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타타자동차는 2009년 세계에서 가장 싼 경차 ‘나노’를 내놓았다. 가격은 단돈 2000달러(231만원). 파격적인 저가(低價)였지만 차체 디자인에 적지 않은 공을 들였고, 후륜구동 엔진을 장착해 승차감도 높였다. 타타자동차의 나노는 곧 ‘소박한 엔지니어링’ ‘간디주의 엔지니어링’의 대표로 인식됐고, 전 세계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나노의 실제 판매량은 회사 기대를 충족하기엔 매우 부족했다. 세계에서 가장 싼 자동차로 많은 소비자들의 이목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실제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싼 자동차라는 나노의 별칭이 소비자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소득이 낮은 소비자라고 해도 세계에서 가장 싼 차를 첫 차로 갖고 싶지는 않은 소비자의 마음을 타타자동차가 포착하지 못했던 셈이다. 나노를 사느니 차라리 중고차를 사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소비자가 적지 않았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신흥시장에서의 성공 법칙은 간단했다. 기본 내구재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전략만으로도 많은 기업들이 신흥시장에서 성공을 거뒀다. 많은 신흥시장에 생활필수품이나 내구재 등 소비자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제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추세가 최근 바뀌기 시작했다. 값싼 제품만으로는 신흥시장에서 다른 기업과 경쟁하기 어려워졌다. 신흥시장에서 성공적인 혁신을 이루려면 다른 팁이 필요한 셈이다. 신흥시장 진출을 준비하는 기업이 기억해야 할 필수 전략 6가지를 소개한다.
신흥시장 공략 6대 필수 전략
전략 1 | 싼 가격 외에 ‘+α’가 필요하다
물론 임금 수준이 낮은 신흥국 시장에서 가격은 소비자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 하나만을 내세우는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인도의 가전제품 업체 고드레지는 몇년 전 저가 냉장고 ‘초투쿨(ChotuKool·초투는 힌디어로 ‘작다’)’과 ‘미티쿨(MittiCool·미티는 힌디어로 ‘진흙’)’을 출시했다. 1대당 가격은 각각 60달러(6만9000원), 40달러(4만6000원)로 100달러 수준인 일반 소형 냉장고보다 훨씬 저렴했다. 두 제품 모두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주택에 사는 저소득 소비자를 겨냥한 제품이었다. 초투쿨은 배터리형 열전기를 사용했고, 미티쿨은 점토로 만든 선반이 수분을 뿜으며 냉장고 속 음식을 냉각시키는 원리가 활용됐다.
하지만 이 제품의 판매량은 수만대 정도에 그쳤다. 인도에서 냉장고가 매년 800만~1000만대 판매되는 것을 고려하면 매우 저조한 실적이었다. 과거 신흥시장에서는 소박한 혁신과 저렴한 가격 전략으로 큰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포착되고 있는 현실은 ‘제품을 만들어 싸게 내놓으면 신흥시장 소비자는 따라올 것’이란 과거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싼 가격으로만 승부하려는 제품은 만족스러운 매출을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

전략 2 | 소비자 열망 담긴 제품 만들라
세계에서 가장 싼 경차 나노와 60달러짜리 냉장고 초투쿨은 모두 소비자의 바람을 포착하지 못한 실패 사례다. 소득이 낮은 사람은 언제나 부자가 되길 원하기 때문에 부자들이 사지 않는 제품은 그들도 사지 않는다. 타타자동차와 고드레지는 이런 사실을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전략 3 | 디자인과 제품 개발에 힘써라
디자인과 제품 개발은 신흥시장 진출에 가장 중요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많은 사업가들이 신흥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실용적인 해결책(새로운 제품)을 내놓는다. 하지만 디자인과 엄격한 제품 개발에는 지나치게 시간을 아끼는 경향이 있다.
이는 결국 품질 악화와 확장성 제한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기업들의 전략이 ‘주가드 혁신’이라는 단어로 미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가드 혁신에서 주가드란 기존의 것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활용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극복하는 능력을 말하는 인도 힌디어다. 기존 부품을 짜깁기해 만든 자동차를 말하는 단어인데,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는 해결책이라는 경멸적인 의미로도 쓰인다. 최근 신흥시장에서 주가드 혁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식이 퍼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전략 4 | 다면적 GTM 전략에 투자하라
GTM(Go-to-Market) 전략이란 ‘시장(소비자)으로 간다’는 뜻이다. 기업이 자원·조직·생산과정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시장에 직접 진출하는 전략을 말한다. 시장에 직접 진출할 때는 제품 생산뿐 아니라 경영·판매·유지 등 여러가지 측면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인도 보어텍스엔지니어링은 인도뿐 아니라 주변 신흥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저렴한 ATM 기계를 생산했다. 태양광으로 운전이 가능했고 제품 품질도 매우 좋았다. 이 제품은 다른 제품보다 유지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보어텍스엔지니어링은 기대만큼의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미 ATM 시장에 진출한 국내·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려면 네트워크 분배와 판매 후 지원, 금융 지원 등을 고려한 전면적 공급체계를 충분히 구축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적지 않은 시간과 자금 투자가 필요한 작업이다. 보어텍스엔지니어링은 결국 더 많은 자금을 투자받아 이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전략 5 | 소비자 교육을 꾸준히 하라

소비자의 선택이나 행동을 변화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꾸준한 소비자 교육도 필요하다. 유니레버의 인도 법인 ‘힌두스탄 유니레버’는 저렴한 정수 필터 퓨어잇(Pureit)을 출시하고 소비자 교육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비영리 단체와 협약을 맺고 오염된 물을 마시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물을 끓여 마시는 전통적인 방식이 정수 필터를 사용하는 것보다 돈과 시간이 얼마나 더 드는 일인지 등을 광고를 통해 알린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전략 6 | 경영 시계(視界)는 장기적으로
신흥시장 진출에 따른 사업 성과는 5~10년, 혹은 그보다 더 이후에 나타날 것이다. 신흥시장에서 추진되는 많은 사업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스타트업이나 대기업 모두 마찬가지다. 스타트업은 신흥시장에서 사업 규모를 키울 때까지 전 과정을 지원해줄 인내심 있는 투자자가 필요하다. 대기업 역시 신흥시장 진출에 모든 자원을 투입하려는 전략은 지양해야 한다. 사업에 따른 결과가 즉각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충분한 추진력을 가지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하는 기업은 신흥시장에서 더 많은 성공 스토리를 보여준다. 힌두스탄 유니레버의 퓨어잇도 좋은 사례다. 유니레버는 2005년 테스트베드인 인도 시장에 이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3년간 많은 자금과 시간을 투자했다. 퓨어잇은 곧 인도 시장에서 선두로 올라섰고 다른 신흥국 시장에서도 영역을 넓혀 유니레버의 대표 제품으로 성장했다. 유니레버는 ‘물’이라는 사업 아이템을 세계 10대 기회로 꼽아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추진했다.
신흥시장 진출 모범 사례 ‘디라이트(D·light)’

신흥시장에 진출한 기업이 혁신에 실패하지 않으려면 이러한 여러 요건들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 그런 모범 사례가 바로 미국 태양광 업체 디라이트다. 전력망이 구축되지 않은 지역에 태양광 전력 제품을 생산하는 디라이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몇가지 요인이 함께 작용했기 때문이다.
2004년 아프리카 서부 국가 베냉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샘 골드만은 이웃에 사는 15세 아이가 석유 등불을 사용하다가 심각한 화상을 입는 사고를 목격했다. 미국으로 돌아간 샘은 전력망이 없어도 안전하고 편리하게 어둠을 밝힐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탠퍼드대에서 네드 토즌을 만나 2006년 태양광 전구 생산 업체 디라이트를 설립했다. 미국과 중국, 아프리카, 동아시아 지역에 4개의 본부를 둔 디라이트는 2008년 제품을 생산한 이후 62개국에 태양광 전구 1200만개를 판매했다. 지금까지 6500만명의 삶을 개선했다.
설립자 샘은 전력난이 심각한 아프리카에서 살면서 소비자의 욕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했다. 이런 수요를 파악한 샘은 품질 좋은 태양광 전구를 만들었다. 소비자들의 시급하고 중요한 욕구가 충족된 셈이다. 판매 가격은 낮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외상을 허용하지 않고 제품을 구매할 때 바로 비용을 내도록 했다. 박리다매(薄利多賣) 전략을 활용해 이익을 창출한 것이다.
디라이트는 또 8달러의 저렴한 제품부터 100달러짜리 고급 전구까지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혔다.
물론 경영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디라이트는 그럴 때마다 유연한 경영 능력과 인내심을 발휘했다. 특히 인도 시장에서는 개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석유회사와 손잡고 정유소에 제품을 공급해 사업 규모를 키웠다.
신흥시장, 소프트웨어·헬스케어 유망
신흥시장에서 이룬 혁신을 다른 지역으로까지 전파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업종은 헬스케어와 소프트웨어다.
흥미롭게도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여전히 저가 전략이 활용되고 있다. 많은 다국적기업과 스타트업이 신흥국의 헬스케어 시장에서 가격파괴 정책을 쓰고 있다. GE가 신흥시장에서 판매하는 심전도측정기(ECG)는 500달러 정도다. ECG의 보통 가격은 1만달러 수준이다. 파이어플라이(Firefly)는 저렴한 광선치료기계를 생산하고 있고, 의수족을 만드는 자이푸르풋(Jaipur Foot) 제품은 50달러 수준으로 평균 가격보다 낮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특히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와 모바일 기반 제품을 주목해야 한다. 이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장, 엔지니어링과 소프트웨어 능력, 클라우드와 서비스형 소프트웨어를 받아들이는 소비자, 충분한 자본을 제공하는 투자자 그리고 경험을 통해 세계적인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하는 사업가 등 모든 것이 맞물려야 한다.
신흥시장에서 성장한 기업이 세계적으로 몸집을 불린 사례는 이미 많다. 오픈 소스 웹서비스 플랫폼을 다루는 스리랑카 신생기업 WSO2, 인도 SaaS 솔루션 지원 회사 프레시데스크(Freshdesk)와 조호(Zoho) 등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