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 흔적이 예술품으로 남아 있는 시뇨리아 광장.
격변의 흔적이 예술품으로 남아 있는 시뇨리아 광장.

<천사의 악마> <다빈치 코드>로 유명한 댄 브라운의 2013년 베스트셀러 <인페르노>에는 ‘랭던, 단테의 지옥으로 끌려들어가다’라는 저자의 소개 문구가 쓰여 있다. 저자가 피렌체를 배경으로 이 글을 쓰기도 했지만 특히 피렌체 출신의 대문호 단테를 염두에 두고 집필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호메로스·셰익스피어·괴테와 함께 세계 제4대 시성으로 꼽히는 단테(두란테) 알리기에리(1265~1321)는 피렌체, 정확하게는 바로 옆 만토바에서 태어났다.

그는 베아트리체를 사랑했지만 짝사랑으로 끝나고 다른 여인 젬마 도나티와 별 사랑 없이 결혼한다. 신학과 철학에 몰두해서 오랜 시간 공부한 후에는 피렌체의 정치에도 입문해서 당시 최고의 지위인 통령에까지 선출됐다. 그렇지만 당파싸움에 휘말려서 국외로 추방당한 후 56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무려 14년 동안이나(대략 1307~21년) <신곡>의 집필에 몰두했다.


피렌체 대문호 단테에게서 영감 얻어

단테의〈신곡〉은 100개의 곡, 1만4233행에 이르는 대서사시0다. 성경과 더불어 세계문학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단테는〈신곡〉에서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 성금요일 전날 밤 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마침 나타난 로마의 시인 푸블리우스 베르길리우스 마로의 안내로 지옥과 연옥을 방문해 인간군상의 죄와 벌을 목격한 후 구원의 여인이자 첫사랑 베아트리체를 만나 천국에 이르게 된다는 사후세계 여행기다.

특히 단테는〈신곡〉에서 베아트리체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 즉 에로스적인 사랑을 드러냈는데 이는 곧 중세 문학에서 벗어나 르네상스 문학의 문을 활짝 열게 된 계기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단테는 마지막 중세인이자 최초의 르네상스인이고 그 후로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르네상스의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했다.

폰테 베키오는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두 번째 만난 곳으로 두오모와 함께 피렌체의 상징으로 유명하다. 이 다리를 건너면 우피치 미술관이 있고 시뇨리아 광장과 팔라조 베키오 즉 메디치가의 궁전으로 이어진다. 지금도 이 궁전은 피렌체 시의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문학작품 속에서 가장 많은 변종·모방·주석을 거느린 작품이 단테의 <신곡>이다. 댄 브라운 역시 이탈리아인이 아닌 미국인이지만 피렌체와 단테를 매우 사랑해서 단테의 <신곡> 중 인페르노를 교묘히 또는 과감하게 모방했다. 댄 브라운이 쓴 <인페르노>는 천재지만 사악한 과학자 조프리스트와 이를 막기 위해 싸우는 하버드대 기호학과 교수 랭던의 24시간에 걸친 숨막히는 추격전이다. 랭던은 조프리스트의 음모를 무너뜨리기 위해 숨 가쁘고 긴박하게 피렌체 곳곳을 뛰어다닌다. 랭던은 기호학자의 전공을 살려 라틴어 단어에 숨겨진 단서 하나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특히 이 단서가 피렌체의 대표 르네상스 작품 안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 소설을 전반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작가 댄 브라운은 실제로 유럽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했다. 그래서 바사리의 마르시아노 전투라든가 시뇨리아 광장의 다비드상, 팔라조 베키오의 500인의 방 벽화 등 마치 피렌체의 보물들을 하나하나 바로 옆에서 손으로 만지듯이 묘사한다. 결국 독자들은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대중문학 형식 안에서 미술작품을 통해 교양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댄 브라운의 매우 영리한 소설쓰기 전략에 그대로 휘말려 들어가게 된다.

또 역사적인 사실들을 이용해 독자들의 지적인 허영심 추구라는 전략에 신뢰감도 부여한다. 단테의〈신곡〉이 쓰인 시기에 흑사병이 인구를 솎아내어 르네상스가 열렸던 배후가 됐던 점과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비롯된 자신의 소설〈인페르노〉속 과학자의 인구종말론은 묘하게 시기를 건너뛰었지만 사실추구라는 점에서 닮아있다.

또 하나의 기막힌 소재로 이용된 조르조 바사리의 마르시아노 전투 벽화는 메디치 가문의 주문으로 처음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앙기아리 전투 벽화로 출발했다.

그러나 손이 느려 메디치의 화를 불러일으킨 후 바사리는 이 벽화를 부수고 새로운 작품을 완성시키라는 메디치가의 명을 받게 된다. 차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을 버릴 수 없어 고민한 바사리는 그 벽화 위에 3㎝쯤 층을 둬 새로운 벽을 세우고 자신의 그림을 남긴다. 1975년 미국의 세라치니 교수가 이 벽화의 위쪽 병사의 깃발에서 ‘케르카 트로바’ 즉 ‘구하라 찾을 것이다’라는 단어를 찾아냈다. 바사리는 어떻게든 자신의 그림 밑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미완성 그림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했던 것이다. 결국 세라치니 교수가 레이저와 자외선 카메라로 관찰한 끝에 벽화 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을 찾을  수 있었다. 더구나 구멍을 뚫어 그림에 사용된 안료성분을 분석해 보니 레오나르도가 모나리자를 그릴 때 쓰던 성분이 그대로 나왔다.


다비드(왼쪽) 와 헤라클레스 상.
다비드(왼쪽) 와 헤라클레스 상.

주인공 이동로에 역사적 유물 모두 있어

<인페르노> 속 주인공 랭던의 이동로는 피렌체 여행의 훌륭한 가이드 역할을 한다. 피티궁전에서 바사리 통로를 거쳐 우피치궁과 팔라조 베키오에 다다르게 된다. 바사리 통로는 메디치가의 국부 코지모 1세가 피티궁에서 팔라조 베키오까지 이어지는 다리인 폰테 베키오가 너무 지저분하고 위험해서 자신의 가족들만 다닐 수 있는 1㎞ 정도의 비밀통로를 다리 위에 2층 형태로 만든 것이다. 오물과 쓰레기로 뒤덮인 어물전과 피혁전을 싹 정리하고 보석상으로 만들어서 지금도 관광객의 지갑을 열게 하는 일등공신으로 변신시켰다.

팔라조 베키오와 시뇨리아 광장은 피렌체의 정치 일번지로 격변의 흔적이 예술품으로 남아있다. 우선 팔라조 베키오 입구에는 미켈란젤로가 1498년 피렌체 시민정부로부터 의뢰받아 만든 그 유명한 다비드상이 있다. 미켈란젤로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성장했지만 메디치 가문을 반격한 시민정부의 의뢰품을 만든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또 다비드상 오른쪽으로는 시민정부로부터 다시 피렌체를 탈환한 메디치 가문이 1530년 세운 헤라클레스상이 있다. 괴물 카쿠스를 때려잡는 듯한 헤라클레스상은 마치 메디치 가문의 시민정부를 향한 경고 같다.


▒ 박현주
보스턴 뉴잉글랜드 음악원 석사·전문연주자 과정, 고려대 문화콘텐츠전공 박사, 경희대·강남대 피아노 전공실기 강사,‘도시의 유혹에 빠지다’등 공연 콘텐츠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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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원제는 ‘La Divina Comedia’로 ‘comedia’ 즉 희극의 범주에 속한다. 그럼에도 희극적인 요소는 하나도 없다. 그 이유는 14세기 이탈리아 문학의 두 범주, 희극과 비극은 내용이 아닌 각각 쓰인 언어로 구분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어나 라틴어로 쓰인 귀족 상대의 고급문학을 비극, 이와 반대로 구어체를 이용해 일반대중을 상대로 한 대중문학은 희극이라 칭했다. 단테의〈신곡〉은 대중문학, 국민문학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