사진은 뇌들러 화랑의 외부와 내부 모습. <사진 : 블룸버그>
2011년 전모가 드러난 미국 뇌들러 화랑의 위작판매 사건은 1994년 딜러 로잘리스가 추상표현주의 작품 40점을 뇌들러에 들고 오면서 시작됐다. 사진은 뇌들러 화랑의 외부와 내부 모습. <사진 : 블룸버그>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존경받는 화랑 중의 한 곳인 뇌들러 화랑(Knoedler Gallery)이 문을 닫았다. 2011년 11월의 일이다. ‘영업상의 이유로 영구히 문을 닫는다’는 한 줄 문장으로 165년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바로 이어 이 화랑의 전 대표 앤 프리드먼(Ann Freedman)이 7000만달러(약 800억원)에 이르는 폴록·로스코 등 추상표현주의 대가들의 작품 40점의 위작판매 혐의로 FBI의 수사를 받고 있다는 뉴스가 터져 나왔다. 10건의 소송이 줄을 이었다. 현재 6건은 합의를 보았고 4건은 재판이 진행 중이다. 모든 미술품 위작사건의 구조와 전개과정은 비슷하다. 이우환 위작사건 역시 추이가 주목된다.

뇌들러의 역사는 프랑스 화랑인 구필(Goupil)이 1846년 뉴욕에 지점을 내면서 시작됐다. 구필 파리에서 근무하다 뉴욕지점으로 발령 난 뇌들러가 이 지점을 인수해 이름을 바꿨다. 반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가 일했던 곳이 그의 숙부 소유였던 구필 화랑 헤이그지점이었다. 뇌들러는 당시 미국 최고의 부자이자 컬렉터였던 밴더빌트·록펠러·JP모건 등 거물들과 메트로폴리탄·루브르·테이트 등 최고의 미술관들과 거래하면서 명성을 날렸다. 1971년에 사업가이자 컬렉터인 해머(Armand Hammer)로 주인이 바뀌었으며 프리드먼은 전문 경영인이었다.

이 사건은 1994년 로잘리스(Glafira Rosales)라는 딜러가 추상표현주의 작품 40점을 뇌들러에 들고 오면서 시작됐다. 모두 처음 공개되는 작품으로 출처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었다. 로잘리스는 자기 고객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며 현금으로 결제한다면 시가보다 싸게 팔 수 있다고 했다.


길거리 화가가 제작한 초고가 위작

이 작품들은 실은 전부 로잘리스가 솜씨 좋은 중국인 길거리 초상화가 페이 쉔 치앤을 시켜 그리게 한 가짜였다. 이 사건은 구매자들의 고소로 법정에 가게 됐고 위조범을 체포하면서 전모가 드러났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허술하고 황당한 사기였는데, 범인이 잡히기 직전까지도 프리드먼, 로잘리스 또 그들의 초호화 변호인단은 줄곧 진작(眞作)임을 입증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법정증인으로 나선 딜러 패리시는 “양식 있는 딜러라면, 누군가가 출처에 대한 기록이 없는 미공개 작품을 대량으로 가져와서 현금결제를 조건으로 시가보다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제시한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야 한다. 틀림없이 가짜다”라고 말했다. 뇌들러는 2000년 로잘리스로부터 67만달러에 산 잭슨 폴록의 작품을 화이트라는 컬렉터에게 310만달러에 팔았다. 2002년 힐티 패밀리 트러스트에 550만달러에 판 로스코 회화는 75만달러에 산 것이었다. 2005년 타우프만 트러스트가 430만달러에 산 클리포드 스틸의 원가는 60만달러였다.

이 작품에 대한 경고는 여기저기서 나왔다. 1994년 사건이 시작되기도 전에 디벤콘(Diebenkorn)의 유족이 로잘리스가 가져온 디벤콘 작품의 진위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2003년 골드만삭스의 임원 레비는 200만달러에 잭슨 폴록의 작품을 사면서 IFAR(Int’l Foundation for Art Research)의 감정을 전제로 달았다. 하지만 IFAR은 의견 제시를 거절했다. 레비는 구매를 취소하고 대금을 돌려받았다. 2007년에 헤지펀드 매니저 라그랑지는 1700만달러에 잭슨 폴록의 그림을 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림의 물감은 폴록이 죽고 나서 수년 후에야 시판된 것이었다. 뇌들러는 이 그림을 팔면서 곧 출간되는 잭슨 폴록 전작도록의 부록에 실릴 것이라고 했으나 거짓으로 밝혀졌다.

2004년 뇌들러 화랑에서 가짜 로스코 회화를 사서 피해를 입은 드 소울은 하버드 법대 출신 변호사다. 그는 “작품의 진위보다 화랑의 공신력을 보고 구매했다”고 했다. <사진 : 블룸버그>
2004년 뇌들러 화랑에서 가짜 로스코 회화를 사서 피해를 입은 드 소울은 하버드 법대 출신 변호사다. 그는 “작품의 진위보다 화랑의 공신력을 보고 구매했다”고 했다. <사진 : 블룸버그>


미술품 경매 전문 소더비 회장도 사기 당해

2008년엔 마더웰(Motherwell)의 전작도록을 관리하는 재단에서 뇌들러가 판 마더웰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 작품을 감정한 마틴은 “이 작품은 과학적 분석을 떠나 일반인이 보아도 가짜임을 알 수 있다. 서명은 베낀 흔적이 있으며 오래된 것으로 보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변형했고, 옛날 재료를 재사용한데다 작가가 죽고 한참 후에 개발된 재료도 사용됐다”고 했다. 프리드먼은 “마틴은 마더웰에 대해 잘 모른다. 작품의 진위는 과학으로 알 수 없다”며 그의 의견을 무시했다.

초호화 변호인단의 뒤에 숨어 법정에 증인으로조차 선 적이 없는 프리드먼이 최근 아트뉴스페이퍼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작품의 진위확인에 최선을 다했다. 고의로 잘못한 것은 없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미술품은 특히 어렵다. 유명 미술관에 걸려있는 작품 중에도 의심스러운 것이 있다. 이 일로 상처를 받거나 손해를 본 사람들에게는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 사건 담당 수석 검사였던 헤르난데즈는 “미술시장은 참 묘하다. 화랑이나 딜러의 명성만으로 1000만달러가 넘는 돈이 오간다. 작품에 대한 믿을 만한 정보도, 보증서도 없다”고 지적했다. 미술시장은 극도의 익명성과 비밀이 지배하는 곳이다. 서로 캐묻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천하에 똑똑한 사람들이 당하는 경우가 많고 큰 손해를 보고도 대부분 입을 못 연다.

2004년 뇌들러에서 가짜 로스코를 830만달러에 산 드 소울(De Sole·73)은 하버드 법대 출신의 변호사로 세계적인 로펌 ‘패튼, 보그스 앤드 블로(Patton, Boggs & Blow)’의 파트너다. 그는 구치그룹의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소더비와 톰 포드의 회장, 갭과 텔레콤이탈리아의 이사를 겸하고 있는 유명인이다. 그는 재판에서, 당신은 소더비의 회장인데 그림에 대해 잘 모를 수가 있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대해 “나는 프리드먼을 믿었다.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고, 가장 오래됐고, 가장 중요한 화랑으로서 뇌들러의 브랜드를 존경했다”고 답했다. 위작을 만든 페이 쉔 치앤은 중국으로 도주해서 기소불능이다. 범행을 공모한 로잘리스의 스페인 남자친구 디아즈는 보석 중 스페인으로 도망갔다. 미국 정부에서 범죄인 인도 요청을 했으나 스페인 당국으로부터

‘범행은 인정되나 병이 깊어 신병은 인도할 수 없다’는 답장을 받았다. 로잘리스는 홀로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에 대한 선고가 내려질 때쯤이면 이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아득해질 것이다. 프리드먼은 2011년, 뇌들러가 화랑 문을 닫은 해에 프리드먼아트라는 화랑을 열었다.


▒ 김순응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경영학 석사, 하나은행 자금본부 본부장, 서울옥션 대표, 케이옥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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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표현주의 제2차 세계대전 후, 1950년대의 미국 추상 회화를 가리킨다. 1929년 미국 평론가 알프레드 바 2세가 미국에서 전시 중이던 칸딘스키의 유동적인 초기 작품에 대해 ‘형식적으로는 추상적이나 내용적으로는 표현주의적’이라는 의미에서 추상표현주의라는 말을 사용했다. ‘자기표현과는 무관함’ ‘비개인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미국 회화에서 엄밀하게는 모순된 명칭으로 여겨지지만 빈번히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