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 노동을 자랑하는 사회를 바꾸겠습니다. 예전의 ‘모레쓰(猛烈)사원’처럼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부정되는 일본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모레쓰 사원이란 일본 고도성장기였던 1960년대 후반 등장한 단어다. 회사를 위해 분골쇄신(粉骨碎身)하는 자세로 모든 것을 다 바쳐 일하는 샐러리맨을 가리킨다. 장시간의 야근은 기본이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금의 일본인들을 향해 ‘모든 걸 다 바쳐 오래 일하지 말자’고 했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꿈꾸는 일본을 만들기 위해 제시한 과제다.
베이비붐 세대 은퇴 이후 생산인력 부족
모레쓰 사원이란 말이 등장한 1970년대, 어떤 회사는 밤 11시 30분쯤 영업사원이 회사로 돌아오면 새벽 1시쯤 영업회의를 한 뒤 퇴근은 새벽 2시를 넘어서 했다고 한다. 집으로 퇴근하는 것은 1주일에 1회 정도였다. 1970년 일본의 연간 노동시간은 2243시간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버블이 붕괴한 뒤 일본 경제가 장기간 침체를 겪자 직장인들은 회사를 위해 희생해도 임금이 오르지 않았고 정리해고 압박에 시달리게 되자 분위기가 변했다. 긴 시간 고된 업무를 하면서 박봉을 받는 직장인들을 빗댄 ‘사축(社畜·회사와 가축의 합성어)’이라는 말도 최근 유행할 정도다.
한편으론 일본 기성세대 사이에선 장기 침체를 겪는 것이 젊은층이 과거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이 배경이라며 비판하는 시각이 있었다. 일본 소설가 이케이도 준(池井戸潤·53)은 2012년 니혼게이자이신문 대담에서 “예전엔 ‘모레쓰 사원’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정도로 진심으로 일하는 젊은층이 적은 듯하다. 자신의 (일 할 수 있는) 상한선을 정해버리고 그 범위 안에서 스마트하게 일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것이 사회 전체의 정체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한다”라고 했다.
아베 총리는 젊은층의 손을 들었다. 그가 내세운 ‘1억 총활약 사회’를 달성하기 위해선 장시간 노동 관행을 고치는 편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일본의 지난해 연간 노동시간은 1719시간으로 독일(1371시간), 프랑스(1482시간)보다 긴 수준이다.
일본 정부가 올해 6월 2일 결정한 ‘일본 1억 총활약 플랜’에서 제시한 세부 목표는 △희망 출산율 1.8 실현(2015년 1.46) △개호(노인돌봄) 이직 제로 △명목 국내총생산(GDP) 600조엔 실현 등 세 가지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일하는 방식의 개혁 방향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현 등으로 비정규직 대우 개선 △장시간 노동 시정 △고령자 근로 촉진이다.
일본 정부는 1억 총활약 플랜에서 장시간 노동에 대해 “일과 육아 등 가정생활의 양립을 어렵게 하고 출산율 저하의 원인이 되며 여성 경력 형성과 남성의 가사 참여를 막는 원인이 된다. 장시간 노동의 시정은 노동의 질을 높이고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장시간 노동을 막기 위해 일본은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 중이다. 노동기준법에 대해서도 노사간 합의하면 상한 없이 시간 외 노동을 가능하게 한 규정을 재검토한다. 주 49시간 이상 일하는 비율이 유럽은 10%쯤인데 일본은 20%라면서 유럽 수준을 목표로 한다. 또 재택근무도 추진한다. 근로자가 초과근무로 늦게 퇴근하면 다음 출근 전에 휴식을 보장하는 중소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도 만들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9월 2일 ‘일하는 방식 개혁 실현 추진실’을 발족하면서 “사람들이 인생을 풍족하게 살고 동시에 기업의 생산성도 상승할 것입니다. 일본에서 사는 것이 참으로 좋다고 (국민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일하는 방식 개혁’을 제대로 진행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8월 개각에서 ‘일하는 방식 개혁 담당 장관직’을 신설하고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1억 총활약 담당 장관에게 겸임시켰다.
출산율 높이기 위해 재택근무 장려
아베 총리의 정책을 일본 기업도 적극 도입하고 있다. 도요타자동차는 지난 6월 입사 5년차 이상 사원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2시간만 회사에 나와 일하고 나머지는 집에서 근무하는 재택근무제도를 실시했다. 본사 전체 직원 7만2000명의 35%에 해당하는 인사·경리·영업 사무직과 연구개발(R&D) 담당 기술직 등 2만5000명이 대상이다. 도요타 측은 “여성이 일하기 좋은 회사, 부모를 돌보는 사람이 일하기 좋은 회사를 만드는 게 목적”이라면서 “유능한 사원이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계속 다니는 것이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3대 대형은행 중 미쓰이스미토모은행과 미쓰비시도쿄UFJ은행은 이미 재택근무를 도입했고 미즈호은행도 연내에 재택근무를 도입할 계획이다.
고도성장기에 모레쓰 사원이 있다면, 최근엔 ‘이쿠맨 사원’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기를 육(育)’의 일본어 발음 ‘이쿠’에 남성(man)을 뜻하는 ‘맨’을 합친 단어로 자녀 육아에 적극적인 남성 직장인을 뜻한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률은 2.65%로 전년보다 0.35%포인트 상승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일본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는 이쿠맨 현상을 분석한 기사에서 “남성의 육아휴직은 여성의 사회 진출을 촉진하고 노동인구 확보로 이어져 일본 경제를 활성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쿠맨 사원이 사실 모레쓰 사원보다 더 가치가 있는 노동력일지도 모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