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품업계 오너가(家) 3세들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은 불황을 돌파하기 위해 기존 사업의 성장뿐만 아니라 미래 먹거리 사업을 발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SPC·동서그룹 등은 최근 승진과 지분증여 등의 방식으로 3세 경영 승계 작업에 시동을 걸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주요 식품업체의 오너 3세들은 대부분 30~40대로, 현장에서 실무를 익히며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며 “이들이 주도하는 미래 먹거리 사업의 성적표에 따라 경영 승계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식품업계의 대표적인 오너 3세로는 SPC그룹의 허진수 부사장과 허희수 부사장이 꼽힌다. SPC는 파리바게뜨와 파리크라상 등을 운영 중인 국내 최대 프랜차이즈 그룹이다. 고(故) 허창성 삼립식품 창업주의 차남 허영인 회장이 2004년 삼립식품과 샤니, 파리크라상, 비알코리아 등을 묶은 SPC그룹을 출범시켰다.
글로벌 시장 진출 등 미래 먹거리 발굴
허 회장의 장남인 허진수 SPC 글로벌경영전략실장(부사장)과 차남인 허희수 SPC 부사장이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밟고 있다. 허진수 부사장은 SPC그룹의 지주회사인 파리크라상의 지분을 20.2% 소유한 2대 주주다. 그는 2005년 파리크라상 상무로 입사한 뒤 SPC그룹 전략기획실 전략기획부문장, 파리크라상 전무 등을 거쳤다. SPC그룹의 해외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허진수 부사장은 해외에 240여개 파리바게뜨 점포를 내는 작업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회사의 글로벌 영토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허희수 부사장은 2007년 파리크라상 상무로 입사해 파리크라상 마케팅본부장과 SPC그룹 전략기획실 미래사업부문장을 거쳐 현재 SPC그룹 마케팅전략실장과 SPC삼립 마케팅 본부, SPC클라우드를 총괄하고 있다. SPC그룹의 마케팅 전략을 담당하고 있는 허희수 부사장은 올해 뉴욕의 쉐이크쉑 버거의 한국 진출을 주도하는 등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대표적인 유(乳)가공회사 매일유업과 남양유업의 3세들도 주목받고 있다. 2007년 고(故) 김복용 매일유업 창업주의 장남인 김정완 회장이 경영을 맡은 뒤 매일유업은 커피, 레스토랑, 주류 시장에 진출하면서 식품·외식기업으로 변모했다.
매일유업의 차기 경영구도는 확실치 않지만 업계에선 김정완 회장의 아들 오영(30)씨가 매일유업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신세계에서 근무하고 있는 오영씨는 제로투세븐의 지분 10.7%를 보유하고 있다. 매일유업(34.74%), 김정완 회장의 동생인 김정민 제로투세븐 회장(11.31%)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0세부터 7세(zero to seven)까지’를 모토로 하는 제로투세븐은 영·유아용품 업체로, 김정민 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다. 하지만 급성장하던 제로투세븐이 올 상반기 적자로 돌아서면서 승계 작업에 적신호가 켜졌다. 업계에서는 당초 김정민 회장이 자신이 보유한 매일유업 지분을 조카인 오영씨의 제로투세븐 지분과 맞바꿀 것으로 봤다. 김정민 회장은 제로투세븐을 자신의 회사로 만들고, 오영씨는 매일유업을 맡게 된다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제로투세븐의 실적 악화로 인해 매일유업의 경영구도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삼양식품 3세, 지주회사 100% 소유
매일유업의 라이벌인 남양유업도 최근 3세의 경영수업이 본격화됐다. 고(故) 홍두영 남양유업 창업주의 장남 홍원식 회장은 진석·범석 등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경영학과를 나온 장남 진석씨는 남양유업 경영기획본부 상무로, 범석씨는 생산전략부문장(차장)으로 실무를 익히고 있다.
홍진석 상무는 2007년 생산전략 업무로 출발해 2012년 상무로 승진했다. 홍범석 차장은 2009년 입사 이후 생산전략부문장으로 실무에 전념하고 있다. 이들 형제는 남양유업을 비롯해 계열사 지분도 보유하지 않고 있고, 등기이사에 오르지 않아 주요 의사결정에서도 배제돼 있다.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도 아직까지 없다.
국내 커피믹스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동서식품의 3세 김종희(39) 전무도 경영 승계를 가속화하고 있다. 동서그룹은 창업주 김재명 명예회장의 장남인 김상헌 고문이 동서식품의 지주사 동서를, 차남 김석수 회장이 동서식품을 맡아 경영해왔다.
김상헌 고문은 2004년 동서 회장에 취임했다가 2014년 2월 회장직을 내려놓으면서 경영 일선에서 손을 뗐다. 김상헌 회장의 아들인 김종희 전무는 경영지원 상무로 일하다 2013년 2월 퇴사했으며 1년 6개월 만인 2014년 8월 재입사했다. 김 전무는 현재 동서에서 기획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김석수 회장의 두 아들인 동욱(28)씨와 현준(25)씨가 지분쌓기에 나서고 있지만 사실상 김 전무가 후계구도 정점에 서 있다는 평가다.
미원과 청정원, 종가집, 순창 등의 식품 브랜드로 유명한 대상그룹은 오너가 3세인 임세령·임상민 자매가 경영 일선에 배치돼 있다. 장녀인 임세령 대상 상무(사업전략담당중역)는 1998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결혼했다가 2009년 이혼한 뒤 2012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복귀했다. 2012년 12월 대상 식품사업전략담당 임원에 올랐고 2014년에는 식품브랜드 청정원의 브랜드아이덴티티(BI)를 리뉴얼하는 작업을 이끌었다.
동생인 임상민 상무는 이화여대 사학과, 미 파슨스디자인스쿨, 런던비즈니스스쿨 경영대학원(MBA)을 마친 뒤 2009년 대상전략기획팀 차장으로 대상에 입사했다. 2012년에는 전략기획본부 부본부장 자리에 오르면서 회사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재계에선 임세령 상무보다 임상민 상무가 대상그룹의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임상민 상무는 대상그룹 지주사인 대상홀딩스의 지분 36.71%를 가진 최대주주다. 임세령 상무는 이에 못 미치는 20.41%의 지분을 갖고 있다.
편법승계 등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곳도 있다. 바로 삼양식품그룹이다. 이 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인 SY캠퍼스의 지분은 3세 전병우씨가 100% 소유하고 있다. SY캠퍼스는 2007년 2월 ‘비글스’라는 이름으로 설립됐고 지난 3월 ‘SY캠퍼스’로 이름을 바꿨다. 회사가 설립된 2007년 당시 전씨의 나이는 13살에 불과했다. SY캠퍼스는 설립과 동시에 삼양식품그룹의 알짜회사 테라윈프린팅(삼양식품에 포장 공급)을 그룹에서 분리해 가져가면서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기도 했다. SY캠퍼스는 불과 3년 후 매출 195억원의 규모로 급성장했다. 이후 BW(신주인수권부 사채)를 활용, 삼양식품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올랐다.
식품업계, 이북 출신 창업자 많아
매일유업·남양유업·삼양식품 등의 공통점은 창업자가 모두 이북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들 기업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계열사가 많지 않고, 지분관계는 거의 가족 중심으로 돼 있다. 또 허례허식이 없고 실질적인 것을 중시한다. 그래서 빚지는 것을 싫어하고 사옥도 구입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눈 팔지 않는 뚝심경영으로 성장을 거듭한 것도 닮았다. 최근 2~3세 경영을 거치며 신사업을 통해 사업영역을 확대한 것도 비슷하다. 경영 승계도 실질적으로 이뤄지는 경향이 짙다. 업계 관계자는 “이북 출신 오너 기업들이 최근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며 “아들, 형제라도 실력이 있어야 기업을 승계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