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바라본 캘리포니아 북부의 중심도시 샌프란시스코의 중심가. <사진 : 블룸버그>
하늘에서 바라본 캘리포니아 북부의 중심도시 샌프란시스코의 중심가. <사진 : 블룸버그>

치솟는 집값에 극심한 가뭄과 지진으로 인한 피해까지 늘면서 캘리포니아주를 떠나는 발길이 늘고 있다.

미국 부동산 정보 업체 코어로직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2000~2015년, 캘리포니아에서 집을 팔고 다른 주로 이사한 가구는 같은 기간 캘리포니아에 집을 사서 전입한 가구보다 2.5배 많았다.

캘리포니아 인구는 약 3900만명으로 미국 50개주 중 가장 많다. 캐나다 전체 인구(3500만명)보다 많다. 미국 경제의 성장 동력인 실리콘밸리를 품고 있는 까닭에 이 지역 총생산(GRDP)은 인구 6600만명의 프랑스 국내총생산(GDP)을 상회한다. 이런 캘리포니아를 등지는 이들이 증가한 가장 큰 이유는 뭘까. 비싼 집값이다. 캘리포니아의 주택 가격은 2011년 이후 70% 넘게 올랐다. 집값 평균은 42만8000달러(약 5억원)에 이른다.


5년간 집값 70% 넘게 올라

미국 부동산중개인협회(NAR)의 지난 8월 발표 내용을 보면 미국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도시 5곳 중 4위에 이름을 올린 하와이 호놀룰루를 제외한 4곳이 캘리포니아에 있다.

실리콘밸리 지역의 집값은 살인적이다. 전체 1위인 새너제이의 경우 집값 평균은 1년 사이 10.7% 올라 108만5000달러(약 12억67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새너제이에 이어 샌프란시스코(88만5600달러), 애너하임 산타아나(74만2200달러), 호놀룰루(72만5200달러), 샌디에이고(58만9900달러)순으로 집값이 비쌌다.

캘리포니아의 집값을 끌어올린 두 가지 원동력은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과 외국인, 특히 돈 많은 아시아계 이주민이다. 미국의 리쿠르팅 기업인 다이스(Dice)에 따르면, 지난해 실리콘밸리 기술직 평균 임금은 11만8243달러(약 1억3800만원)였다. 고소득 전문직이 몰리다 보니 부동산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문제는 집값이 오른 만큼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급여는 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샘 카터 코어로직 차석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집값과 이주 패턴 사이에는 분명한 연관 관계가 있다”며 “중산층 이하 소득으로 캘리포니아에서 생활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에 (소득이 높지 않은) 교사나 소방요원, 부동산 관련 종사자가 부족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과 캘리포니아 주요 도시 부동산으로 유입된 중국 자본이 급증한 것도 캘리포니아 집값 급등의 또 다른 원인이다.

아시아계 이주민의 캘리포니아주 선호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1월 8일 미국 대선에 등록된 캘리포니아 거주 아시아계 유권자수는 180만명에 달했다. 2012년 대선보다 15만명이 증가한 것이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자본력을 바탕으로 현지 기업과 부동산 사냥에 나선 중국인들이 늘었다는 점이다. 워싱턴포스트(WP)와 테크크런치, 니케이 아시안리뷰 등 외신은 2012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중국에서 실리콘밸리로 흘러들어간 누적 투자금액이 50억달러(약 5조8000억원)를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부동산 투자의 경우 교육 목적 투자가 크게 늘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캘리포니아주립대 어바인 캠퍼스(UC 어바인)가 있는 어바인시의 경우 신규 부동산 구매자의 70~80%는 자녀를 인근 대학에 보내고 있거나 보낼 계획이 있는 중국인 부모들이었다고 얼마 전 보도했다.


환태평양 지진대 속해 지진도 빈번

빈번한 지진과 오랫동안 계속된 가뭄도 캘리포니아 탈출을 부추기는 또 다른 요인이다. 캘리포니아는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해 미국에서 지진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지역으로 꼽힌다.

9월 26일 새벽에는 캘리포니아 솔턴 호수 인근 봄베이 해변 지하 5~11㎞ 지점에서 지진이 발생한 후, 같은 지역에서 일주일 사이 규모 1.4~4.3의 지진이 총 142회 발생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캘리포니아는 지난 5년간 극심한 가뭄으로 큰 피해를 봤다. 지난 10월 북부 지역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해갈에 도움이 됐지만, 농업의 중심인 중부와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된 남부 지역의 가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캘리포니아를 떠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정착지는 애리조나와 텍사스, 네바다, 워싱턴 등이다. 특히 애리조나의 경우 여름에는 덥지만 홍수나 지진,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가 없어 구글과 인텔, 아마존 등 주요 기업들도 핵심 시설을 두고 있다. 지난해 캘리포니아를 떠난 이들은 보유했던 주택을 평균 49만5500달러에 처분하고 새로운 정착지에서 평균 31만5000달러에 새로 집을 사들였다. 집값으로 상당한 금액을 절약한 것은 물론 더 큰 집으로 이사한 경우도 많았다. 여기에 더해 수도세와 전기세 등 각종 공과금 절약분까지 고려하면 탈(脫)캘리포니아로 누린 가계 경제 혜택은 적지 않았다.


Plus Point

트럼프와 칼렉시트(Calexit)

도널드 트럼프의 미 대선 승리는 ‘칼렉시트(Calexit·캘리포니아의 미 연방 탈퇴)’ 운동에 불을 붙였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선거인단(55명)을 확보한 캘리포니아주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처럼 미국 연방을 떠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터넷에서는 2019년 미 연방을 탈퇴하자는 ‘예스 캘리포니아(yescalifornia.org)’ 캠페인도 시작됐다. 실리콘밸리 유명 벤처 투자가 서빈 피시바가 자금을 대고 있다.

실리콘밸리가 트럼프 당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트럼프가 내세우는 가치가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추구하는 방향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인력 수급이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해외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해 비자 발급 조건을 완화해 달라고 요구해왔지만, 이민 수용에 소극적인 트럼프는 이를 반대하고 있다.

테슬라로 대표되는 전기차와 태양광 등 친환경 산업도 직격탄을 맞게 됐다. 트럼프가 “기후변화는 거짓말”이라며 신재생에너지보다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에 치중하는 정책을 펼 것을 공언했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세무조사를 받을 수도 있다. 트럼프는 “아마존은 오프라인 유통을 무너뜨린다. 반독점 이슈가 있다. 제프 베조스는 세무조사가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