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주력 업종 대부분이 한꺼번에 침체된 건 산업화 50년 만에 처음이다. 지금까지 성공해 온 방식으로는 더 이상 성공은커녕 생존할 수 있을지 불안해하는 기업인이 늘고 있다. 기업의 수익·고용·수출·투자가 감소하고 한국 경제의 수치적 쇠퇴가 현실화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주력모델인 갤럭시노트7이 배터리 문제로 전량 리콜되고, 현대자동차 주력 모델에 장착된 엔진이 미국에서 대량 리콜되는 등 글로벌 시장을 이끌던 국내 간판기업의 품질 관리에 비상등이 켜졌다.
국내 대기업들이 하나같이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하기 시작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난감해하는 경영자가 적지 않다. 이럴 때 참고할 만한 사례는 없을까. 한국 간판기업들이 동시에 겪고 있는 위기를 7년 전에 고스란히 겪은 기업이 있다. 일본 최대 기업이자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인 도요타는 2010년에 1000만대 리콜이라는 엄청난 위기를 겪으면서 경영진이 와해되고 그토록 자랑했던 조직력이 뿌리째 흔들릴 만큼 심각한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결국 위기를 극복해냈고 지난해에는 일본 기업 역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며 ‘왕의 귀환’을 선포했다.
그 중심에는 지난 2009년 위기 한복판에서 도요타 사장에 취임한 창업가문 3세 경영인 도요다 아키오의 리더십이 있었다. 아키오 사장 취임 이후 지난 7년간의 고민과 변화, 또 그 변화의 집약판으로 올 4월 단행한 전사 조직개편에는 한국 기업이 지금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모든 답이 들어 있다.
위기 극복 1 |
1등 욕심에 늘린 과잉시설
조직재배치로 1년 만에 해결
2000년대 중반 도요타는 자기 실력만 믿고 700만대 수준이었던 연간 생산능력을 3년 만에 1000만대까지 늘리면서 미국 GM을 누르고 세계 1위가 되겠다는 야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300만대 생산과잉이 발생했다. 자동차는 단가가 높기 때문에 수십만대의 재고만 발생해도 자금 회전에 큰 문제가 생긴다.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 모든 게 비용으로 돌아오게 된다. 300만대 생산과잉은 제아무리 도요타라고 해도 견뎌내기 어려운 시련이었다. 그러나 도요타는 국내와 전 세계 공장의 복잡한 생산라인을 불과 1년 만에 모두 줄이고 재배치함으로써, 최소 몇년은 도요타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했던 문제를 해결했다.
지나친 물량확대가 낳은 참사는 도요타에 많은 교훈을 남겼다. 2009년 취임한 아키오 사장은 자동차를 얼마나 많이 만드는지에 신경 쓰는 ‘숫자 경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도요타의 기본 목표이자 존재 가치인 ‘고객에게 더 좋은 차를 제공한다’는 것, 즉 기본으로 돌아갔다.

위기 극복 2 |
전 세계에서 1000만대 리콜 요구
반년 만에 수리 끝… 고객 신뢰 얻어
2009년 8월 신형 렉서스 ES350을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한 일가족이 응급 신고전화 911에 남긴 급박한 목소리가 2010년 초 미국 TV 방송에 공개됐다. 캘리포니아 고속도로 순찰대 소속 마크 세일러가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부근 고속도로에서 부인·딸·처남과 함께 시속 80마일(50㎞)로 렉서스를 몰고 가던 중 속력이 190마일(약 120㎞)까지 치솟은 것이었다. 결국 4명 모두 숨졌다. 사상 초유 도요타 리콜 사태의 시작이었다.
가속페달 결함 문제의 심각성은 리콜 자체가 아니라 리콜이 확대되는 ‘과정’에 있었다. 도요타가 처음에는 결함 가능성을 부인하다가 조사당국과 언론에 의해 구체적 결함이 알려진 뒤에야 떠밀려 조치를 취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2010년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도요타 차량 1000만대의 리콜이 이뤄졌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였다.
이후 도요타가 고친 것은 결함이라는 ‘하드웨어’만이 아니었다. 내재적 원인 즉 ‘소프트웨어’ 문제를 찾아 하나하나 개선했다. 부품 개발과정에서 본사와 부품제조사, 일본과 해외 조직 사이의 책임·권한을 분명히 해 의사소통이 잘못돼 문제가 커지는 일을 줄여 나갔다. 또 본사 홍보 조직을 아키오 사장 직속으로 바꿔,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최고경영진을 중심으로 빠른 위기 대응책과 홍보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했다. 결국 도요타는 리콜 위기가 터진 지 불과 반년 만에 회사를 안정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위기 극복 3 |
15년래 최악 엔고… 창사 후 첫 적자
기업 장점 활용해 1년 만에 흑자로
도요타는 2007년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낸 직후 미국발 금융위기, 글로벌 확장경영에 따른 과잉생산, 환율악화 등 3중고(重苦)를 겪으면서 2008년 4600억엔의 영업적자를 냈다. 도요타가 영업적자를 낸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었다. 그것도 사상최대 이익을 낸 바로 그 다음 해에 벌어진 일이었다.
환율도 도요타에 매우 불리했다. 그러나 도요타는 불과 1년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기업의 근본 체질이나 경영시스템, 품질·성능이 큰 손상을 입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영업이익 자체는 잘나갈 때의 10분의 1도 안 됐지만, 사상최악의 위기로 대규모 적자 상황에 놓인 지 불과 1년 만에 다시 흑자로 반전하는 믿기 어려운 회복속도에 업계는 경악했다.

위기 극복 4 |
동일본 대지진 후 백업 체제 구축
구마모토 지진은 2주 만에 복구
도요타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내 생산·조달 체계가 무너지는 대재난을 맞았다. 2011년 2월 가동한 미야기현 신(新)공장이 궤멸적 피해를 입었다. 미야기 공장은 ‘소형차 수출기지’로 삼기 위해 만들어진 도요타의 전략적 거점이었다. 아키오 사장이 가동상황을 직접 챙길 만큼 중요했지만, 가동 한 달 뒤인 3월 11일 지진으로 파괴된 것이었다. 미야기 공장을 발판으로 재도약하려던 도요타는 다시 추락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이번엔 위기 대응이 아주 빨랐다. 아키오 사장은 고위 간부들에게 “현장에다 보고서 올리라고 하지 말고 직접 가서 듣고 바로 처리하라”고 얘기할 만큼 보고 문화를 혁파했다. 분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현장 인력이 상부에서 요구하는 각종 보고서 만들다가 일을 그르쳤던 1000만대 리콜 때의 교훈이 준 학습효과였다. 결국 아키오 사장 지휘 아래, 석달 만에 피해를 모두 복구하고 전 생산시설을 정상화할 수 있었다.
도요타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부품공장 전체를 대상으로 대재난 발생 시의 비상 복구 체제를 다시 정비했다. 이때 만들어진 재난 백업 체제는 2016년 4월 구마모토 지진 때 빛을 발했다. 당시 지진으로 도요타의 고급차 주력 공장인 규슈 공장이 멈춰 섰다. 일본 내 도요타 공장 대부분에 부품을 공급하는 구마모토의 부품회사 공장이 부서지면서 일본 내 16개 전 공장 가운데 15곳의 가동이 중단됐다. 그러나 이미 훈련을 마친 도요타는 지진 발생 2주 만에 전 공장을 재가동하는 괴력을 보였다. 천재지변이 도요타에 내린 시련이 오히려 도요타를 단련시켰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위기 극복 5 |
경쟁자의 도전과 ‘복잡성’폭발
작업 변경과 조직 세분화로 해결
도요타는 직원 34만명의 일본 최대 제조업체로, 기본적으로는 하드웨어 중심의 회사였다. 하지만 1000만대 리콜이라는 초유의 위기를 겪고 난 뒤에 도요타의 모든 문제, 대기업병의 근원이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도요타가 단행한 것은 두 가지였다. 조직(기업문화)과 설계(제품문화)의 혁신이었다. 조직은 규모가 커짐에 따라 관료주의적으로 변해가는 게 일반적이다. 혁신의 상징이던 노키아가 애플의 아이폰 한 방에 무너진 것도 노키아가 막판에 관료주의 집단으로 변질됐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래서 도요타는 조직이 어떻게 초심을 잃지 않고 제품중심, 고객중심의 풍토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그 연구 결과를 실행에 옮겼다. 즉 직원들에게 말로 해봐야 아무 소용없고, 초심을 발휘할 수 있는 조직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도요타 경영진은 깨달았다.
도요타가 올 4월 신체제 개편을 통해 회사를 7개의 개별 사업조직인 컴퍼니로 쪼개 단기적 목표의식을 강하게 부여하고, 회사의 장기적 전략수립과 연구개발을 전담하는 조직을 독립시켜 권한을 강화한 것은 조직원들의 동기와 의지를 살리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었다. 도요타가 회사를 7개로 쪼갠 것은 현대중공업이 11월 15일 자사를 6개의 회사로 쪼개 독립경영을 하겠다고 발표한 것으로도 연결된다. 매출액 29조원, 종업원 2만3000명의 ‘공룡’ 현대중공업이 6개의 독립 법인으로 쪼개져 덩치를 줄이고, 사업별 독립회사 경영체제로 전환해 각 회사별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제품문화 즉 ‘설계’의 방식을 뜯어고친 것이었다. 자동차의 기능이 복잡해지고 각종 전자장비가 덧붙여지면서 도요타의 개발·생산 프로세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복잡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도요타는 세계시장에서 100여종의 자동차를 생산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엔진 종류만 800가지에 달한다.
자동차에는 3만개 부품이 들어가기 때문에,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한다면 제아무리 조직력이 강한 도요타라고 해도 감당하기 어렵다. 복잡성이 어디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도요타 리콜 사태도 이런 복잡성을 해결하지 못해 발생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도요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동차 설계를 단순화시키는 거대한 계획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해결책은 독일 폴크스바겐이 추진해 온 ‘레고블록형 설계 전략’ 즉 자동차의 공통 부품을 레고블록처럼 만들어 끼워 맞추는 방식이었다. 도요타는 2012년 자사 버전의 레고블록형 설계 전략인 ‘TNGA(Toyota New Global Architecture)’를 처음 공표했다. 2013년 3월 일본 도요타 본사에서 아키오 사장이 목표로 내건 ‘더 좋은 차 만들기 설명회’를 열면서,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TNGA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설명했다. 전략의 키워드는 단 하나, ‘단순화’였다. 하드웨어 중심의 대기업이라 해도 위기를 극복하려면 결국 소프트웨어의 혁신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위기 극복 3대 키워드… 리더·설계·환경

도요타는 지난 7년간의 위기 극복 과정에서 리더·설계·환경이라는 세가지 키워드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그리고 세 가지 키워드에 대해 제2 창업 수준의 혁신을 실행해나갔다.
도요타가 올 4월 신체제를 발표하면서 도입한 컴퍼니제는 결국 능력 있고 의지가 있는 리더를 뽑기 위한 것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리더의 실력을 끊임없이 검증하기에 최적화된 조직체계를 찾다 보니 컴퍼니제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로, 도요타의 TNGA는 단순히 설계 혁신이 아니라 설계와 생산, AS까지 포괄하는 통합 설계, 거대한 계획의 수립이라고 할 수 있다. 기계적인 부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소프트웨어적인 부분, 설계의 사상과 철학에 관한 문제다. 갤럭시노트7의 리콜 문제도 제품 설계는 잘했더라도 통합설계와 아키텍처 구축의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 이는 국내 기업들이 앞으로 계속 첨단제품 개발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면서 맞닥뜨리게 될 문제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도요타가 2009년 1000만대 리콜이라는 심각하고 거대한 문제에 맞닥뜨린 뒤, 이를 통합설계와 아키텍처, 그리고 2016년 ‘신제체’라는 조직 혁신을 통해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앞으로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가 계속해서 맞닥뜨려야 할 문제와도 직결돼 있는 것이다. 세 번째로, 도요타는 조직원의 열정을 이끌어내 위해서는 조직의 환경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부터 뛰어나 스스로 열정을 발휘하는 소수의 직원은 환경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기업의 직원 다수는 그렇지 못하다. 이들에게 ‘왜 너는 그 사람처럼 열정을 발휘하지 못하느냐’고 채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조직 전체의 열정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조직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요타가 공장에서 자동차를 만들어야 하는 직원을 제외한 사실상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재택근무제를 도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회사가 꼭 붙잡고 싶은 훌륭한 직원이 집안 사정 때문에 그만두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조직원의 충성과 의욕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