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4일 일본 도쿄노동국과 미타(三田) 노동기준감독서 감독관 등이 신입사원이 자살한 덴쓰를 조사하기 위해 본사에 들어가고 있다. 덴쓰에서 발생한 신입사원 자살 사건으로 일본에서 블랙 기업과 화이트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10월 14일 일본 도쿄노동국과 미타(三田) 노동기준감독서 감독관 등이 신입사원이 자살한 덴쓰를 조사하기 위해 본사에 들어가고 있다. 덴쓰에서 발생한 신입사원 자살 사건으로 일본에서 블랙 기업과 화이트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일본에서 직장 근무 방식을 바꾸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여성들의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직장인들이 일찍 퇴근해 가정 생활을 즐기자고 주장하면서 이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게다가 최근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쓰(電通)에서 신입사원이 초과근무에 시달리다 자살한 사건이 발생해 사회적 논의가 더욱 달아오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번 자살사건에 매우 강경한 입장이다. 시오자키 야스히사(塩崎恭久) 후생노동성 장관은 “과거에도 장시간 노동에 따른 자살자가 있었던 덴쓰에서 다시 (사원이) 자살로 내몰린 사건이 발생했다. 극히 유감인 케이스”라고 비판했다.

시오자키 장관의 강경한 입장은 아베 내각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일하는 방식 개혁’과 맞물려 있다. 일하는 방식 개혁은 일본의 고질병인 직장 내 장시간 노동 문제를 시정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차이를 축소하는 정책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10월 19일 대기업 근무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총리관저에서 만나 덴쓰 신입사원 자살을 언급하며 “슬픈 일이다.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하는 방식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긴 시간 야근시키고 수당 안 주면 ‘블랙 기업’

당국은 덴쓰 본사는 물론 지사와 자회사를 대상으로도 노동기준법 위반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 도쿄 노동국은 장시간 노동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과중노동박멸 특별대책반(가토쿠)’을 투입했다. NHK도 “가토쿠는 조사나 위반 입증이 어려운 대기업을 겨냥해 조사하는 게 특징으로 ‘블랙 기업 대책 비장의 카드’로 기대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블랙 기업의 특징은 무엇일까.

블랙 기업은 일본에서 ‘노동자에게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불합리한 노동을 강요하는 기업’을 뜻하지만 사회적으로 합의된 기준은 없다. 일본 후생노동성도 ‘블랙 기업’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있지는 않다. 다만 일반적인 특징으로 △노동자에 대해 극단적인 장시간 노동이나 반강제적인 작업량 부과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잔업(야근)이나 파워하라(power harrassment·직장 내 권력형 폭력)가 횡행하는 등 기업 전체적으로 내부통제 의식이 낮음 △노동자에 대해 지나친 차별 등을 들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신입사원이 입사 3년 이내에 30% 퇴사 △과로사·과로자살 사례 발생 등을 블랙 기업의 특징으로 들기도 한다.

이번에 자살 사건이 일어난 덴쓰의 사례를 보면 블랙 기업의 특징에 해당하는 점이 많다. 지난해 12월 25일 도쿄 사택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다카하시 마쓰리(高橋まつり·사망 당시 24세)씨는 도쿄대를 졸업하고 지난해 덴쓰에 입사했다. 작년 10월 9일부터 11월 7일까지 105시간의 초과근무를 했고, 10월 26일 오전 6시 5분부터 28일 새벽 12시 42분까지 거의 53시간 연속으로 사무실에 있었다. 현재 일본 근로기준법은 ‘1개월에 45시간’을 초과근무 상한으로 명시하고 있다.

과로를 넘어 ‘파워하라’도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다카하시씨는 SNS에 “휴일을 반납하고 만든 자료가 형편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미 몸도 마음도 갈기갈기 찢어졌다.” 등의 글을 남겼고,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

후생노동성은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2015년부터 장시간 노동 억제 대책으로 블랙 기업의 이름을 공개하는 등 대책을 세워왔다. 지난 5월엔 지바(千葉)시에 있는 재고정리 업무 대행사 ‘에이지스’가 블랙 기업이라고 지목했다. 지바노동국에 따르면 에이지스의 4개 사업장 중 한 곳에선 1개월에 197시간의 시간외·휴일 근무가 있었고, 다른 사업장도 118~182시간 초과근무가 실시됐다. 그 밖에 일본에서는 이자카야 체인 ‘와타미’, 규동 체인 ‘스키야’ 등이 블랙 기업이라고 이름이 오르내린다.

지난 2008년 와타미그룹 자회사 와타미푸드서비스에 입사한 모리 미나(森美菜·당시 26세)씨는 와타미 요코스카(橫須賀) 시내점에서 일하다 입사 두 달 만에서 자살했다. 모리씨는 월 141시간의 시간외 근무를 한 사실이 인정돼 2012년 2월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다. 모리씨는 점포가 문 열기 2시간 전인 오후 3시에 출근해야 했다. 퇴근은 다음 날 오전 3시 30분이었지만 택시비가 지급되지 않아 전철 첫차 시간까지 점포에서 대기했다. 주말엔 ‘자기계발’ 연수에 참석해 창업자 와타나베 미키(渡邊美樹·56) 자민당 참의원의 저서를 읽고 암기해야 했다. 입사 후 두 달간 하루를 완전히 쉰 날은 4일뿐이었다.


3년 내 떠나는 직원 적으면 ‘화이트 기업’

일본에선 블랙 기업과 반대 의미를 가진 ‘화이트기업’이라는 단어도 쓰인다. △연봉 수준이 높고 △직원의 복리후생이 좋으며 △근속 연수가 길고 △이직률이 낮은, 일하기 좋은 기업을 가리킨다. 한 취업정보 제공 사이트에선 화이트 기업에 대해 “여성의 경우 출산 전후 휴가나 육아 휴가를 사용하기 쉽고, 복귀 후 단축근무를 해도 보람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회사도 화이트 기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경제주간지 <도요게이자이>는 올해 3월 화이트 기업 리스트를 발표했다. 2012년 4월에 입사한 신입사원 중 2015년 4월까지 회사를 그만둔 직원의 비율이 적으면 화이트 기업으로 분류했다. 이 리스트에 따르면 조사 대상 965개사 중 2012년 신입사원이 3년간 아무도 퇴사하지 않은 회사는 120개사였다. 재봉틀로 유명한 브라더공업은 2012년 입사자 64명 중 전원이 3년간 계속 근무했다.

채용 규모가 큰 도요타자동차도 화이트 기업으로 뽑혔다. 도요타엔 2012년 1409명이 입사해 3년간 37명만 퇴사하고 97.4%는 그대로 근무했다. 대형 금융회사인 미쓰비시UFJ파이낸셜 그룹 신입사원은 3년 만에 8%가 회사를 그만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