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하면 소비자를 매장에 오래 붙잡아 놓고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 수 있을까요. 소비자 행동분석 전문 컨설팅사 인바이로셀(Envirosell)의 파코 언더힐(Paco Underhill) CEO는 소비자가 각종 매장에서 하는 행동을 관찰하고 분석한 뒤, 소비자를 끌어당기는 비법을 담아 책 <쇼핑의 과학(Why We Buy:The Science of Shopping)>을 냈습니다. 그는 맥도날드·스타벅스·씨티뱅크·블루밍데일즈 등 다양한 매장 운영에 대해 조언해왔습니다.
언더힐 CEO는 2000년대에 진행된 쇼핑 세계의 변화 키워드로 ‘여성’과 ‘인터넷 쇼핑’을 꼽았습니다. 여성들이 ‘클릭(click)’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쇼핑의 세계에서 확대돼 온 여성의 파워가 점점 커지고 중요해졌다는 것입니다.
17년 전 출간한 <쇼핑의 과학>에서 언더힐 CEO는 인터넷 쇼핑의 잠재력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은 실리콘밸리의 컴퓨터광들이 만든 특별하지 않은 것” “인터넷 쇼핑은 건물로 지어진 매장을 결코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죠.
그러나 인터넷 쇼핑은 2000년대 들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미국의 경우 2000~2009년 인터넷 쇼핑 시장 매출이 5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포레스터 리서치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유럽의 온라인 쇼핑 매출(온라인 여행 상품과 자동차 부문 제외)이 연평균 10%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한국의 온라인쇼핑몰 거래액도 2001년 3조원대에서 2009년 20조원을 돌파했고, 2010년엔 25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쇼핑의 과학’을 창시한 사람으로서, 왜 인터넷 쇼핑에 관심을 두지 않았나요?
“당시 많은 이들이 ‘새로운 디지털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저를 비난했습니다. 물론 닷컴 버블 이후 인터넷 쇼핑은 엄청나게 성장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인터넷 쇼핑의 성공은 그 자체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기존 쇼핑 방식이 거추장스럽고, 비싸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쇼핑은 일종의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인터넷의 가장 큰 단점은 무차별적으로 정보에 노출된다는 것입니다. 웹에서 유통되는 정보량은 엄청납니다. 쇼퍼(shopper)들은 제품 정보를 풍부하게 얻을 수 있죠. 하지만 많은 정보 가운데 무엇이 정확하고 옳은 것인지 판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쇼퍼들 스스로 유용한 쇼핑 사이트나 신뢰할 만한 정보를 선택하고, 결국 그런 사이트들이 살아남지 않을까요?
“문제는 정보량은 많지만 정작 나에게 중요하고 유용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세계 어디서나 원하는 제품 정보를 얻고 구매할 수 있지만 맞춤형이나 지역화에는 실패했습니다. 미국 뉴욕에 사는 30대 여성과 로스앤젤레스, 텍사스에 거주하는 30대 여성이 옷을 입는 방식엔 차이가 있겠죠. 메이시스(Macy’s) 백화점의 웹사이트가 제공하는 인기 순위나 추천 아이템에 미국 전역이 열광하는 것도 아닙니다.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려는 시도가 없진 않습니다. 가령 ‘데일리캔디(dailycandy)’라는 사이트에선 애틀랜타·보스턴·시카고·뉴욕·댈러스 등 10여 곳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그 지역에서 쇼핑할 만한 곳과 식당을 소개하고, 예정된 문화행사도 알려줍니다. 이런 시도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합니다.”
18조 달러 시장 65%가 여성 소비자
지난 2009년 발표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Women Want More(여성은 더 많은 것을 원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은 18조4000억달러 규모의 글로벌 소비시장에서 약 12조달러를 주무르고 있습니다. 65%의 소비력이 여성의 선택에 달려 있는 셈이죠. BCG는 “직장 여성이 증가하고 동등한 임금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면서 향후 5년간 여성 소득은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언더힐 CEO는 “남자들이 옛날에 비해 쇼핑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 변화도 여자들의 은근한 자극 때문”이라며 “여성의 지갑을 여는 매장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에도 여성들은 쇼핑을 했지요. 지금 여성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요?
“여성이 옷이나 음식만 사는 시대는 지났어요. 여성들은 직접 차를 사고 부동산을 매매하는 것 같은 (과거 남자의 몫이던) 의사결정과정에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불경기를 거치면서 여성보다 남성이 일자리를 더 많이 잃었습니다. 부인이 더 많이 벌거나 가장(家長) 역할을 하는 경우도 늘고 있어요. 서구 사회에선 여성의 경제적 힘이 10년 전보다 확실히 커졌어요.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아직 남성이 디자인하고 소유하는 매장, 남성이 경영하는 곳이 더 많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일본 백화점 이사회에 가보면 죄다 남자들이에요. 이들의 소비자 베이스는 여성이 대다수죠.”
여성의 쇼핑은 어떻게 다른가요?
“남성보다 감정적이고 심리적입니다. 쇼핑으로 얻은 물건을 통해 자아를 변화시키고 싶어 하죠. 여성이 실내용 램프를 사는 이유는 불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집안을 더 우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공간도 중요합니다. 백화점에 있는 화장품 매장을 유심히 살펴봤더니, 자기 몸을 감출 수 있는 공간에 서 있던 여성들이 매장 중앙의 개방된 곳에 서 있던 여성보다 제품 구입 확률이 더 높았어요.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화장품을 둘러본 여성들이 실제 지갑을 여는 경우가 많았던 겁니다. 혼자 패스트푸드점에 갈 때도 마찬가지예요. 남성들은 거리낌 없이 들어가서 햄버거를 받아들고 앉아버리죠. 하지만 여성들은 한참을 두리번거리거나, 차라리 드라이브 인(drive-in) 매장을 이용해요. 여성을 잠시라도 더 매장에 머물게 만드는 여유 공간이 필요합니다.”
여성 소비자를 공략하는 방법이 있나요.
“한국인 주부에게 TV를 판다고 가정해 보죠. 신제품이고 디자인도 훌륭하다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저라면 남편 이야기를 꺼낼 겁니다. ‘이 TV가 남편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려줄 것’이라고 말이죠. 아이와 보내는 시간도 늘 것이고, 더 다이내믹한 가정생활이 가능하다는 걸 강조하는 겁니다. TV의 기술력이 그 여성의 가정에 미칠 영향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죠. 이제 여자의 욕망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쇼핑의 과학은 커다란 혁신을 말하지 않아요. 미세한 변화가 극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 파코 언더힐 Paco Underhill
소비자 행동분석·컨설팅사 인바이로셀 C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