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데자네이루의 국민 음악가 빌라 로보스는 브라질 민속음악의 특색과 바흐의 클래식함을 융합한 ‘브라질풍의 바흐’ 시리즈를 선보였다.
리우데자네이루의 국민 음악가 빌라 로보스는 브라질 민속음악의 특색과 바흐의 클래식함을 융합한 ‘브라질풍의 바흐’ 시리즈를 선보였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특정한 나라 혹은 도시의 문화에 깊이 빠지게 되는 것은 아주 사소한 일과 우연한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도시의 유혹’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편을 준비하면서 브라질 음악, 음악가를 떠올려 보니 그래도 낯익고 익숙한 클래식 음악가 빌라 로보스(Heitor Villa Lobos)의 음악이 제일 먼저였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아름답지만 신비스러운 음색, 트로피칼리즘(Tropicalism)이라는 단어에서 풍겨져 나오는 열대우림 속 풍광과 한가롭고 나태한 오후를 지속시켜주는 단맛 가득한 시원함, 성적인 자유스러움이 섞인 상상들이 한가득 쏟아진다. ‘춤추는 바흐’만 빼고 말이다. 누군가 빌라 로보스의 대표작 브라질풍의 바흐(Bachianas brasileiras) 시리즈와 쇼로스(choros) 시리즈를 ‘춤추는 바흐’라고 해석해 놓았는데 필자는 이 해석에 적극 동의한다. ‘춤추는’으로 표현된 브라질의 민속음악의 특색과 ‘바흐’의 클래식함이 융합된 곡들이기 때문이다.


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토속음악 연구

리우데자네이루 출생의 음악가 빌라 로보스는 아마추어 음악가인 아버지로부터 음악을 배우고 첼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정규과정으로 클래식 음악교육을 받았다. 브라질 토속음악에 많은 애착을 보여 과학 탐험대를 따라 브라질 벽지에 들어가 토속민의 풍속·민요 등을 연구했다. 그리고 작품에 민족적 특성, 강한 향토적 개성을 투영시켰다. 특히 ‘브라질풍의 바흐’ 시리즈는 여타 작곡가와는 다른, 새로운 방향에서 본 민속음악의 사랑이며 변화된 패러다임의 결실이다. 여러 선율을 동시에 발전시켜 복잡함을 화음으로 완성시켜 나가는 바흐의 푸가에 다양한 브라질의 민족성을 적용시켰다.

이 시리즈는 총 9곡으로 돼 있는데 5번 아리아(Aria)가 가장 유명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피아노 원곡의 4번을 가장 좋아한다. 듣고 있으면 미처 다 가보지 못한 브라질 대륙의 광활함과 씨줄과 날줄로 잘 짜인 푸가풍의 선율, 원색적이고 원초적인 화려함과 야만성이 느껴진다. 바흐풍의 브라질이 아닌 브라질 진짜 음악을 바흐를 빌려 완성시켜 나가는 전개에 매번 압도당한다.

브라질의 진짜 음악은 무엇일까. 삼바는 재미있고 격동적이지만 너무 시끄럽고, 김현철의 ‘춘천가는 열차’ 조덕배의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같은 살랑거리는 보사노바는 너무 얌전하고 정숙하다. 듣는 이에 따라서는 흑인 노예가 처음 발을 디뎠던 곳 ‘살바도르 바이아’ 즉, 브라질 북동부의 검은 색깔 나는 타악 음악 ‘아세’나 ‘포호’가 진짜라고 할 수도 있다. 인정한다. 이미 상업화되고 많이 다듬어진 삼바나 리우의 도시화된 음악 보사노바보다는 척박한 바이아 주의 원시적인 울림을 원조라고 느낀다면. 하지만 현재 브라질의 인구 비중은 백인(약 47%)이 가장 많고, 여전히 이들이 브라질을 이끌어가고 있다. 백인들의 문화적 뿌리는 유럽이다. 따라서 아프리카 원류의 혼혈문화가 대중문화의 근간이라 하더라도 브라질을 단지 아프리카 문화의 영향을 받은 혼혈국가로만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브라질 백인문화 담긴 쇼로 음악

브라질 아니 남미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존경받는 음악가인 빌라 로보스 역시 스페인 이민자의 아들, 즉 백인이었다. 브라질풍의 바흐 못지않게 그가 작곡한 14개의 쇼로 곡들도 독창적인데, 브라질 백인문화를 이해하려면 이 쇼로 음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808년 나폴레옹이 포르투갈을 침략했을 당시 왕이었던 죠앙 4세 왕실은 리우데자네이루로 피난을 오면서 많은 유럽 선진문화도 함께 가져왔다. 그들이 가져온 왕실 문화 중 유럽의 악기와 음악들은 후에 브라질 음악이 지금과 같은 복잡한 화성과 리듬을 겸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포르투갈의 유럽악기들 플루트, 클라리넷, 기타, 만돌린, 피아노는 브라질의 토착 리듬과 동화되기 시작했고 포르투갈에서 유행하던 발라드 형식의 모지냐(Modinha)와 신나는 왈츠, 폴카 리듬은 초창기 브라질 음악의 토대가 돼, 아프리카 리듬과 폴카가 만난 춤곡 마시스(Maxixe)가 탄생했다.

이 마시스를 쇼로의 근간으로 볼 수 있는 이유는 화음과 멜로디, 악기 편성이 지금의 쇼로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쇼로는 멜로디와 화음이 복잡하게 발달했기 때문에 클래식 교육을 제대로 받고, 바흐의 대위법을 알아야 연주가 가능하다. 두 개 이상의 독립적인 멜로디가 동시에 어울리는 대위법 때문에 쇼로를 마치 ‘춤추는 바흐(춤곡 마시스와 바흐가 만난 것)’ 같다고 한 것 같다.

쇼로 밴드의 멜로디 악기도 둘 이상인데 하나는 고음, 하나는 저음을 연주하기 위해 편성되며, 이 둘은 각각 독특한 화성 진행을 한다. 쇼로가 ‘탄식’ ‘울음’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도 특유의 기쁨과 슬픈 분위기가 교묘하게 교차하기 때문이다. 빌라 로보스가 쇼로 음악에 바친 헌신만큼 브라질인들의 쇼로에 대한 자부심도 상당히 커서 쇼로 음악의 대부 픽싱귀냐(Pixinguinha)가 작곡한 카리뇨주(Carinhoso)는 여전히 브라질인이 가장 사랑하는 음악, 부동의 1위다. 필자는 축구에서 1 대 0(1:0)의 상황을 묘사한, 재치 있고 발랄한 쇼로 곡 ‘1:0(Um a Zero)’이 가장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브라질은 음악만큼 광고 분야에서도 뛰어난 나라다. 세계 3대 광고대국인 브라질의 광고는 문화적으로 매우 이례적이면서 독특한데, 가장 큰 특징은 재미 추구다. 광고에 다양한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이슈를 담는데, 이러한 브라질 광고의 창의적 발상과 기발함에서 브라질 문화의 특수성을 읽을 수 있다. 곰이 코카콜라와 뛰어노는 장면을 담은 최근 브라질의 코카콜라 광고를 보면서 문득 브라질풍의 바흐 음악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움과 ‘1:0(Um a Zero)’의 예측불허 리듬이 예전보다 훨씬 친숙하게 느껴졌다. 인종의 용광로 브라질은 생각보다 가까운 데 있었다.


▒ 박현주
보스턴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석사·전문연주자 과정, 고려대 문화콘텐츠전공 박사, 경희대·강남대 피아노 전공실기 강사, ‘도시의 유혹에 빠지다’등 공연 콘텐츠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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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가 한번 등장한 주제가 곡이 진행되면서 조를 바꿔서 다시 등장하는 형식을 띠는 성악곡 또는 기악곡.
대위법 같은 악곡 안에서 두 개 이상의 독립적인 주제를 발전시켜 나가는 작곡 기법. 카논·푸가 등에서 볼 수 있다.

Plus Point

세계 3대 광고대국 브라질

호프의 브래지어 광고. <사진 : 호프>
호프의 브래지어 광고. <사진 : 호프>

브라질인들은 광고를 정보 전달이나 홍보용이 아닌 작품성을 추구하는 예술의 형태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 요소는 ‘유머’와 ‘반전’의 형태로 빠짐없이 등장하며 동성애, 성적 갈망, 종교적 유머 등 다양한 소재가 제약 없이 사용된다. 일례로 브라질 브래지어 브랜드 호프(HOPE)의 2013년 광고를 보면, 미국 레이건 대통령과 쿠바 카스트로 대통령을 브래지어 양쪽에 하나씩 그려 넣어 서로 다른 크기의 가슴을 예쁘고 균형 있게 만들어준다는 의미를 전하고 있다.

광고를 배포하기 전 심의를 통과해야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브라질은 별도의 ‘검열’이 없다. 광고가 배포된 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중요한 국민적 가치를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로운 광고 제작이 가능하다.

그런 이유로 브라질의 광고는 표현수위에 있어서만큼은 여타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자유를 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