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조지 스미스 패튼(George Smith Patton) 장군이 1943년 북아프리카 전선에 있을 때의 일이다. 패튼 휘하의 제1보병사단이 유달리 공습을 많이 받았다. 고심하던 사단장 테리 엘런 장군은 야전 텐트 주변에 간이 방공호를 파게 했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병사들이 신속하게 자기 방공호로 대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소식을 들은 패튼이 1사단을 방문했다. 천연덕스럽게 사단을 시찰한 패튼은 사단장에게 “참 자네 방공호는 어느 건가?”라고 물었다. 사단장이 방공호로 안내하자 패튼은 그 자리에서 바지 단추를 풀더니 방공호에 보란 듯이 소변을 눴다.
패튼의 행동은 리더십 사례로는 사용할 수 없는 심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패튼이 추구한 기갑전(機甲戰)은 적의 허를 찌르는 신속한 진격으로 돌파구를 만들어, 적을 정신없이 몰아세우는 것이다. 이런 싸움을 하려면 속도가 생명이다. 적보다 빠르게 판단하고 빨리 움직이는 관건은 현장 지휘관과 병사 한 사람, 한 사람의 판단력과 순발력이 좌우한다. 게다가 상대는 이런 전술을 미군보다 먼저 채택하고 훈련한 독일군이었다. 패튼은 전격전의 선배들을 대상으로 전격전을 시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승부의 추는 전투 현장에서 발휘되는 부대원들의 창의적 판단력이 좌우한다.
방공호 개인 할당제를 싫어한 이유

패튼은 부하들을 향해 이런 말을 남겼다. “병사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지 말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가르쳐라.” 이 말은 방법을 지시하지 말고 목표를 지시하라는 독일의 임무형 전술의 구호와 똑같다.
다시 1사단 방공호 이야기로 돌아가면, 개개인의 대피호를 지정해 두면 병사들은 상황 판단을 포기한 채 기계적으로 자기 방공호로 달려가려고만 할 것이다. 폭음 속에서 달리고 엎드리고, 폭탄과 적기의 방향을 보고, 자신이 달려가야 할 순간과 방향을 결정하는 경험은 포기하는 것이다.
게다가 개인호 시스템은 알고 보면 효율적이지도 않다. 병사들이 제각기 다른 장소에 흩어져 있을 때 적기가 공격해 오면 자기 방공호로 달려가는 것은 더 심한 혼란과 불합리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엉키고 부딪치는 상황에서 방공호로 신속하게 뛰어드는 경험을 하는 것이 더 낫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앞으로 닥칠 수많은 상황에서 병사들의 생존율과 전장의 상황을 판단하는 용기와 능력을 신장시켜 줄 것이다.
실제로 패튼의 화려한 진격은 현장에서 정확하고 대담한 결정을 내릴 줄 아는 일선 지휘관과 병사들의 능력 덕분이었다. 벌지 전투 당시 패튼 부대는 바스토뉴에서 독일군에 포위돼 있는 101 공수사단을 구출하는 임무를 맡았다. 에이브럼즈 중령이 지휘하는 37전차대대가 바스토뉴 남방 6.5㎞ 지점에 도달했다. 거의 다 온 것 같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문제였다. 독일군의 강력한 포위망의 외벽에 도달한 것이다. 독일군은 미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시브레 마을이라는 곳에 집결해서 강력한 방어벽을 구축했다.
에이브럼즈 중령은 언덕에서 시브레 마을을 내려다봤다. 노르망디 상륙 후 미군이 독일군 방어선을 뚫고 16㎞를 진격하는 데 두 달이 걸렸다는 기억이 살아났을 것이다.
그는 시브레를 우회해서 가는 것보다 방어가 취약한 아스노와 마을을 통과해서 그냥 바스토뉴로 직진하기로 했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시도였다. 시브레 마을의 독일군이 마을에서 나와 37대대의 측면을 공격하면 미군으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논리적으로는 해서는 안 되는 작전이었지만, 패튼 부대는 이탈리아에서 지금까지 이런 대담한 작전을 몇 번이고 해왔다. 성공과 실패의 관건은 시브레 마을의 독일군이 패튼 부대의 우회돌파를 지켜만 볼 것이냐, 측면을 치고 나올 것이냐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데에 달려 있다. 그리고 만약 37대대가 아스노와 마을에서 저지된다면 독일군은 100% 시브레를 치고 나와 37대대의 측면을 강타할 것이다.
목표만 부여, 방법은 직접 찾도록
에이브럼즈는 패튼에게 무전으로 작전 변경을 요청했다. 측면공격을 당할 위험이 있다는 사실도 보고했다. 패튼의 대답은 간명했다. “즉시 승인함.” 패튼의 신조는 전술은 유능한 대대장의 소관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에이브럼즈는 탁월한 대대장이었다. 현재 미국의 주력전차인 M1A1 에이브럼즈 전차는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선봉 소대가 아스노와 마을로 진입했다. 아스노와에도 독일군 소부대가 방어하고 있었지만, 패튼의 보병들도 이런 돌파 작전에 숙달돼 있었다. 전차를 타고 시가로 들어간 보병들은 시내로 진입하자 즉시 전차에서 뛰어내려 도로 양쪽의 집들을 능숙하게 수색하고 제압했다. 한 일병은 홀로 전차보다 앞으로 내달려 매복해 있는 독일군의 88㎜ 포를 찾아냈다. 독일군 포병들이 온통 탱크에만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것을 눈치챈 그는 소총 한 자루를 들고 혼자 달려들어 포병 전원을 포로로 잡았다.
오후 5시에 소대의 전차장이 101공수부대원과 만나 악수를 했다. 에이브럼즈는 시브레 마을의 독일군이 움직이기도 전에 돌파에 성공했다.
37대대의 성공은 창의적 전술의 모범 사례다. 창의적 전술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거나 상상을 초월하는 기발한 묘책을 고안하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현장의 상황과 조직의 능력에 맞춰 가장 적절한 전술을 적용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을 배양하는 데 최대의 적은 경직된 조직, 매뉴얼에 의존하는 조직문화다. 직원들이 상황에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규정과 관례에 의지하는 습관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은 처음 겪는 상황, 난관을 만나면 적절한 방법을 모색하기보다는 자신이 아는 방법에 의지하려는 본성이 있다. 이것은 수많은 전쟁과 경영학적 실험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패튼의 방식, 방공호를 찾아가는 경험은 이런 순간에 병사들이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반면 경직된 조직문화는 관행과 관습의 도피처를 제공한다.
▒ 임용한
연세대 사학과 석사, 경희대 대학원 사학 박사, 경희대·공군사관학교 등에서 한국사, 군제사 강사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