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태양광 시장이 다시 들썩일 조짐이다. 세계 최대 태양광 소비국이자 생산국인 중국이 태양광 기초소재인 폴리실리콘과 태양전지, 모듈 등에서 공격적인 설비 확장을 추진하면서 태양광 업계가 공급과잉에 따른 진통을 겪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태양광 에너지 생산을 지원하겠다던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가 낙마함에 따라 전 세계 태양광 산업이 중요한 지원군을 잃어버렸다. 올해 상반기에 균형을 유지하던 태양광 주요 제품 수급은 하반기 들어 공급 우위로 돌아섰다. 1차 공급과잉과 구조조정으로 태양광 시장이 호황기에 접어들자 중국 기업이 앞다퉈 증설 경쟁에 나선 탓이다.
시장 독식 나선 중국 태양광 업체
세계 태양광 산업 부문별 생산 용량은 폴리실리콘 78GW, 웨이퍼 75GW, 태양전지 83GW, 태양광 모듈 99GW다. 반면 올해 세계 태양광 수요는 각 부문에서 68GW 안팎이다. 전 부문에서 공급과잉이라는 얘기다. 특히 태양광 모듈은 수요 대비 공급과잉량이 45%에 이른다.
2008년 시작돼 2013년까지 이어진 1차 공급과잉은 세계 태양광 시장을 완전히 재편했다. 유럽과 미국 중심이던 태양광 업체들이 대부분 도산 또는 인수합병(M&A)됐다. 그러나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은 중국 업체들이 태양광 시장 상위권을 차지했다. 독일 큐셀과 미국 솔린드라·에버그린솔라·선파워, 세계 1위 생산능력을 자랑하던 중국 선텍 등이 파산하거나 다른 기업에 M&A됐다.
최근 중국의 폴리실리콘과 태양전지·모듈 제조 업체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으면서 우리나라 태양광 관련 기업에도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전 세계 폴리실리콘 생산능력 2위인 바오리셰신(GCL)은 내년 이후 생산능력을 5만t 이상 늘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3위인 OCI와 생산능력 격차가 기존 2만t에서 7만t으로 벌어질 것이다.
모듈 역시 시장 주도권을 쥐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중국에서만 생산능력 6GW를 넘어선 기업이 징코솔라(6.3GW)·GCL(6GW) 등 두 곳에 이른다. 전 세계 시장점유율 5위인 한화큐셀(5.5GW)에 비해 생산능력이 500~800MW 정도 앞선다. 트리나솔라, 진코솔라 등도 생산능력을 2~5배까지 늘린다는 목표로 증설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저가 공세에 나서면서 주요 제품 국제 가격은 10월 한 달 새 40% 가까이 하락했다. 올해 상반기 중국의 태양광 설치 목표량이 달성되면서 내수시장에서 흡수되지 못한 물량이 저가에 수출 시장으로 쏟아졌기 때문이다. 태양광 가격 정보 사이트 PV인사이트에 따르면 웨이퍼 가격은 1와트(W)당 0.51달러로 7월 0.71달러에서 30%가량 하락했다. 상반기 내내 강세를 보인 태양전지는 최고점 대비 40% 떨어진 1와트당 0.18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전 제품군이 역대 최저 수준이다.

주요 제품 가격 한달 새 40% 폭락
중국 업체가 설비 증설에 뛰어든 것은 ‘승자독식’ 때문이다. 1차 공급과잉으로 상당수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됨으로써 중국 업체는 독자 생존 구조를 확보했다. 하지만 이후 반덤핑 규제로 미국·유럽 시장 진출이 쉽지 않았다. 최근엔 고효율 기술을 내세운 한국·일본 기업과의 경쟁도 과열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덩치를 키워 태양광 시장에서 확실한 승기를 잡겠다는 것이 중국 업체들의 전략이다.
최근엔 화석연료에 초점을 맞춘 에너지정책을 내세웠던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태양광 산업이 위기를 맞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당선자는 대선 공약으로 파리기후협정 파기, 화석연료 증가 등 ‘전통 에너지로의 회귀’를 골자로 한 에너지 정책을 주창했기 때문이다. 실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자 주요 태양광 업체들의 주가가 폭락하는 등 태양광 산업 위축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드러나기도 했다.
국내 업체 수익성 하락 불가피

중국 태양광 업체들이 생산능력 확충에 나서면서 국내 업체들도 긴장하고 있다. 1차 과잉공급 때 선텍 등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특히 1GW도 안 되는 내수시장 때문에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의 상황은 더 불리하다. 한화큐셀, LG전자, OCI 등 생산량이 많고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있는 기업을 제외하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반면 일부에선 국내 기업들이 중국발 구조조정으로 받을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 태양광 시장 재편은 일단락됐고 규모의 경제를 갖췄다는 이유에서다. 한화큐셀은 세계 태양전지 1위, 모듈 5위로 올라섰고, LG전자는 2013년 수익성이 낮은 태양광 웨이퍼 사업에서 철수해 현재 모듈 생산과 태양광 솔루션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OCI는 지난 5월 폴리실리콘 4·5공장 건설 계획을 철회하는 대신 일본 화학 기업 도쿠야마의 말레이시아공장 지분을 인수해 생산능력을 키우고 있다. 다만 수익성 하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중국 시장 재편으로 가격 약세가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중국 저가 물량 공세에 맞서 우리 업체도 투자를 늘리든지 고효율 제품으로 독자 시장 확보 전략을 펴야 한다는 것도 공통된 지적이다. 강정화 수출입은행 연구원은 “태양광 내수시장을 더 확대해 수요를 늘리거나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없으면 국내 중소 태양광 업체들은 2차 공급과잉을 견뎌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