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크스바겐그룹은 올 상반기까지 총 511만6819대의 차량을 판매했다. 2015년 상반기 503만9288대보다 1.5% 성장했다. 2015년 9월 폴크스바겐 ‘디젤게이트(디젤 차량의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사건)’가 터졌지만 판매는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라이벌 도요타(499만2000대)와의 경쟁에서도 승리했다.
폴크스바겐이 위기관리를 잘해서일까. 그렇지 않다. 폴크스바겐은 위기 발생 초기 문제를 숨기는 데 급급했고 조직 내부 갈등도 겪었다. 2016년 10월 현재 디젤게이트가 발생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유럽·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실적도 악화됐다. 폴크스바겐의 2016년 상반기 매출은 1079억3500만유로(약 133조1550억원)로 전년 대비 0.8% 떨어졌고 순이익은 35억7900만유로로 36.8% 급감했다. 위기관리가 한마디로 ‘꽝’이었다. 양천호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기업리스크자문본부 이사는 “위기대응 초기 가장 중요한 사항은 위기 수준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위기 확산 방지, 초기 피해 최소화인데, 폴크스바겐은 사실을 은폐하며 내부에서조차 위기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이것이 위기 확산과 내부 갈등을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현재 폴크스바겐의 위기대응을 봐도 제재가 강력한 미국과 그와 반대인 한국의 경우 상이한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며 “미래가 아닌 눈앞의 손익에 따른 근시안적인 비즈니스 판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중국에서 6.9% 증가한 186만대 판매
그럼에도 폴크스바겐의 판매가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 환경적인 요인이 보다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폴크스바겐의 주요 시장은 유럽·중국·미주 지역이다. 이 중 가장 큰 시장은 유럽과 중국인데, 이 두 시장에서 디젤게이트로 인한 판매 감소가 나타나지 않았다.
폴크스바겐은 2016년 상반기 유럽 시장에서 195만4069대(승용차 기준)를 판매했다. 전년 대비 3% 증가했다. 유럽은 디젤 차량이 강세를 보이는 시장이다. 승용차의 절반가량이 디젤이다. 이 시장은 폴크스바겐, BMW 등 독일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브랜드가 뒤늦게 유럽 디젤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아직은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런 시장 구조는 디젤게이트가 터졌지만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미국 시장에선 디젤게이트 이후 폴크스바겐의 디젤 차량 판매 정지 조치가 떨어졌지만 유럽은 그러지 않았다. 여전히 폴크스바겐이 디젤 차량을 판매하고 있고 시장 역시 디젤 차량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직은 디젤을 대체할 차량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하이브리드,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 시장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디젤 차량을 ‘대체’할 수준이 아닌 ‘보완’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다.
폴크스바겐은 중국 시장에서도 판매가 늘었다. 폴크스바겐은 2016년 상반기 중국에서 185만9353대를 판매했다. 지난해 상반기 173만9903대보다 6.9% 증가했다. 폴크스바겐의 중국 내 주력 차종이 디젤이 아닌 가솔린 모델이었기에 가능했다. 과거 폴크스바겐이 중국에서 디젤 차량을 판매하려고 했지만, 중국 정부가 베이징 등 대도시의 대기오염 상태가 심각하고 생산되는 디젤(경유)의 질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판매를 허용하지 않았다. 당시 폴크스바겐의 성장에는 마이너스 요인이었지만 오히려 득(得)이 된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디젤 차량의 비중은 3%를 넘지 않는다.
중국 내 폴크스바겐의 높은 브랜드 인지도도 디젤게이트로 인한 반감을 완화했다. 폴크스바겐은 1985년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 중 중국에 가장 먼저 진출했다. 현재는 중국 수입차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중국 소비자에게 혁신적인 차량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런 이유로 중국 시장에서 디젤게이트는 소비자가 폴크스바겐 차량을 구매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가 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중국 로컬 자동차 브랜드가 이를 따라잡을 만한 기술력을 갖고 있지 못해 배출가스 시험 과정에서 부정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시장 현실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미국 시장에선 디젤 차량 판매 정지
미주 시장에선 큰 타격을 받았다. 폴크스바겐은 2016년 상반기 미주 지역에서 63만2219대를 판매했다. 지난해 상반기 71만660대보다 무려 11% 감소했다. 비중이 가장 큰 미국 시장에서 7.2% 감소(29만4492대→27만3843대)했다. 디젤게이트가 터진 후 폴크스바겐의 디젤 차량이 미국에서 판매 정지 조치를 당했기 때문이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2015년 9월 18일 “폴크스바겐의 디젤 차량에서 배출가스 저감 소프트웨어 장치를 발견했다”고 밝히며 해당 차종의 판매를 전면 중단시켰다.
그러나 폴크스바겐의 미국 물량은 그리 많지 않다. 2015년 상반기 전체 판매대비 6.2%에 불과하다. 미국 소비자는 전통적으로 가솔린 차량을 선호한다.
문제는 미국 디젤 시장을 미국 자동차 브랜드에 뺏길 수 있다는 점이다. 폴크스바겐이 미국 디젤 승용차 시장을 만들었는데, 디젤게이트로 그 지위가 흔들리면서 미국 브랜드가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GM은 2015년 쉐보레 중형 픽업트럭(콜로라도)과 CUV(이퀴녹스)의 디젤 모델을 추가했고, 2017년에는 준중형 세단인 크루즈 디젤을 판매할 계획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폴크스바겐이 위기관리는 제대로 못했지만 시장 환경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해 판매가 늘었다”며 “유럽에선 디젤 차량을 대체할 수 없는 시장 구조로, 중국에선 높은 브랜드 인지도로 디젤게이트 위기를 이겨내고 있다”고 말했다.
폴크스바겐·도요타·GM 단기 실적 매달리다 위기
폴크스바겐의 디젤게이트, 도요타 리콜사태(2010년), GM 파산(2009년) 등 글로벌 자동차 3사의 위기를 보면 공통점이 존재한다. 미래 성장이 아닌 단기 실적 위주의 경영을 펼쳤다는 점이다. 도요타 리콜사태는 페달 설계를 잘못해서 차체 바닥 매트에 페달이 눌리는 것이 원인으로 조사됐다. 품질관리를 제대로 못한 것이다. 도요타는 품질관리로 성장한 기업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회사가 급성장하면서 품질관리 시스템이 무너졌다. 단기 실적만을 바라본 양적 성장 위주의 경영 때문이었다. 조직이 비대해지면 발생하는 현상이다.
GM의 위기는 차량 포트폴리오에서 시작됐다. GM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저유가가 지속되자 수익성이 높은 픽업트럭, SUV 판매에 집중했다. 시장이 승용차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읽었지만 무시했다. 2000년대 고유가 시대가 왔고 픽업트럭 판매는 줄고 소비자는 승용차를 원했지만 GM이 대응하기엔 역부족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고 결국 GM은 전략적 파산을 선택했다.
이번 폴크스바겐의 디젤게이트는 배출가스를 조작한 사기 문제지만 GM, 도요타와 마찬가지로 단기·양적 성장에 매달렸다는 것은 동일하다. 폴크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차량은 대부분 배기량이 2000cc 미만이다. 소형차를 판매하면 회사가 가져가는 마진이 적은데, 여기에 중대형 고급 차량에 탑재하는 배출가스 시스템을 달면 이익률은 더 떨어진다. 그래서 배출가스를 조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