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비시장에 온라인 바람이 불면서 바이췌링(百雀羚) 등 중국 로컬 화장품 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바이췌링 홈페이지. ‘바이췌링 85주년 축하(百雀羚 85周年)’라는 메시지가 크게 적혀 있다.
중국 소비시장에 온라인 바람이 불면서 바이췌링(百雀羚) 등 중국 로컬 화장품 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바이췌링 홈페이지. ‘바이췌링 85주년 축하(百雀羚 85周年)’라는 메시지가 크게 적혀 있다.

중국 화장품 시장은 글로벌 브랜드가 고가품 시장을, 중국 로컬 기업이 중저가품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 화장품 사업을 펼치고 있는 한국 기업 관계자는 중국 화장품 시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

“중국 베이징(北京)에 위치한 신광천지(新光天地), 한광백화(韩光百貨) 등 백화점 1층에선 P&G(미국), 로레알(프랑스) 등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를 접할 수 있다. 반면 상하이자화(上海家化), 자란그룹(伽藍集團) 등 중국 로컬 화장품 브랜드는 1선 대도시가 아닌 3~4선 중소도시 내 종합화장품 매장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큰 구조는 아직 유지되고 있지만 이 구조에 변화를 몰고 오는 조짐들이 중국 화장품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백화점 유통망을 확보하지 못한 중국 로컬 기업이 인터넷 붐을 타고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면서 수익성을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화장품 유통업체인 ‘상하이 원윤(圓润)’의 진찌난(金基男) 총괄매니저는 “중국 시장에서 대표적인 화장품 유통채널은 백화점, 대형 종합화장품 매장이지만 최근 SNS를 기반으로 한 파워블로거(왕훙·網紅)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온라인 쇼핑이 보편화되고 있다”며 “백화점에서 화장품 구매가 줄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중국 화장품 시장은 크게 수입 브랜드와 로컬 브랜드로 나뉘어 있다. 전체 시장 규모는 약 2049억위안(34조원)에 달한다. 세계 2위다. P&G·로레알·에스티로더 등 글로벌 화장품 기업은 1980년을 전후로 중국 화장품 시장에 진출했다. 이 기업들은 고가 브랜드를 내세우며 시장을 장악했다. 백화점이 주요 판매처였다. P&G의 고급 화장품 브랜드 ‘SK2’가 대표적이다. 기술과 품질, 자본에서 열세를 보인 로컬 기업은 3~4선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종합화장품 매장 또는 마트를 공략했다. 그러나 이 지역 중국인은 소득과 소비 수준이 낮고, 화장품 품질과 기능에 대한 기대치도 높지 않았다. 때문에 화장품 판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종합화장품 매장의 경우, 매장 주인에게 이익을 챙겨줘야 하기 때문에 로컬 기업이 수익을 내기에는 어려운 구조였다.


P&G, 로레알 등 글로벌 화장품 기업은 1980년을 전후로 중국 화장품 시장에 진출했다. 이 기업들은 고가 브랜드를 내세우며 시장을 장악했다. <사진 : 블룸버그>
P&G, 로레알 등 글로벌 화장품 기업은 1980년을 전후로 중국 화장품 시장에 진출했다. 이 기업들은 고가 브랜드를 내세우며 시장을 장악했다. <사진 : 블룸버그>

“스타블로거 영향력, TV보다 커”

하지만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淘寶) 등을 통해 중국 소비시장에 온라인 바람이 불면서 로컬 화장품 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로컬 기업의 중저가 브랜드 온라인 판매 전략이 시장에 통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백화점을 중심으로 판매하던 글로벌 화장품 기업의 이익은 줄기 시작했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중국 시장 내 온라인 판매 비중은 2009년 10.1%에서 2014년 15.5%로 증가했다. 중국 미샤 최선 총경리는 “온라인 판매는 특성상 오프라인보다 저렴해야 한다”며 “글로벌 화장품 기업은 브랜드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가격을 낮추는 게 쉽지 않아 온라인몰 입점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온라인상에서 활동하며 소비자의 구매 심리를 자극하는 ‘왕훙(網紅)’이 새로운 마케팅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왕훙은 인터넷 스타를 뜻하는 ‘왕뤄훙런(網络红人)’의 줄임말로, 한국의 파워블로거와 비슷한 개념이다. 이들은 마케팅 전문가도 아니고, 특정 기업에 소속된 것도 아니지만 마케팅에 있어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다. 특히 왕훙 마케팅은 20~30대 젊은 소비자에게 효과를 보고 있다. 블로그, 유튜브 등에서 활동하는 왕훙은 초기 패션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다가 화장품 분야로 확산됐다. 왕훙의 게시글은 단순한 정보 공유를 넘어 기업 매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고, 최근에는 ‘왕훙 경제’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중국 CBN데이터는 2016년 왕훙 산업의 규모가 약 580억위안(9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글로벌 화장품 기업 에스티로더의 윌리엄 로더(William Lauder) 회장은 중국의 왕훙 경제와 관련 “왕훙 마케팅이 TV 광고보다 영향력이 더 크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화장품 왕훙으로는 중국 최대 SNS인 웨이보(微博) 팔로어 111만명을 보유한 ‘메이쉐이메이메이(美谁妹妹)’를 꼽을 수 있다. 메이쉐이메이메이는 웨이보에 다양한 화장품 사용법과 구매 시 고려 사항 등을 게시하고 있다.

왕훙 마케팅은 중국 로컬 기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브랜드도 적극 펼치고 있다. 로레알의 메이크업 브랜드인 ‘메이블린 뉴욕’은 4월 14일 상하이에서 진행한 메이크업 시연회에 브랜드 모델인 배우 안젤라 베이비(Angela Baby)와 함께 뷰티 왕훙 50명을 초청했다. 이날 메이블린 뉴욕은 모바일 개인방송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안젤라 베이비뿐만 아니라 50명의 왕훙이 자사 제품으로 메이크업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총 2시간 동안 진행된 메이블린 뉴욕 메이크업 시연회는 다양한 인터넷 동영상 채널을 통해 방송됐고, 조회수 523만회를 기록했다. 또 방송이 진행되는 2시간 동안 메이블린 뉴욕 신상 립스틱이 무려 1만60개가 판매돼 약 142만위안(2억4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배우 안젤라 베이비뿐만 아니라 50명의 왕훙이 각자 개별적으로 방송을 진행함으로써 소비자가 하나의 주제로 다채로운 콘텐츠를 즐길 수 있었던 게 주효했다. 또 메이블린 뉴욕의 제품 홍보라는 인식을 약화시키고, 소비자가 제품 정보를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 것도 효과를 낸 것으로 분석된다. 바로 왕훙 마케팅의 특징이다.

현재 중국 화장품 시장의 주요 소비층은 1980년대에 태어나 유행에 민감하고 구매력을 갖춘 바링허우(八零後)와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경제적 부를 이룬 1990년대 이후 태어나 소비에 익숙한 주링허우(九零後) 세대다.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은 20~30대인 이들이 최근 1~2년 사이 중국 로컬 브랜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로컬 브랜드의 신제품 출시 주기가 글로벌 브랜드보다 짧고, 화장품 시장 트렌드가 점점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이 첫 번째 이유다.

젊은 소비자는 유행에 민감해 새로운 제품 선호도가 높다. 그러나 로레알, 에스티로더 등 글로벌 브랜드의 경우 신제품 출시 주기가 길다. 때문에 시장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하는 제품을 출시하지 않는다. 이미 잘 팔리고 있고 브랜드 가치 또한 높다고 판단해서다. 이런 면에서 글로벌 브랜드보다 로컬 브랜드가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로컬 브랜드가 글로벌 브랜드보다 ‘친숙하다’는 것이다. 최근 떠오르는 로컬 브랜드로는 허보리스트(Herborist·佰草集), 즈란탕(自然堂), 바이췌링(百雀羚) 등이 있다. 상하이자화의 브랜드 중 하나인 허보리스트는 ‘100가지의 약초 모음’이라는 콘셉트로 중국 전통의학과 현대 생명공학을 융합해 ‘중국다운 아름다움 구현’을 모토로 하고 있다. 중국의 대표적인 로컬 브랜드로 꼽히는 바이췌링 역시 식물성 약초 화장품을 콘셉트로 내세우며 천연성분의 무자극성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즈란탕도 중국인의 식습관·문화·피부 특성에 근거한 제품 개발로 인기를 얻고 있다.


품질향상 위해 한국업체와 제휴

중국 화장품 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로컬 브랜드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한국 화장품 생산업체와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이 화장품 개발·생산을 담당하고, 중국 로컬 기업이 판매하는 ‘제조업자 개발생산(ODM)’ 형태다. 보라이야(珀萊雅)는 한국 화장품 개발·생산업체인 한국콜마와 손을 잡았고, 바이췌링은 코스맥스로부터 제품을 공급받고 있다.

물론 제조업체와 이익을 나눠야 하는 점은 기업에 손해가 될 수 있다. 화장품 가격이 1만원이라고 가정하면, 기업 자체 생산 시 원가율은 25% 정도다. 내용물이 약 5%, 부자재 10%, 기타 생산비용(공장 운영비와 인건비 등)이 10%를 차지한다. 제품 생산을 외주로 돌릴 때, 이 25% 원가에 외주 수수료를 추가한 것이 ODM이다. 보통 판매 가격의 30%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 기업과 ODM 형태의 사업은 중국 로컬 기업의 품질을 향상시켰고, 장기적으로는 기술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외형 확대는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중국 로컬 브랜드 업체가 굳이 모든 제품을 자체 생산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로컬 기업이 한국 기업과 협력해 기술력을 쌓으면서 시장점유율을 높여나가고 있다. 앞으로 ODM을 조절하며 자체 생산 비중을 늘려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스마트폰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중국 샤오미(小米)의 전략과 닮았다. 우선 저가 시장을 공략하고 시장점유율을 높인다. 동시에 ‘가격 대비 품질이 괜찮다’는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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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훙(網紅) 인터넷 스타를 뜻하는 ‘왕뤄훙런(網人)’의 줄임말로 한국의 파워블로거와 비슷한 개념이다. 블로그, 유튜브 등에서 활동하는 왕훙은 초기에 패션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다가 화장품 분야로 확산됐다.

Plus Point

중국 화장품 시장 진출을 위한 5대 팁

손성민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 연구원

① 한 제품으로 승부해야 한다. 중국 시장에 진출한 기업 대부분은 단일 상품이 인기를 끌면서 현지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제품 포트폴리오를 넓히는 것은 다음 과정이다. 하지만 유의할 점이 있다. 충성도가 극히 낮은 중국 소비자의 특성상 히트 상품을 냈다고 해서 후속 상품이 인기를 끌 가능성이 큰 것은 아니다.

② 다른 기업과 경쟁을 피할 수 있는 유통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 내에는 피부과 등 병원에만 납품하며 성장한 화장품 브랜드도 많다. 뒤늦게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기업의 경우, 탄탄한 마케팅 자금이나 홍보 수단이 확보돼 있지 않는 한 경쟁이 치열한 중국 시장에서 살아남기는 힘들다.

③ 중국 현지 반응을 미리 살폈다면 단호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제품의 성공 여부는 단번에 결정이 난다. 시장 반응이 좋지 않은 경우 고집을 부리지 않는 편이 좋다. 개발자 또는 판매자가 쉽게 빠지는 착각이 바로 ‘우리 제품은 최고인데 왜 안 팔릴까’이다. 답은 소비자가 주는 것이고 빠르게 받아들이고 변화해 나가야 한다. ‘중국 시장은 거대하니까 누군가에게는 통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도 버려야 한다.

④ 제품을 판매할 소비자를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 가장 기본이지만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다. 특히 중국은 땅이 넓고 사람도 많다. 지역별·세대별·소득별 소비자를 정하고, 제품 개발에서부터 마케팅·유통까지 고려하지 않는다면 중국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기 어렵다.

⑤ 온라인 판매와 마케팅은 선택이 아닌 필수 전략이다. 중국 인터넷 보급이 확산되고 있고, 스마트폰 사용자는 급속히 늘고 있다. 다양한 수단과 루트를 활용해 홍보한다는 계획보다는 좁고 깊은 활동을 꾸준히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 단, 지나치게 온라인 판매를 전개할 경우 현지 유통업자가 기피하는 경우가 많으니 유의해야 한다. 유통업자가 챙기는 이익이 줄기 때문이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