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드비히 2세의 명령으로 건축된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아름다움은 월트 디즈니도 매료시켰다. <사진 : 블룸버그>
루드비히 2세의 명령으로 건축된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아름다움은 월트 디즈니도 매료시켰다. <사진 : 블룸버그>

11월의 독일은 짙은 단풍이 지나가고 있는 늦가을입니다. 독일 바이에른 주도 뮌헨에서 기차로 2시간을 달려 도착하는 퓌센은 독일에서 가장 단풍이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이지요.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사로잡는 퓌센의 하이라이트는 단풍 절경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입니다. 월트 디즈니는 이 성을 보고 한눈에 반해 미국 디즈니랜드와 여러 애니메이션의 성을 만들 때 모델로 삼았습니다.

이 성은 독일 바이에른 국왕이었던 루드비히 2세(1845~86)의 명령으로 건축됐습니다. 루드비히 2세는 당시 그가 심취해 있던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장면을 이 성에서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의 무대

루드비히 2세는 바이에른 왕국 수도 뮌헨에서 막시밀리안 2세와 프로이센 공주인 어머니 마리 폰 프로이센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심성이 착했던 루드비히 2세는 예술적인 기질이 풍부했다고 합니다. 루드비히 2세의 이런 연약한 성격을 염려한 막시밀리안 2세와 마리 폰 프로이센은 그를 혹독하고 엄하게 교육시켰습니다. 이런 교육은 그를 더 외로움으로 몰아 정신적 도피처인 예술적 공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습니다. 그러던 중 루드비히 2세는 16살에 뮌헨에서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보게 됐고, 이 오페라에서 그가 상상하던 완벽한 이상향을 구현한 세계를 발견했습니다. 오페라에 열광한 그는 자신을 오페라 주인공인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과 동일시했죠. 그는 3년 뒤 국왕에 오르자마자 바그너를 뮌헨으로 초청했습니다. 루드비히 2세와 바그너의 첫 만남은 마치 오페라 로엔그린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여주인공 ‘엘자’가 꿈에서 본 백조의 기사에게 구원되고 의지하듯이 루드비히 2세는 바그너를 혼돈 가득한 현실에서 자신을 유토피아로 안내해줄 구원자로 생각했습니다. 바그너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는 당시 루드비히 2세와의 첫 만남이 어땠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오늘 국왕을 알현했다. 그는 총명하고 영혼으로 가득찬 분이었다. 그 모습은 너무 빼어나고 훌륭했다. 그의 인생이 마치 스쳐지나가는 신들의 꿈처럼 이 나쁜 세상에서 녹아 없어져버릴까 봐 두려울 정도로. 당신은 마법과 같은 그의 눈동자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후 바그너는 뮌헨에 살면서 루드비히 2세의 절대적인 후원 아래 ‘트리스탄과 이졸데(1865)’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1868)’ ‘라인골트(1869)’ ‘발퀴레(1870)’ 등 세기의 명작들을 작곡했습니다. 곧 뮌헨은 유럽의 문화 수도가 됐고, 루드비히 2세가 속한 비텔스바흐 가문의 예술 후원 전통도 후대까지 계승됐습니다.


바그너 오페라 ‘로멘그린’의 한 장면.
바그너 오페라 ‘로멘그린’의 한 장면.

극단의 감정 느끼게 하는 바그너 오페라

그런데 루드비히 2세는 전설처럼 신의 은총을 받는 신성한 왕국을 꿈꿨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현실에서 그는 의무와 법을 준수해야 하는 국왕이었고, 공적인 삶 외의 여유 생활은 극히 제한받았습니다. 게다가 바이에른은 1866년 독일에서 세(勢)를 확장하는 프로이센 왕국과 치른 ‘독일전쟁(Deutscher Krieg)’에서 오스트리아 연합국으로 참전했다 패해 프로이센에 외교권을 빼앗기고 사실상 위성국가로 전락했습니다. 루드비히 2세는 점점 무기력해졌고,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이상향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868년, 뮌헨에서 남서쪽으로 약 100㎞ 떨어진 퓌센의 아름다운 산자락에 로엔그린의 세계를 반영한, 아름답지만 비현실적인 중세의 성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새로 방어 기능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미학적 관점으로만 중세 건축의 모티브를 따왔죠.

여기서 16살의 어린 왕자 루드비히 2세를 사로잡은 로엔그린 삽입곡 하나를 살펴볼까요. 아마 이 곡은 너무 유명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입니다. 결혼식에서 신부 입장곡으로 많이 쓰이는 제3막의 ‘혼례의 합창(Treulich Geführt Ziehet Dahin)’입니다. 으뜸화음-딸림화음-버금딸림화음이 순차적으로 교차하며 천천히 연주되고 큰 변화 없는 화성, 조용한 다이내믹 내에서 조심스레 반복되는 리듬의 움직임은 평온함을 넘어 숭고함마저 느끼게 합니다.

바그너가 이 오페라를 완성한 17년 후에 작곡한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역시 그의 수작으로 꼽힙니다. 특히 이 곡은 낭만주의 작곡기법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라을 알 수 있는 곡입니다. 화성의 해체로 곡이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화성적인 종지가 거의 나타나지 않아 듣는 이로 하여금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극단으로 치닫게 합니다. 이 오페라의 명장면 중 하나인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Isoldens Liebestod)’ 아리아 역시 시작부터 끝까지 같은 모티브 선율의 반복입니다. 그래도 화성적으로는 종지가 마지막 코다에 등장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음악에 도취된 루드비히 2세는 이 음악을 자기 삶의 중심으로 옮겨놓고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 판타지가 실현된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유폐되기 전까지 허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1886년 성이 개방된 이후 500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 안종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 석사, 독일 함부르크 국립 음대 연주학 박사, 2012년 프랑스 파리 롱 티보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Plus Point

추천음반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
지휘 : 루돌프 켐페 |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빈 국립 오페라 합창단

격정적인 표현, 훌륭한 취향이 가미된 예술적인 프레이징 등으로 1978년도 독일 베를리너 오펀블래터에서 극찬받은 음반


리하르트 바그너-프란츠 리스트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사랑의 죽음 | 피아노 :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오케스트라 총보를 충실하게 피아노 악보로 옮겼을 뿐 아니라 바그너의 오케스트레이션을 리스트만의 피아노 테크닉으로 생생히 재현해낸 훌륭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