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우데자네이루의 대표 음악 삼바와 보사노바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삼바는 아프리카 킴분두족의 언어인 셈바(Semba)에서 기원했고 서로 배꼽을 부딪치며 추던 움비가다(Umbigada)라는 춤을 지칭한다.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에서 셈바가 확산된 계기 중 하나는 1896년 카누두스의 난이다. 종교집단을 광신도로 매도해 2만여명의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다. 이 난에 참여했던 공화당 군인들이 후에 리우로 돌아와 흑인들과 함께 셈바를 즐기며 퍼뜨렸다고 한다.
셈바가 대중에게 인정받으며 삼바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17년 에르네스투 두스 산투스가 작곡한 펠루 텔레포네(Pelo Telefone)가 인기를 얻으면서부터다. 또 1928년 삼바학교(Escola de Samba)가 탄생하면서 삼바는 리우 카니발의 공식 음악이 됐다.
삼바에서 좀 더 음악적으로 발전된 ‘삼바 칸상’은 종래의 삼바에 포르투갈 궁정의 유산인 서정가곡 모디냐의 요소가 더해진 것으로 리듬이 빠르고 시끄럽던 삼바를 가요처럼 감상곡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빈민가의 삼바 지고 고상한 보사노바 부상
영화 ‘흑인 오르페’에 나온 명곡 ‘카니발의 아침’이라든가 ‘행복(A felicidade)’ 같이 애절함을 호소하는 가곡이 많아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삼바곡의 가사는 다분히 정치적이어서 제르툴리우 바르가스 정권 때처럼 종종 조작돼 불렸는데 이와 대조적으로 삼바 칸상의 가사는 매우 시적이다.
시인이자 외교관이었던 비니시우스 지 모라에스가 쓴 ‘행복’은 축제가 끝난 후의 상실감과 공허함, 쓰디쓴 비애와 회한을 표현해 삼바 칸상을 철학적이고 예술적인 음악으로 완성시켰다. 한편 삼바의 변형과 아류들은 수없이 많은데 1920~50년의 삼바전성시대에는 피싱기냐 (Pixinguinha), 아리 바로수(Ary Barroso) 같은 뛰어난 삼바 작곡가들이 많았다. 특히 아리 바로수가 1939년에 작곡한 ‘브라질의 수채화(Aquarela do Brasil)’는 미국에서 ‘브라질(Brazil)’이란 제목으로 크게 히트해 지금도 브라질을 대표하는 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브라질 음악을 논할 때 보사노바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새로운 경향, 새로운 감각을 지칭하는 포르투갈어인 보사노바는 브라질 리우의 젊은 음악가들 사이에서 일어난 새로운 음악운동으로, 미국의 쿨재즈가 가미돼 재즈 삼바로도 불린다. 1950~60년대의 브라질은 문민정부가 등장했고 산업화가 가속화돼 경제가 안정된 시기였다. 이때 라디오를 통해 재즈를 듣던 브라질의 젊은이들은 당시 주류였던 삼바에 이 재즈 스타일을 가미하고 싶어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58년에는 브라질이 월드컵축구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으며, 민중의 표현수단으로서의 영화를 지향하는 ‘시네마 노부’ 운동이 펼쳐지는 등 시대적·예술적 낙관주의가 퍼져나가던 시기였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과격하거나 올드한 삼바를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름다운 시절이 오자 중산층들은 시끄러운 빈민가의 삼바를 듣기 부담스러워했고 삼바는 삼바 칸상을 거쳐 보사노바에 이르면서 부자들이 듣는 고상하고 조용한 음악이 됐다.
타악기 중심의 반복적인 리듬의 삼바와 달리 보사노바의 악기를 담당했던 기타는 화성을 풍부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리우에서 쓰는 속어로 ‘보사’는 ‘특수한 능력’ ‘기민함’을 의미하고 박자가 빠르고 경쾌하다는 뜻을 지니기도 하는데 기타반주에서는 당김음을 지칭한다. 이 당김음이 보사노바에서 독특한 음색을 자아내는 중추 역할을 한다. 당김음은 박자를 당겨 악센트의 위치를 바꾸기 때문에 보통은 긴장감을 주기 마련인데 보사노바에서는 긴장감뿐 아니라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까지 해 묘한 매력을 더한다.
기타리스트 찰리 버드와 스탄 게츠가 낸 앨범 ‘재즈 삼바’를 들어보면 기타가 담당한 미묘하게 떨리는 보사노바의 리듬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 예기치 않은 화음 즉, 멜로디와 반주 사이의 미세한 부조화에서 나오는 리듬을 ‘바티다’라고 하는데 이 바티다로 하여금 박자와 박자 사이에 동동 매달려 떠다니는 음악을 느낄 수 있다. 매우 세련되고 몽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보사노바의 화성과 선율, 리듬의 상호 조화 그리고 가사와 음악이 일치되는 특성은 지식인층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공항에도 보사노바 음악가 이름 붙여
리우에서 보사노바는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빙(톰 조빙이라고 불림)의 음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톰 조빙은 1927년 리우데자네이루 치주카에서 태어나 이파네마 해변가에서 살았고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리우 사람들의 톰 조빙에 대한 애정은 각별해서 공항의 정식 명칭도 리우데자네이루-갈레앙-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빙 국제공항으로 붙였을 정도다. 또 하나의 보사노바 거장 시인 비니시우스도 영웅으로 받아들여져 2016년 하계올림픽의 마스코트는 이 둘의 이름을 붙인 ‘톰과 비니시우스’였다. 올림픽 개막식에서 모델 지젤 번천의 등장으로 환호성을 불러일으킨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Girl from Ipanema)’ 역시 이 둘의 콤비로 만들어진 불후의 명곡이다. 1964년 앨범 발표 후 비틀스의 ‘예스터데이(yesterday)’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녹음됐다.
약간 끈적거리기도 하면서 나른한 느낌의 보사노바에는 브라질 사람들의 낙천적인 삶의 모습이 반영돼 있는 것 같다. 만약 브라질이 미국처럼 강대국이 됐다면 우리는 지금 재즈 대신 보사노바를 듣고 있을지 모른다.
▒ 박현주
보스턴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석사·전문연주자 과정, 고려대 문화콘텐츠전공 박사, 경희대·강남대 피아노 전공실기 강사, ‘도시의 유혹에 빠지다’ 등 공연 콘텐츠 제작
삼바 가사는 브라질 축소판
삼바학교는 삼바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카니발’의 의상 및 가장행렬을 준비하는 지역사회단체다. 무용수들이 우연히 학교 옆 공터에서 가장행렬 연습을 하다가 학교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고 한다. 이 삼바학교들이 주축이 돼 시예산을 받아 체계화시켜 ‘리우 카니발’이라는 축제로 성장시켰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약 50만명의 관광객이 모인다.
매년 수백개의 삼바학교 중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14개의 학교만이 카니발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데 이들 간 경쟁도 굉장하다. 각 삼바학교에서는 카니발을 앞두고 안무법·조형미술·민속학을 전공한 카니발 전문가들이 모여 그 해의 카니발 주제를 정하고 음악·의상을 연구한다.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국내의 문제를 주제로 다루고 있어 해마다 새로운 이슈를 가지고 만든 삼바곡의 가사를 살펴보면 변화하는 브라질 사회의 축도(縮圖)를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브라질 음악처럼 삼바도 춤을 추기 위한 음악이라 2/4 박자 구성에 1, 3박 대신 2, 4박에 악센트를 주고 두 마디가 하나의 패턴을 이루고 있다. 물론 카니발 때 추는 격렬한 ‘모호(samba di morro)’도 있지만 잘 알려진 ‘브라질’ ‘티코티코’처럼 앞뒤로 몸을 흔들며 스텝을 바로 밟게 되는 소박하고 리드미컬한 삼바곡도 있다.
2017년 리우 카니발은 2월 24일부터 28일까지 개최될 예정이며 공식 사이트에서 2017년의 삼바곡을 미리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