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스버러 참사는 1989년 힐스버러 스타디움에 수용인원 이상의 사람들이 몰려 발생한 사고로, 96명의 사망자를 냈다. 당시 축구팬들은 이 참사에 대한 묵념의 의미로 경기 시작 전 리버풀 응원가인 ‘유 윌 네버 워크 얼론’을 불렀다. <사진 : 블룸버그>
힐스버러 참사는 1989년 힐스버러 스타디움에 수용인원 이상의 사람들이 몰려 발생한 사고로, 96명의 사망자를 냈다. 당시 축구팬들은 이 참사에 대한 묵념의 의미로 경기 시작 전 리버풀 응원가인 ‘유 윌 네버 워크 얼론’을 불렀다. <사진 : 블룸버그>

리버풀을 대표하는 음악에는 비틀스 외에 다른 것도 있다.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봤을 ‘유 윌 네버 워크 얼론(You’ll Never Walk Alone)’이다. 이 곡은 뮤지컬계의 명콤비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가 만든 뮤지컬 ‘회전목마’에 나오는 유명한 노래다. 가수 핑크 플로이드도 ‘피어리스(Fearless)’라는 자신의 곡에 이 노래를 삽입했다.

뮤지컬에서 주인공이 죽었을 때 주인공의 아이를 임신한 그녀를 위해 노래가 흘러나왔고 나중에 이 아이가 자라 졸업할 때는 졸업반 학생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노래로 등장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여러 졸업식에서 이 노래가 종종 사용된다.

이 노래가 리버풀에서 울려 퍼진 데에는 또 하나의 사연이 있다. 리버풀 사람들에겐 비틀스 만큼이나 축구가 중요한데 축구는 스포츠를 뛰어넘어 엄청난 자부심을 안겨준다. 리버풀 축구의 양대 산맥 리버풀 FC와 에버턴 FC는 잉글랜드 최고의 축구클럽으로 두 팀의 대결은 다른 어떤 팀과의 경기보다도 흥미진진하다. 두 팀의 자국 내와 유럽 내 우승경력도 각각 만만치 않다. 특히 밥 페이즐리 감독이 이끌었던 시대(1974~83년)의 리버풀 FC는 지구촌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축구클럽이었고 잉글랜드 축구역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 유럽 무대의 최정상에 군림했다. 그래서 리버풀 축구를 잉글랜드의 혼이라 부르는 데 망설임이 없다.

힐스버러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 <사진 : 블룸버그>
힐스버러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 <사진 : 블룸버그>


힐스버러 참사 희생자 추모곡

이렇게 영광의 시대가 계속되던 리버풀에 비극이 찾아오는데 바로 헤이젤 참사와 힐스버러 참사다. 1985년 서포터스 간의 폭력 충돌로 39명이 사망한 헤이젤 참사의 원흉이 리버풀 클럽을 응원하던 서포터들로 밝혀진 탓에 훌리건이 구속되고 잉글랜드 클럽들에도 중징계가 내려졌다. 사건의 계기였던 리버풀 클럽엔 ‘향후 7년간 국제 대회 출전 금지’ 조치가 내려지기까지 했다.

리버풀 클럽이 유럽 클럽 대항전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자 자국 대회의 열기가 뜨거워졌고, 이런 상황에서 1989년 힐스버러 참사가 터졌다. 리버풀과 노팅엄 포리스트 FA컵 준결승전이 열린 셰필드의 힐스버러 스타디움은 1600명 정원의 관중석을 두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 약 3000명의 관중을 입장시키는 바람에 경기 시작 5분 만에 철망이 무너지고 94명이 압사하고 766명이 부상당하게 된 것이다. 이 안타까운 사태가 수습될 때까지 리버풀 클럽은 경기를 치르지 않았고 라이벌 애버턴 클럽도 사망자들을 추모하는 스카프를 내걸었다. 나아가서 AC 밀란팀의 팬들이 레알 마드리드와의 유럽피안 준결승 경기에서 경기시작 전 리버풀 참사에 대한 묵념의 의미로 리버풀 응원가 ‘유 윌 네버 워크 얼론’을 부르기 시작했다.

“어둠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폭풍을 헤치고… 당신은 결코 홀로 걷지 아니할 테니.” 다시 들어보니 좋긴 좋다. 실제로 리버풀은 이 응원가로 전 세계 축구팬들을 다시 감동시켰다. 04-05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AC 밀란과 대결한 리버풀은 3 대 0으로 지고 있었다. 후반전에 나온 리버풀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팬들이 선택한 곡 역시 이 노래였는데 이에 힘을 얻은 선수들은 3골을 만회하고 극적인 승부차기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러한 전통이 여러 축구팀에 퍼졌고 리버풀뿐만 아니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AFC 아약스 클럽 서포터들도 이 노래를 응원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서포터스인 붉은 악마 역시 이 문구를 응원걸개에 넣었다.


올림픽 창시에 영감 준 리버풀

그러고 보니 리버풀은 생각보다 대단한 도시다. 우리가 오늘날 즐기고 있는 올림픽도 사실은 이 도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니. 리버풀은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을 재현하고자 1862년에서 1867년까지 매년 그랜드 올림픽 페스티벌을 개최했는데 피에르 드 쿠베르탕은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오늘날의 올림픽을 창시했다고 한다.

또 한 가지 1830년 ‘리버풀 앤드 맨체스터 레일웨이’를 개통해 그동안 물품만 운송하던 철도를 사람도 타고 다닐 수 있는 여행수단으로 만든 곳도 리버풀이다. 비틀스와 축구로 열기가 식지 않는 곳. 과격하고 열정적인 리버풀에겐 응원가 유 윌 네버 워크 얼론이 꼭 어울리는 것 같다. 그런데 왜일까? 오늘날 광화문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에게도 붉은 악마의 이 노래가 필요하게 느껴지는 건. 위로가 필요한 시간이다. 우리 모두에게.


▒ 박현주
보스턴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석사·전문연주자 과정, 고려대 문화콘텐츠전공 박사, 경희대·강남대 피아노 전공실기 강사,‘도시의 유혹에 빠지다’등 공연 콘텐츠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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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레시브 록

1960년대 후반 영국에서 발생한 록 음악의 하위 장르. 기존 록 음악에 복잡하고 화려한 화성을 도입한 음악을 가리킨다.

Plus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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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러시아가 낯선 관객들이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피아니스트 박현주, 문화평론가 이진원,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주역 유지연이 진행하는 토크를 통해 러시아의 문화·예술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공연장소는 세종M씨어터, 티켓 가격은 R석 8만원, S석 6만원이다.

☎ 02-587-70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