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조 바사리와 페데리코 주카리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천장에 그린 벽화 <사진 : 박현주>
조르조 바사리와 페데리코 주카리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천장에 그린 벽화 <사진 : 박현주>

건축의 역사를 보면 신성의 시대에는 수직적인 양식이, 이성의 시대에는 수평적인 양식이 주류를 이뤘다. 계속해서 수직과 수평을 반복해 나갔는데 중세에 막 접어든 5~13세기에는 수평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이 지배적이었다. 이 양식은 수도원을 중심으로 피렌체, 루카, 시에나 등 토스카나 마을의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로마와 초기 기독교 건축의 영향으로 벽이 두껍고 투박하며 순수하고 자연스럽다.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도 토스카나 지방을 여행하며 받은 영감을 작품에 녹아들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13~15세기에는 십자군 원정으로 중세 봉건국가 기사들과 수도사들이 비잔틴과 동방의 화려한 문명을 보고 돌아와서 만든 고딕 양식이 유행했다. 하느님을 향한 신앙심을 표현하기 위해 높이 솟은 공간들이 화려하고 수직적인 상승미를 뽐낸다. 특히 노트르담 성당은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고딕건축의 백미로 꼽힌다. 15세기에 다시 수평의 시대가 돌아오면서 중세 시대의 복잡하고 장식적인 면이 배제되고 간소하고 명확하면서 수학적 비례와 조화, 리듬을 중요시하는 고대 양식으로 복귀했다. 피렌체의 산 로렌초 성당과 성당 내의 라우렌치아나 도서관(미켈란젤로 설계), 도서관의 둥근 계단이 바로 이 시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 준다. 이 양식의 흐름은 뚱뚱한 라틴 남자가 마르고 늘씬한 북방 미인이 됐다가 다시 완벽한 비율의 모델로 환생하는 과정처럼 재밌게 표현된다.


브루넬리스키의 팔각형 지붕 설계도 <사진 : 위키피디아>
브루넬리스키의 팔각형 지붕 설계도 <사진 : 위키피디아>

대성당 양식과 크기로 피렌체 위엄 자랑

1340년 피렌체보다 우위에 있었던 도시 시에나는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엄 있던 이탈리안 스타일의 고딕 양식인 시에나 대성당을 대대적으로 확장하려 했다. 그러나 당시 흑사병이 유행했고, 신흥강자로 떠오르는 피렌체에 밀려 공사를 포기하고 말았다.

반면 르네상스(문예부흥 운동)를 일으키며 15세기 이탈리아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가 된 피렌체는 자신들의 번영을 널리 자랑하고자 고대 로마의 판테온 신전 크기를 능가하는 대성당,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Basilica di Santa Maria del Fiore)를 지었다. ‘두오모’라고도 불리는 이 아름다운 성당은 피렌체에 가면 반드시 봐야 할 제1의 명소로 꼽힌다. 성당 자체는 고딕 양식으로 시작했지만 지붕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완성됐다. 내부는 조르조 바사리와 페데리코 주카리가 천장에 그린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단테의 벽화 등 많은 르네상스 시대 예술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꽃의 대성당이라 불리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는 두오모와 종탑 그리고 세례당으로 이뤄져 있다. 1296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착공한 후 필리포 브루넬리스키가 쿠폴라(지붕)를 완성한 것은 1436년이다. 무려 140년에 걸쳐 완공됐고 완공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다. 두오모와 종탑은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통해 피렌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이름을 알렸다. 종탑 앞에 위치한 세례당에도 수없이 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데 바로 1401년 기베르티와 브루넬리스키가 설계 경합을 벌인 청동문을 보기 위해서다. 후에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 이름 붙인 이 청동문의 설계 주제는 구약성경의 내용인 ‘이삭의 희생’이다. 이 경합에서 기베르티가 아슬아슬하게 이기긴 했지만 예술적인 표현 면에서는 승패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둘이 비슷했다. 한편 경합에서 진 브루넬리스키는 로마로 떠나 판테온 신전을 둘러보며 연구한 후 17년 만인 1418년, 두오모의 쿠폴라를 완성하는 경합에서 마침내 기베르티를 꺾었다. 그리고 높이 106m의 쿠폴라, 즉 돔을 완성시킨다.


브루넬리스키의 팔각형 지붕 설계도 <사진 : 위키피디아>
브루넬리스키의 팔각형 지붕 설계도 <사진 : 위키피디아>

혁신적인 공학 설계 통해 팔각형 돔 완성

이 쿠폴라에는 아주 획기적인 건축공법이 숨어 있다. 브루넬리스키가 로마 판테온 신전의 벽이 이중으로 돼 있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쿠폴라 설계에 응용한 것이다. 이전에는 원형으로 돔을 쌓을 때 벽돌을 그대로 하나씩 쌓아올려 노동자들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원근법이 적용된 최초의 회화, 마사초(Masaccio)의 ‘성 삼위일체’ <사진 : 위키피디아>
원근법이 적용된 최초의 회화, 마사초(Masaccio)의
‘성 삼위일체’ <사진 : 위키피디아>

브루넬리스키는 이중 설계를 통해 돔 안에 또 다른 돔을 만들면서 안을 비워 44m의 지름에서 오는 엄청난 무게를 나눠 지탱하도록 했다. 또 비어 있는 돔과 돔 사이에는 계단을 두어 지붕 끝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 그 결과 역사상 최초로 팔각형 돔이 만들어졌고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 나온 헤어진 연인을 만나기 위해 463개의 계단을 지나 두오모 꼭대기까지 오르는 장면이 탄생할 수 있었다. 피렌체에는 ‘기술이 예술과 일치한다’는 말이 있다. 이 혁명적인 공학 설계는 정말 아름다운 돔의 완성으로 피렌체 건축에서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렸다.

천재 건축가 브루넬리스키가 판테온에서 가져온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사에서 가장 큰 발견 중 하나로 꼽히는 원근법 또한 판테온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정처 없이 판테온 신전을 걸어다니다가 정확한 비율로 되풀이되는 아치·기둥들의 나열에서 소실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소실점으로 2차원 평면에 거리감과 공간감을 반영할 수 있게 됐고, 이는 세계 회화사의 흐름을 바꿔 놓는 역할을 했다. 브루넬리스키가 발견한 선 원근법은 마치 오랜 가뭄 끝에 비를 만나듯 르네상스 화가들에게 창작의 욕구가 솟구치도록 했다. 원근법이 적용된 최초의 회화는 마사초(Masaccio)의 ‘성 삼위일체’다. 실제로 이 그림이 그려진 1420년대부터 20세기 추상주의가 등장하기 전까지 서양미술의 기본 골조는 원근법에 기초한 사실주의(리얼리즘)다. 이후 19세기에 발명된 사진은 두 번째 큰 변화를 일으켰다. 사진의 발명으로 초상화와 스케치로 생계를 이어가던 화가들은 설 자리가 없어졌다. 이는 화가들에게 큰 충격을 줬고, 사실주의에 빠져 있던 미술의 흐름을 인상주의로 옮겨가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 박현주
보스턴 뉴잉글랜드 음악원 석사·전문연주자 과정, 고려대 문화콘텐츠전공 박사, 경희대·강남대 피아노 전공실기 강사,‘도시의 유혹에 빠지다’등 공연 콘텐츠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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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Duomo) 영어의 ‘돔(Dome)’과 같은 의미로 집을 의미하는 라틴어 ‘도무스(Domus)’에서 유래했다. 이탈리아어로는‘대성당’자체를 의미한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피렌체에서도 두오모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으로 ‘꽃의 성모 교회’를 뜻한다.

소실점(消失點)회화나 설계도 등에서 투시(透視)해 물체의 연장선을 그었을 때, 선과 선이 만나는 점. 소실점을 확인하면 공간의 입체감을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