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f 109(아래) 전투기와 Ju 87 급강하 폭격기. 제2차대전 당시 독일 공군을 상징하는 두 전투기의 탄생에 도움을 줬던 것이 영국 롤스로이스였다는 사실은 한마디로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Bf 109(아래) 전투기와 Ju 87 급강하 폭격기. 제2차대전 당시 독일 공군을 상징하는 두 전투기의 탄생에 도움을 줬던 것이 영국 롤스로이스였다는 사실은 한마디로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항공기 엔진은 최고의 기술력이 필요한 분야다 보니 제작 업체가 그다지 많지 않다. 특히 최신예 전투기에 장착되는 고성능 엔진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영국의 롤스로이스는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 프랫앤드휘트니(P&W)와 더불어 엔진 시장을 삼분하는 강자다. 역사도 100년이 넘었고 꾸준히 좋은 제품을 만들다 보니 롤스로이스 엔진은 역사적으로 상당히 재미있는 일화를 만들고는 했다. 그중에는 역설적이지만 적을 돕는 아이러니를 연출한 사례도 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은 전사에 길이 남을 만한 수많은 에이스를 배출했는데, 무려 100여기 이상의 적기를 격추시킨 수퍼에이스들을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다.


獨, 자존심 버리고 英 엔진 도입

참고로 당시 연합국 최고의 에이스는 62기를 격추한 소련의 이반 코체더브지만 이는 독일 공군에서 200등 밖일 정도다.

작전기의 성능이 당대 톱클래스에 오를 만큼 좋았던 것도 이런 놀라운 결과가 나온 하나의 이유였다. 그중 에이스들의 애마로 사용된 Bf 109 전투기와 전격전을 앞장서서 이끈 Ju 87 급강하 폭격기가 대표적이다. 꾸준히 개량되기는 했지만 1930년대 초반에 개발된 이 전투기들이 종전까지 계속 사용됐다는 점은 그만큼 잘 만들었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Bf 109와 Ju 87은 제2차대전을 상징하는 대표 아이콘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롤스로이스를 떼어놓고 제3제국의 극성기를 상징하던 이들의 탄생을 설명하기가 힘들다.

독일은 기계 공업 강국이지만 제1차세계대전 패전 후 맺은 베르사유조약으로 인해 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품목의 개발과 제작에서 제한을 받아왔다. 따라서 히틀러가 재군비를 선언한 후 막상 전투기 개발을 시작했을 때 신뢰할 만한 엔진이 없었다. 기체 제작은 자신이 있었지만 당장 심장 없이 좋은 전투기를 만들어내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영국이 이때 독일에 엔진을 공급했다. 물론 영국도 최신형 엔진은 전략물자였기에 상업적 거래로 제공이 가능한 롤스로이스 케스트랄 엔진(이하 케스트랄)이 공급됐다. 반대로 독일은 이런 상황이 몹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동체와 엔진을 분리시켜 신예기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려는 계획이 있었기에 우선 영국제 엔진 도입이 이뤄진 것이었다.

덕분에 독일 공군의 차기 주력기로 채택되기 위해 당시 치열한 경합을 벌이던 Bf 109, He 112, Ar 80, Fw 159의 4개 후보 기종 중 Fw 159만 제외하고 모두 케스트랄이 장착됐고 급강하 폭격기로 낙점된 Ju 87도 실험 1호기에 동종 엔진이 탑재됐을 정도였다.

이처럼 제2차대전 당시 위력을 떨친 독일 공군의 시작을 논함에 있어 롤스로이스의 엔진을 빼놓을 수 없다. 전쟁 내내 영국을 지겹도록 괴롭혔던 독일 공군의 주력 Bf 109와 Ju 87의 탄생에 도움을 줬던 것이 롤스로이스였다는 사실은 한마디로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결과는 영국에 커다란 교훈을 줬을 것 같지만 어이없게도 같은 실수를 곧바로 반복하고 말았다.

제2차대전 종전 무렵 등장한 제트 전투기인 독일의 Me 262는 전세를 뒤집지는 못했지만 이후 하늘의 주역이 바뀌었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됐다. 그런데 당시 소련은 항공기 분야를 선도하는 나라가 아니었고 특히 제트기의 기술 기반은 취약했다. 이것은 전후 미국 주도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하는 데 있어 소련이 공산권 맹주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수도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서방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소련의 미그 15 전투기. 군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치인들의 착각으로 소련에 제공된 롤스로이스 넨 엔진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 <사진 : 위키피디아>
한국전쟁 당시 서방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소련의 미그 15 전투기. 군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치인들의 착각으로 소련에 제공된 롤스로이스 넨 엔진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 <사진 : 위키피디아>

롤스로이스 엔진 받아 발전한 소련 항공기술

소련은 Me 262에 사용된 융커스의 유모 004 엔진을 노획해 복제했지만 출력 부족으로 차기 제트기의 심장으로 적당하지 않았다. 그런데 전혀 엉뚱한 곳에서 역사가 바뀌었다. 1946년 영국이 지난 전쟁의 동맹국이었던 소련에 우호의 증표로 최신형 제트 엔진인 롤스로이스 넨(이하 넨) 엔진을 선물한 것이었다.

영국은 1937년 세계 최초로 제트 엔진의 실용화에 성공한 나라답게 이 분야에서 앞선 노하우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Me 262도 엔진 문제 때문에 성능을 십분 발휘할 수 없었을 만큼 독일도 제트 엔진만큼은 영국에 뒤져 있었다. 그랬던 영국이 당시 소련산 제트 엔진의 추력을 2배나 상위하는 고성능의 최신 넨 엔진을 선뜻 제공한 것이다.

소련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을 만큼 예상하지 못한 행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영국 군부가 극렬히 반발했을 만큼 장차 적으로 등장할 것이 명약관화한 국가에 전략 물자를 제공한 정치가들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이었다. 이렇게 건너간 엔진은 마침 새 비행기의 동체 시험까지 완료했지만 고민을 거듭하던 소련에 좋은 선물이 됐다.

소련의 미그 설계국은 굴러 들어온 호박을 신형 제트기에 장착해 실험한 결과 최고의 성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순식간에 고민이 해결된 소련은 넨 복제에 전력을 기울여 클리모프 RD-45엔진을 만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넨의 ‘짝퉁’을 바탕으로 소련의 항공기 제작 능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불과 5년 만에 짝퉁 넨을 장착한 신예기가 등장했다. 그것이 바로 한국전쟁 당시에 갑자기 등장해 서방 세계를 경악시킨 미그 15다. 예고도 없이 등장한 정체불명의 이 제트전투기는 미국은 물론 영국도 애를 먹게 했다. 이후 소련(러시아)은 군용기 분야에서 미국과 유일하게 경쟁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적을 이롭게 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1989년 정부 주도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겪었던 조선업이 최근 당시와 유사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다시 정부의 도움을 바라보는 것을 보면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라 할 수 있다. 아마도 인간은 과거의 아픔을 쉽게 망각하는 천부의 능력을 타고나는 것 같다.


▒ 남도현
럭키금성상사, 한국자동차보험 근무, 무역 대행업체인 DHT에이전스 대표, 군사칼럼니스트로 활동, 주요 저서 <무기의 탄생> <발칙한 세계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