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시계 브랜드 파텍 필립은 홈페이지에 제품의 가격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자사 제품이 ‘대를 이어 물려가야 할 명품’이란 사실을 강조하듯 다정한 부자(父子)의 모습이 담긴 광고 영상이 흐를 뿐이다. <사진 : 파텍 필립>
명품 시계 브랜드 파텍 필립은 홈페이지에 제품의 가격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자사 제품이 ‘대를 이어 물려가야 할 명품’이란 사실을 강조하듯 다정한 부자(父子)의 모습이 담긴 광고 영상이 흐를 뿐이다. <사진 : 파텍 필립>

‘시계의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명품 시계 브랜드 파텍 필립(Patek Philippe) 홈페이지에서는 일반 온라인 쇼핑몰에서 흔히 보이는 ‘장바구니’ 같은 버튼을 찾을 수 없다. 그 대신 아들의 크리켓 시합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승리를 축하하는 내용의 영상, 오픈카를 몰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부자(父子)의 영상이 재생된다. 광고는 “당신은 파텍 필립을 소유한 것이 아닙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잠시 맡아두고 있는 겁니다”라는 문구로 끝맺는다. 이 홈페이지에서는 파텍 필립의 다양한 제품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가격은 알 수 없다. 제품을 구매하는 용도로 만든 홈페이지가 아니라는 얘기다.

희소성과 고급스러운 소비자 경험이란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명품 브랜드가 ‘대중화’의 대표 수단인 온라인 채널 공략에 나서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를 사용한 전자상거래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를 미래 고객으로 만들려면 온라인 채널 구축이 필수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대신 구사하는 전략은 일반 브랜드와 다르다. 명품 브랜드만의 차별화된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소비자 저변을 넓히기 위한 다양한 디지털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판매보다는 홍보에 주력

그동안 명품 브랜드는 온라인 채널 구축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소수의 특권층만 누릴 수 있던 명품 브랜드 제품이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노출되면 그 희소성의 값어치가 떨어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명품 브랜드 매장을 방문해서 제품을 구매하는 과정, 제품 구매 뒤 받는 애프터서비스에 이르는 풍성한 소비자 경험을 온라인으로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느냐도 고민거리였다.

하지만 온라인 채널은 오히려 명품 브랜드가 일반 브랜드와 차별화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새 기회를 열었다. 홈페이지나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해 기존의 충성 고객과 좀 더 쉽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의 가치와 배경, 각 제품에 대한 정보까지 상세하고 심층적인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보통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명품 브랜드에는 유지해나가야 할 유산, 공유할 만한 스토리, 고객들의 경험담이 풍부하다.

웹사이트와 온라인 채널을 제대로 구축하면 그 모든 콘텐츠를 고객의 경험을 확장하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매력적인 웹사이트, 내용을 잘 채운 소셜미디어 계정은 브랜드의 잠재 고객을 급속도로 늘리는 역할을 한다. 샤넬(CHANEL)이 다양한 온라인 채널을 통해 런웨이쇼나 유명 인사, 칼 라거필드 등 유명 디자이너의 동영상을 공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접속자가 늘어날수록 해당 업체들이 수집할 수 있는 소비자 데이터가 늘어나며 마케팅 전략에도 큰 도움이 된다. 또 기술의 발전 덕분에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으로도 충분히 오프라인 매장의 직원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 점도 명품 브랜드의 전략 변경에 영향을 미쳤다.

현재 명품 브랜드의 온라인 산업은 상당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베이커리테일링센터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명품 매출 중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매출은 전체의 10%도 안 되지만, 구매 결정의 절반 이상은 온라인 채널을 통해 제품을 살펴본 뒤 이뤄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산업계 전문가들은 다양한 채널을 갖춘 명품 브랜드가 온라인 전문 브랜드나 오프라인 전문 브랜드보다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명품 브랜드의 온라인 채널은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위한 카탈로그 역할에 충실한 것이 보통이다. 제품의 가격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며 온라인으로는 상품을 아예 팔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품을 판매하더라도 매장과 달리 몇 개의 상품만 골라서 ‘온라인 한정’ 등의 한정판 제품을 내놓는 전략을 펴고 있다.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희소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다.

명품 브랜드가 온라인 판매에 소극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가격 투명성 때문이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웹사이트에 제품 가격을 공개하면 같은 제품을 다른 국가에서 판매할 때와 가격이 다를 때 곤란을 겪는 등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일부 명품 브랜드는 특정 국가 한정판 제품을 출시해 서로 다른 국가의 제품 판매가격을 소비자가 비교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이에 반해 샤넬은 아예 전 세계 제품 가격을 통일하는 가격 표준화 정책을 도입했다.

명품 브랜드일수록 가격 정책에는 신중한 대처가 필요하다. 온라인 거래에서는 할인 판매가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명품 브랜드가 가격을 인하하면 그 브랜드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명품을 구매하는 주요 소비자가 물건을 고를 때 가격의 합리성과 유용성보다는 예술성과 그 브랜드의 가치를 따지기 마련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5만달러짜리 파텍 필립 시계를 사는 사람은 ‘시각이 정확하게 맞아서’ 파텍 필립을 구매하는 게 아니라, 그 브랜드의 가치를 산다는 얘기다.


신비감 유지가 관건

대중과의 거리감은 명품의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다. 제품 개발 과정, 광고, 판매 방식은 물론 명품 브랜드의 부티크 매장까지 모두 해당 브랜드의 범접하기 어렵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접근 가능한 온라인 채널은 기껏 노력해서 세운 장벽을 순식간에 없애버리고 소비자가 명품 브랜드에 막연하게 갖는 거리감을 줄여 친숙하게 만들 거라는 게 명품 브랜드의 고민거리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은 온라인 환경 속에서도 독자적인 차별성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으로 제품을 소개하는 것이다. 프랑스 스타트업 다이망(Dymant)은 현지 명품업체가 웹사이트를 통해 정기적으로 비공개 컬렉션을 열 수 있게 기술적으로 지원하는 기업이다. 명품 브랜드들은 기존 회원이나 회원의 초대를 받은 사람에게만 홈페이지에 접속해 비공개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는 접근 권한을 주는 방식의 온라인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명품 브랜드는 자사 제품을 ‘예술’로 취급할 만큼 자부심이 강하다. 제품을 제작할 때는 디자이너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치고, 소비자의 의견을 제품 디자인에 반영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온라인 세계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신의 취향을 반영한 제품을 원하는 온라인 소비자의 특성 때문이다. 이처럼 바뀐 소비자를 잡기 위해서는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제품 디자인 요소를 몇 가지 색상이나 사소한 디테일, 혹은 이니셜 각인 등으로 제한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소비자가 ‘내 선택이 들어간 제품’이라는 애착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명품 디자인의 경우,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을 소수로 제한하는 것이 많은 선택권을 주는 것보다 더 만족도가 높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LVMH)는 애플 출신의 이언 로저스를 최고 디지털책임자로 영입하며 디지털 기술 투자에 나서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LVMH)는 애플 출신의 이언 로저스를
최고 디지털책임자로 영입하며 디지털 기술 투자에 나서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명품 브랜드의 온라인 실험

최근 명품 브랜드들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온라인 소비자 공략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이들이 노리는 소비자는 30대 미만의 젊은 세대다. 미래 브랜드의 매출 기반이 될 지지층 저변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디지털 네이티브’로 불리는 밀레니얼 세대(1980~95년 출생)와 Z세대(1996년 이후 출생) 소비자를 잡기 위한 명품 브랜드의 경쟁에서 한발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 4개 업체를 소개한다.


명품 브랜드 가운데 가장 먼저 디지털 마케팅 투자에 나선 버버리는 스냅챗 등 젊은층이 애용하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가장 능숙하게 활용하는 기업으로 손꼽힌다. 최근에는 ‘애플 뮤직’ 서비스에 버버리 채널을 열기도 했다. <사진 : 버버리>
명품 브랜드 가운데 가장 먼저 디지털 마케팅 투자에 나선 버버리는 스냅챗 등
젊은층이 애용하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가장 능숙하게 활용하는 기업으로 손꼽힌다.
최근에는 ‘애플 뮤직’ 서비스에 버버리 채널을 열기도 했다. <사진 : 버버리>

1 |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LVMH)

디지털 미디어는 명품 브랜드의 창의성과 혁신을 북돋우는 새로운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명품 브랜드가 강조하는 고품질 소비자 경험을 전할 수 있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업들도 몸이 달았다. 한때는 명품 브랜드 출신 기업인이 실리콘밸리로 발탁돼 갔지만, 이제 반대로 실리콘밸리 출신을 명품 브랜드 기업이 영입하고 있다.

LVMH는 2015년 애플 뮤직의 스트리밍 사업을 이끌었던 이언 로저스를 최고디지털책임자(CDO)로 영입했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최고경영자(CEO)는 “이언은 하이엔드 디지털 벤처 산업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과 혁신 정신을 통해 LVMH를 디지털 명품 시장의 최강자로 키울 적임자”라고 말했다. 명품 브랜드가 디지털 기술에 대한 투자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2 | 버버리(BURBERRY)

버버리는 명품 브랜드 가운데 일찌감치 디지털화의 선구자를 선언한 기업이다. 2006년 당시 버버리 CEO였던 안젤라 아렌츠는 “명품 업계에서 처음으로 완전히 디지털화된 회사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 말대로 지금 버버리에서 디지털 마케팅은 사업의 핵심이 됐다. 자체 소셜미디어 ‘아트 오브 트렌치(Art of the Trench)’를 비롯해 다양한 소셜미디어 채널을 통해 끊임없이 실험을 거듭했다. 스냅챗,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광고와 판매에 나섰다.

2014년 말 모바일 웹사이트 업그레이드 이후에는 모바일 수익이 세 배로 뛰었다. 일찌감치 자체 디지털팀을 꾸리고 투자와 실험에 나선 결과, 지금 버버리는 명품 브랜드 가운데 디지털화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손꼽힌다. 2015년 런던패션위크에서는 스냅챗을 통해 2016년 S/S

시즌 런웨이쇼를 생중계하는 한편, 패션쇼에 등장한 모든 옷을 공개했다. 중국에서 버버리는 위챗 메신저를 통해 물건을 구매하는 ‘빠른 주문(instant order)’을 시험하기도 했다.


샤넬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영상과 이미지 중심의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온라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홈페이지를 방문할 때마다 예술 단편 영화같은 느낌의 영상물이 쉼없이 흐른다. <사진 : 샤넬 공식 홈페이지>
샤넬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영상과 이미지 중심의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온라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홈페이지를 방문할 때마다 예술 단편 영화같은 느낌의 영상물이 쉼없이 흐른다. <사진 : 샤넬 공식 홈페이지>

3 | 샤넬(CHANEL)

명품 브랜드를 선도하는 디지털 브랜드 가운데 또 한 곳이 샤넬이다. 샤넬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의 영상 이미지를 활용해 디지털 세대 공략에 나서고 있다. 샤넬의 유튜브 채널은 시청자수가 59만명이 넘는다. 모델 지젤 번천이 출연한 광고는 1100만뷰를 기록해 상업 광고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이 본 영상 가운데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샤넬의 웹사이트는 흐르는 듯 서사적인 디자인으로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하는 공간이다.


패션 브랜드 레베카 밍코프는 플래그십 스토어에 마련한 RFID 태그를 활용한 터치 스크린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매장을 찾은 손님이 피팅룸에서 시착하는 옷의 정보를 인식한 뒤 그와 어울리는 다른 제품으로 스타일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진 : 레베카 밍코프>
패션 브랜드 레베카 밍코프는 플래그십 스토어에 마련한 RFID 태그를 활용한 터치 스크린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매장을 찾은 손님이 피팅룸에서 시착하는 옷의 정보를 인식한 뒤 그와 어울리는 다른 제품으로 스타일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진 : 레베카 밍코프>

4 | 레베카 밍코프(Rebecca Minkoff)

패션 브랜드 레베카 밍코프는 2014년 11월 미국 뉴욕의 소호 근처에 ‘커넥티드 스토어(connected store)’를 열었다. 186㎡(약 56평) 넓이의 매장 벽과 피팅룸에는 거울처럼 생긴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있다. 이 화면을 터치하면 레베카 밍코프가 선별한 다양한 의상을 볼 수 있는 룩북(look book)이 나타난다. 무료 커피나 샴페인 한 잔을 주문할 수도 있다.

피팅룸 안에 옷을 갖고 들어가면, 거울처럼 생긴 스크린에 손님이 입은 옷과 어울리는 다양한 의상이 매치돼 나타난다. 옷에 부착된 RFID(소형 칩에 상품 정보를 담아 무선으로 전송하는 기술 또는 장치) 태그를 통해 의상 정보가 모니터로 전송되는 것이다. 이 매장을 선보인 뒤 레베카 밍코프의 의상 매출은 크게 늘었다. 자신이 시착한 옷 외에 피팅룸의 터치 스크린을 통해 살펴본 추가 의상을 주문하는 고객이 늘어난 영향이다. 레베카 밍코프 공동 창업주이자 CEO인 유리 밍코프는 “원래 우리 브랜드는 핸드백으로 잘 알려진 편이었는데 이 매장이 생긴 뒤 의상 매출이 예상액의 세 배를 기록했다”고 했다.


※ 본 기사는 <이코노미조선>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온라인 리서치·비즈니스 분석 저널인 Knowledge@Wharton의 정식 계약에 따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