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딘딘 엄카 주인과 다정다감 일상 인증샷’

이해하기 힘든 이 문장은 ‘딘딘이라는 가수가 엄마와 다정다감하게 인증샷 사진을 찍었다’는 뜻이다. 핵심 단어는 ‘엄카’, 요즘 젊은이들이 엄마카드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엄카 주인은 엄마를 말한다. 딘딘이라는 가수가 TV프로그램에 나와 “군 제대 직후 엄카를 얼마 썼다”고 말하는 바람에 ‘엄카 연예인’으로 유명해졌다.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법카’ 인기가 대단하다. ‘법카의 위엄’이라는 말도 있다. 법카는 법인카드의 줄임말이다. ‘힘찬 발걸음의 이유는 법카. 월급은 잘 안 주셔도 법카는 잘 주시는 사장님, 감사합니다.’ ‘법카의 힘은 위대하다, 한우를 먹다니.’ ‘쌈정식을 빛나게 하는 법카, 법카를 손에 쥐고 밝은 광명을 뿌리며 앞장서시는 분은 뒷모습에서도 빛이 납니다.’ SNS에 넘쳐나는 법카로 풀어낸 직장 생활 뒷얘기다.

신용카드는 고객 신용도를 따져 외상거래가 가능하도록 플라스틱 카드 형태로 발급한 결제 시스템이다. 현대 신용사회의 결제 수단 중 하나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신용카드가 결제수단 그 이상의 의미를 담게 된 게 흥미롭다. 일종의 ‘신용카드의 사회학’이다.

신용카드가 범용화된 건 전 세계적으로 60여년밖에 안 된다. 신용카드라는 아이디어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건 1888년 출간된 미국 작가 에드워드 벨라미의 유토피아 소설 <뒤돌아보면>에서였다. 초기 형태의 카드를 거쳐 1950년 카드회사 다이너스클럽이 처음 설립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78년 외환은행에서 비자카드 업무를 개시한 것을 시작으로, 1982년 5개 은행이 비씨카드의 전신인 은행신용카드협회를 설립하면서 본격화됐다.

늦게 도입됐지만 한국에서는 최대 결제수단이다. 우리나라의 신용카드 발급매수는 6월 말 현재 9404만장. 신용카드 결제 비중(지급건수 기준 39.7%)이 현금 결제 비중(36%)보다 더 높다. 1000원짜리 껌값까지 신용카드로 긋는다. 전체 신용카드 결제 건수 중 3분의 1 이상이 1만원 미만 소액이다. 신용카드가 이토록 빨리 정착된 건 2003년 카드대란까지 겪을 정도로 카드회사들이 적극 영업해서 고객을 늘린데다, 현금 거래로 인한 막대한 탈세(脫稅)를 줄이려고 정부가 신용카드 세액공제 등을 도입해서 카드 결제를 적극 유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나라가 다 그런 건 아니다. 이탈리아는 전체 지급건수의 82.7%가 현금 거래다. 신용카드 비중이 2.5%밖에 안 된다. 노르웨이의 경우, 직불카드 비중이 51.8%이고 현금(18.4%), 신용카드(7.4%)순이다. 신용카드 거래 비용이 직불카드보다 높기 때문에 직불카드를 권장하는 나라가 더 많다.

반면 한국서 유독 사랑받는 신용카드는 사회 행태와 맞물려 개카(개인카드), 법카(법인카드)에 이어 엄카(엄마카드)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현재 발급된 법인카드는 800만장도 넘는다. 신설 법인수도 많고 공과금도 카드 결제가 가능해지면서 작년에 무려 120만장 넘게 늘었다. 지난해 법인카드 이용액 146조원 가운데 눈먼 돈 비슷하게 펑펑 쓰인 돈은 대략 40조원쯤 된다. 음식점에서 쓴 돈이 27조원, 선물비가 10조원, 유흥업소와 골프장에서 결제한 금액이 각각 2조원 넘는다. 밥 인심이 유독 후했던 것도 용처가 관대했던 법인카드 덕분이었다. 하지만 9·28 김영란법으로 법인카드 과소비는 철퇴를 맞을 것 같다.

‘법카의 위엄’은 한단계 내려갔지만, 대신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법카족 위에 엄카족’이란 자조 섞인 말이 나온다. 부모 카드로 생활비 쓰면서 자기 월급에는 손 안 대는 신종 ‘금수저’ 캥거루족이다. 한국 사회의 씁쓸한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