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1만2000원 | 273쪽

2016년 동인문학상은 소설가 권여선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에 돌아갔다. 수상 작가는 1996년 등단해 어느덧 20년 창작의 연륜을 쌓았다. 작가는 이미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해 문학적 입지를 다져왔다.

‘안녕 주정뱅이’는 술꾼의 삶을 소재로 한 단편 7편으로 꾸며졌다. 문단에선 ‘주류(酒類) 문학’이라고 부른다. 술꾼이 많은 문단에서도 술꾼의 세계를 집중적으로 담은 소설책 한 권이 나온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작가 권여선은 “소주 한병 반이 주량”이라며 “술은 시간과 시간 사이의 간이역”이라고 말했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선정 이유서를 통해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는 인간이 짐승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철저히 밀고 나갔다”라며 인간의 가장 비천한 모습들이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안녕 주정뱅이’는 술꾼들의 슬픈 인생 이야기 모음집이다. 보통 사람들이 부당하게 불행을 겪어 술에 탐닉하게 된 상황을 다양하게 조명하면서 비극 특유의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가난하고 질병에 시달리거나 고독과 우울 속에 살아가는 남녀의 안타까운 상황을 다룬다. 그러나 작가는 건조하고 절제된 문체로, 비극을 견뎌나가기에 숭고해지는 삶의 태도를 그려낸다. 고통스러운 소설 모음집이지만 때로는 삶의 농담을, 때로는 삶의 환각을 다루면서 고통의 심연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이 성숙한 삶의 통찰을 제시하기도 한다.


인간의 바닥모습 적나라하게 묘사

“성마른 몸에 취한 피가 돌면서 그녀의 눈에 모든 것이 아주 단순하고 명료해 보였다. 손도 떨리지 않고 금세라도 깊이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영경은 모텔 현관 계단을 올라가며 시의 마지막 부분을 또박또박 반복했다. 절.제.여.나.의.귀.여.운.아.들.이.여.오.나.의.영.감.이.여.”

책에 실린 단편 중 ‘봄밤’의 한 대목이다. 알코올 의존증에 걸린 주인공 ‘영경’이 술에 취해 김수영의 시 ‘봄밤’을 외우는 장면이다. 그 시는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며 시작해 ‘술에서 깨어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라며 이어진다. 술에서 깬 시인이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봄밤을 노래한 것. 작가 권여선은 술에 취해 이 시를 우연히 읽고선 소설을 써냈다고 한다.

소설 ‘봄밤’의 등장 인물들은 저마다 가난하고 몸이 아프고 절망적 상황 속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그들 중 여주인공은 알코올 의존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병이 깊은 남편과 함께 요양원에 살면서 그녀도 치료를 받지만 침대에 누운 남편을 놔두고 틈틈이 술을 마시러 요양원을 빠져나간다. 비루하고 남루한 일상의 연속이지만 부부의 사랑은 변치 않는다. 그러나 삶은 나아지지 않고 남편은 아내가 술을 마시러 나간 사이 홀로 숨을 거둔다. 돌아온 아내는 갑자기 치매 증세를 보이며 남편이 떠난 뒤에도 요양원에서 살아간다.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의 주인공들은 술에 취해 환각에 빠지거나,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술과 삶 사이에서 꿈을 꾼다. 그 꿈은 대부분 모호하고 무기력하다. “이 모든 슬픔과 그리움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나 사이를 가르고 있는, 아득하고 불가촉한 거리처럼도 느껴졌다”는 소설 속의 한 문장이 가리키듯이, 소설 인물들의 취한 꿈은 저마다의 세계를 이루며 현실로부터 벗어나 있다. 그 꿈은 그 인물이 처한 현실에 비하면 악몽은 아니다. 권여선 소설의 비애는 그 인물들이 저마다의 꿈에서 깨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묘사할 때 짙어진다. 술에서 깬 술꾼을 향해 세상이 “안녕 주정뱅이”라고 할 때 그 인사말은 섬뜩한 아이러니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