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들은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거나 경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금까지 핵심 기술과 가치의 고도화, 시장 차별화를 위해 수많은 연구원을 회사 내 연구개발(R&D) 조직원으로 뒀다. 그리고 사업 구상단계부터 서비스를 실제로 제공하기까지 혁신을 해왔다. 이 혁신은 대부분 회사 내부에서의 혁신, ‘폐쇄적 혁신(closed innovation)’이었다.
그러나 근래의 경영 환경은 과거와 달리 산업 간 경계가 희미해졌다. 경쟁 상대 역시 동일한 산업군에 속한 기업으로 한정돼 있지 않다. 때문에 기업은 다양한 산업군에 있는 기업과 융합해야 하고 빠르게 변하는 시장 속에서 고객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삼성페이’도 외부 기술 활용해 성공

이는 회사에 내재화된 기술과 아이디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외부 기술과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혁신의 원천을 다양화하는 ‘개방적 혁신(open innovation)’이 필요하다.
기업 또한 외부에서 아이디어를 모집하고 기술을 제휴하는 것이 기존 폐쇄적 혁신보다 리스크 관리가 용이하고 개발 비용도 적다고 인식하고 있다. 실례로 삼성전자는 마그네틱전송기술(MST)을 보유하고 있는 루프페이를 인수해 비접촉식 근거리무선통신(NFC) 전용 모바일 결제서비스였던 ‘삼성페이’를 카드 단말기에서도 사용 가능하도록 했다. 현재 삼성페이는 500만명의 고객이 사용할 정도로 주요 소비 수단으로 성장했다. 과거 폐쇄적 혁신 기반의 개발 형태를 개방적 혁신으로 전환해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벤처기업과 협업을 개방적 혁신 방식으로 채택한 대기업의 개발 형태를 살펴보면, 크게 조직 선행형, 기술 시드(seed) 선행형, 에코시스템(ecosystem) 지향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단순히 회사 내 기술의 내재화만을 최우선 사항으로 여기던 기존 폐쇄적 혁신과 달리 개방적 혁신은 벤처기업과 협업한다. 이러한 개방적 혁신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각 유형별 특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직 선행형은 개방적 혁신을 추진하기 위한 주체적 실행조직(신규사업개발부·혁신추진부 등)을 설치했으나, 신규 사업이나 서비스 개발 영역을 명확하게 지정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조직 선행형의 경우 개방적 혁신 실행 조직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업무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이점이 있다. 또 초기 단계에서 조직을 구성해 비교적 빠른 타이밍에 제휴 가능한 벤처기업 목록을 만들수 있다. 그러나 신규사업・서비스 개발 분야를 좁혀 가는 데 시간이 다소 소요된다는 단점이 있다.
기술 시드 선행형은 자사의 기술 시드만으로 신규사업·서비스 개발을 추진하고, 실질적인 사업화를 위해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R&D 능력을 중심으로 벤처기업과 협업하는 형태를 말한다. 현재 대기업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방식이다. 대기업이 보유한 특정 기술 시드를 토대로 사업을 검토하고 추진하기 때문에 대상 영역을 좁히는 데 용이하다. 그러나 사업 범위가 좁혀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협업 기업 후보를 추리는 게 제한적이다.

벤처캐피털 활용하는 게 효과적
에코시스템 지향형은 혁신 인재 육성 등 자사 내 혁신 시스템을 우선적으로 구축하는 게 핵심 포인트다. 조직 내 혁신 시스템이 제대로, 장기적으로 정착된다는 이점이 있지만 사업화까지 속도가 더딜 수 있다. 또 벤처기업과 협업이 구체적인 사업 검토 단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협업 기업 선정이 매우 늦은 시점에서 실행된다.
최근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고 벤처기업 육성 환경 역시 개선되고 있다. 수많은 벤처기업이 생겨나고 없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대기업 입장에선 추진하고자 하는 신사업과 벤처기업이 보유한 기술이 맞아 떨어져야 하고 벤처기업의 재무적 건전성도 중요하다. 대기업이 이런 벤처기업을 찾아 제휴를 맺는 것은 개방적 혁신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다. 보통 대기업은 유망 벤처기업을 발굴하기 위해 직접 벤처기업을 찾기도 하고 공개적인 만남의 장을 만들어 그들과 접촉하기도 한다. 일본 내에는 대기업 신규 사업 및 경영기획 담당자와 벤처기업 경영자가 만날 수 있는 ‘토마츠 벤처 서밋’, 매주 새로운 테마를 주제로 벤처기업이 대기업에 프레젠테이션을 실시하는 ‘모닝 피치’, 벤처기업·벤처캐피털, 대기업이 한자리에 모이는 ‘사무라이 벤처 서밋’ 등이 대기업-벤처기업 제휴 콘퍼런스로 유명하다.
그러나 미래 성장이 불투명한 벤처기업의 특성상 협업할 벤처기업을 검토·선정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다. 실제로 개방적 혁신을 추진할 경우 벤처기업 검토·선정·사업화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벤처기업을 평가하는 기준은 각 기업마다 상이하다. 벤처를 만든 CEO가 누구인지를 기준으로 잡기도 하고, 아직 구현되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벤처기업의 가치를 판단하기도 한다. 특히 벤처기업은 대기업보다 자금 상황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벤처기업은 항상 현금흐름을 의식하며 경영을 한다. 때문에 벤처기업과 협업을 검토하면서 기술 검증 단계에서 벤처기업에 과도한 자금 부담을 주면 협업이 힘들 수 있다.
대부분 기업들은 개방적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 담당 TFT를 구성한다. 벤처기업과 사업을 진행하는 TFT 담당자는 회사 내부 임원들을 설득하고 안심시키는 데 상당한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아무리 담당자가 제휴 대상인 벤처기업을 잘 알고 있어도 회사 임원진은 제3자로부터 검증을 요구한다.
이때는 벤처캐피털을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벤처캐피털은 다양한 벤처기업을 봐왔기 때문에 현재 성장 가능성이 있는 벤처기업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또 벤처캐피털은 투자자로서 벤처기업의 현금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실제 사업화 검토를 논의할 때 벤처캐피털의 리소스를 활용해 벤처기업이 지닌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 특히 벤처기업은 자금 조달뿐만 아니라 경영 이념, 비즈니스 모델, 마케팅, 채널 개척 등 다양한 방면으로 벤처캐피털과 관계를 맺고 있다.
사실 대기업 입장에서 개방적 혁신은 성장 방법이라기보다 정책적인 성향이 짙을 때도 있다. 물론 대기업이 자사가 보유한 자원과 기술만으로 혁신적인 기술 개발에 성공한다면 막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오너 태도 유연해야 개방적 혁신 가능
그러나 고객의 니즈가 실시간으로 바뀌고 한 기업이 모든 기술 개발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개방적 혁신은 필수적인 성장 전략이다.
유능한 인재와 혁신 기술을 지닌 벤처기업과 협업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시장에 새로운 제품·서비스를 선보이며 비즈니스 성공 확률을 높여야 한다. 대기업 자체적으로 보유한 역량과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외부 역량을 따로 구분할 수도 있고 섞을 수도 있다. 다양한 형태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시장 타깃을 만들 수 있을 만큼 기업 오너의 태도가 유연할 때 개방적 혁신은 발현될 수 있다. 신규 사업이 리스크는 줄이되 성공 가능성을 높여야 하는 확률 게임이라는 사실은 모든 기업에 적용된다.
- 노무라종합연구소 토쿠시게 고우(徳重剛) 수석 컨설턴트, 김영준 컨설턴트(서울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