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1월 세계경제포럼(WEF) 의제로 채택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기업 차원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산업혁명이란 기술혁신에 기반한 경제·사회구조의 획기적인 변화로, 증기기관 발명으로 기계를 통한 생산이 시작된 1차 산업혁명(1784년), 전기 에너지에 의해 대량생산이 본격화된 2차 산업혁명(1870년), 컴퓨터에 의한 생산자동화에 기반한 3차 산업혁명(1969년)을 거쳐 초연결성∙초지능성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인간 노동력, 즉 근육의 기계화로 대변되는 이전 산업혁명과는 달리 4차 산업혁명은 뇌·신경·오감이라는 보다 고도화된 인간 지적 처리능력의 기계화이고 4차 산업혁명의 속도, 범위 그리고 경제·사회구조에 미칠 영향력 등으로 볼 때 이전 산업혁명과는 차원이 다르게 진행될 것이다.
미국·독일·일본 등 3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했던 국가에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쟁우위 확보를 위해 산업 인터넷(미국), 인더스트리 4.0(독일), 로봇 신전략(일본) 등 국가차원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경쟁력은 플랫폼 선점과 축적된 데이터의 진화에 있기 때문에 자칫 타이밍을 놓칠 경우, 후발주자로서 이를 따라잡기 매우 어렵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이른바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성장모델에 기반해 압축 경제성장을 했다. 이런 성장모델은 ‘선도자 우위(first-mover advantage)’의 특성이 강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선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때문에 국가와 기업차원에서 치밀한 전략과 선제적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다.
오해받는 4차 산업혁명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만큼 이에 대한 오해도 많은데, 오해의 원인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부분만 보며 전체를 이해하지 않는다’와 ‘자신의 입장에서 유리하게 해석한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현재 진행 중이고 더욱이 의미하는 내용의 폭도 넓기 때문에 주목하는 영역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어떤 이는 수단의 하나인 ‘공장 자동화’를 4차 산업혁명이라고 말하고, 또 다른 이들은 효과의 하나인 ‘대량 맞춤생산’을, 요소기술 중 하나인 ‘인공지능(AI)’을, 수집·분석 대상인 ‘빅데이터’를, 제조 수단인 ‘3D프린터’ 또는‘로봇’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정의한다. 물론 이런 용어들은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지만 일부분에 불과하다.
4차 산업혁명은 보는 사람의 입장(완성품·부품·제조장치 등의 제조사, 설계·제조·판매 등의 부서)에 따라 선입견이 생길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제조 대기업 경영자 A씨의 경우 “우리는 이전부터 공장자동화를 진행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우리 회사에서 이뤄지고 있고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며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한 공장자동화가 아닌 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AI 등에 기반한 지능형 공장(스마트 공장) 구축과 이를 위한 네트워크·표준화에 의의가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국내 공장관리자 B씨의 경우, 국내를 염두에 두고 “우리 회사는 생산성이 이미 충분히 높고 이 이상 비용효율화는 어렵다”고 말한다. 이는 4차 산업혁명이 중국·인도 등 신흥국에서의 공장전개나 업무제휴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설계·개발 부문 담당자 C씨는 “자사 공장 내의 IoT화는 이미 진행돼 데이터가 모이고 있고, 계열사와의 네트워크도 정비하고 있다. 우리 회사는 이미 데이터를 활용한 설계·개발을 실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계열사나 그룹 내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인터페이스를 지향한다. 자사 또는 그룹 내에서 추진되는 폐쇄적인 개념이 아니다.
IoT의 2가지 차원
IoT와 4차 산업혁명의 개념은 연결하는 사물(things)의 유형과 사물이 연결하는 단계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제품 또는 부품 단계 그리고 이들의 집합체인 업무프로세스 단계이다. 4차 산업혁명은 업무프로세스를 모듈화 또는 네트워크화하는 것으로,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선 IoT를 통해 연결된 사물의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
1 | 제품+네트워크 IoT
‘제품+네트워크(internet of products)’로 IoT를 보자. 여기에서 사물(things)은 제품(product)이다. 제품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제품 사용장소·가동시간·사용형태·부품의 상태와 같은 정보를 수집하고, 고객에게 제품을 판매한 이후에도 판매된 제품의 최적 활용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계 2위 건설기계 제조업체인 일본 코마츠(komatsu)의 ‘콤트랙스(komtrax)’이다. 콤트랙스는 코마츠가 판매한 건설기계 장비의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건설기계 장비의 각 중요 부분에 장착된 센서와 GPS, 통신시스템을 통해 장비의 유지보수(점검일 관리·오류파악·예방보전·고장 시 신속대응 등), 가동관리(가동상황·위치확인·각종 데이터 파악 등), 데이터 분석에 의한 에너지 절약 등 제품의 최적 활용을 지원한다.
건설기계 장비의 경우 고장으로 인해 가동이 안 되는 경우, 수리하기까지의 시간이 모두 손실이 된다. 코마츠는 건설기계 장비로부터 송신된 데이터를 분석해 적절한 시기의 점검, 오류 사전 감지, 고장 시 신속 대응 등 판매된 제품의 가동률 제고를 위한 부가가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제품이라는 ‘사물’의 스마트화(인터넷 연결을 통한 부가가치 증대, 차별화)라고 할 수 있고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제품에서 서비스로’의 대응전략이기도 하다.
2 | 업무프로세스+네트워크 IoT
제품 단계에서의 코마츠 전략은 순차적으로 범위가 넓어질 것이고, 이는 ‘업무프로세스’ 단계로 확대된다.
IoT가 심화되면서 사물은 제품·부품 등 하나의 요소가 아닌 기기·제조장치의 집합체로, 업무프로세스 전체를 네트워크화(internet of processes)하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업무프로세스 내에서 사용되는 기기·제조장치, 부품 등이 각각 인터넷으로 연결돼 전체적으로 업무프로세스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업무프로세스의 IoT화야말로 4차 산업혁명이 지향하는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업무프로세스 IoT화가 진전되면 최종적으로 모든 프로세스가 연결되고 필요한 데이터가 관계 주체에 공유된다. 제조업을 예를 들면, 제품 수명주기 관리(PLM), 공급망 관리(SCM)의 개별 프로세스가 서로 연결돼 조달·제조·재고관리·원가관리·판매·재무관리·시장동향 등에 대한 정보가 이를 필요로 하는 모든 관계자에게 공유되는 것이다.
제품 수명주기 관리는 제품기획·설계에서 판매·유지보수에 이르는 과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IoT에 기반한 ‘제품의 서비스화’로 판매 후 고객의 제품 이용현황이나 제품 가동상태를 파악하고,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시장 수요동향 분석을 통해 기존 제품의 디자인·기능 개선이나 신제품·서비스 개발로 연결하는 것이다.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
1 | 업무프로세스의 ICT화
센서와 네트워크에 의해 이전에는 얻을 수 없었던 업무프로세스 전체에 대한 디지털 데이터를 수집·분석할 수 있게 되면 지금까지 사람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영역에서도 IoT가 가속화된다. 경험과 직관, 이른바 ‘암묵지(暗默知)’에 의존했던 현장의 지혜(노하우·숙련된 기술)가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네트워크화로 인해 데이터 확보·해석이 용이해진다. 이는 제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의료, 유통·소매, 농업 등 다양한 산업에도 나타나고 기존 경쟁력의 원천을 파괴할 것이다.
현장의 우수한 장인기술로 품질 100의 물건을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원가가 100이 들었다. 그런데 ICT를 이용해 품질은 80이지만 원가가 50이 들었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품질 측면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신흥국에선 저렴한 가격이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이다. 비약적으로 증대하는 신흥국의 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에 걸쳐 숙련공을 기르는 방식으로는 규모와 속도 면에서 대응하기 어렵다. 결국 ICT의 활용이 불가피하다.
생산능력·규모를 확장하기 위해선 현장 기술의 데이터화와 사이버 공간상의 재현을 노리는 4차 산업혁명으로의 이행이 필요하다. 추후 기술 진보와 데이터 축적으로 인해 장인기술 수준인 100의 품질을 80의 원가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2 | 현장주의 경영방식의 붕괴
기존 경쟁력의 원천이었던 현장의 암묵지는 디지털 데이터화돼 본부기구(본사 또는 마더공장)에 집약되는데, 업무시스템 운영에 대한 노하우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본사와 현장 간의 권한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미국 기업은 본사 집권적 성향이 강하고 현장 인력의 이직이 많기 때문에 현장 업무프로세스를 최대한 매뉴얼로 형식화해 업무를 수행한다. 한마디로 ‘현장은 지시대로 움직이면 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수직통합적이고 현장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과 일본 기업은 4차 산업혁명으로 비롯되는 기업조직 및 본사와 현장 간 권한에 대한 검토가 쉽지 않다. 현장 수뇌부가 있는 분산형 시스템에서는 본사가 매뉴얼을 작성하고 개별로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발생하는 문제를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고민하고 해결방법을 찾는다. 이런 암묵지는 일반적으로 ‘형식지(形式知)’로 돼 있지 않기 때문에 ICT를 도입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4차 산업혁명은 이런 현장의 지혜를 디지털화하는 동시에 각종 장치·기기나 컨트롤러로부터 얻은 데이터를 본사 차원에서 데이터베이스화해 다른 현장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한다. 현장 업무프로세스에 대한 지식은 암묵지에서 형식지화되며 현장 부문에서 본부기구로 이동한다. 물론 업무프로세스 관련 노하우와 생산기밀 등은 업무프로세스 모듈 안에 블랙박스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지적 재산의 외부 유출 없이 신흥국에서의 공장전개나 해외 위탁공장에서의 생산 등 글로벌 수평분업이 수월해진다.
3 | 업무프로세스 모듈화
설계·제조 등 각 업무프로세스 모듈은 분리·독립이 가능하기 때문에 패키지화해 서비스로 타기업에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수한 폐기물 처리, 화학 플랜트 주위 환경오염 방지 등에 대해 탁월한 노하우와 프로세스를 보유하고 있는 화학기업의 경우, 플랜트의 가동상황 모니터링, 관련 데이터 수집과 폐기물 처리, 환경 대응 업무 프로세스 등을 모듈로 패키지화해 환경문제로 고민하는 신흥국 기업에 제공할 수 있다.
독일 지멘스가 대표적이다. 지멘스는 중국 BMW 브릴리언스의 공장 운영 서비스를 맡고 있다. BMW 브릴리언스는 BMW와 중국 화신자동차의 합작사다. 현지 작업인력은 제어를 담당할 뿐 BMW의 전 차량을 하나의 생산라인으로 제조해 99% 이상의 높은 가동률과 고품질의 생산성을 달성하고 있다. 이는 제조 프로세스를 서비스업으로 제공하는 것이며 지멘스는 이외에도 발전업무에 대한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현장은 본부기구의 지시대로 움직이면 되고, 데이터 분석을 통해 얻어진 지적 재산은 외부 유출 없이 본부에서 독점할 수 있는 것이다.
신흥국의 경제성장과 부유층·중간층 수요의 비약적인 확대에 대해 자사의 역량만으로 대응하려 하면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선 신흥국 기업과의 협력이 필수인데 이런 경우 노하우 등을 포함한 지적 재산이 유출될 수 있다. 여기서 4차 산업혁명은 신흥국에서 생산거점의 급속한 확대를 낮은 리스크로 실현하는 수단이 된다. 자사의 핵심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확장성(생산능력·규모)을 확보하기 위해선 타기업에 개방적으로 제공하는 부분과 자사에서 폐쇄적으로 보유해야 하는 부분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오픈 앤드 클로즈(open and close) 전략’이 필요하다. 바로 4차 산업혁명을 실현하는 진정한 목적이다.
암묵지(暗默知) 학습과 경험을 통해 개인에게 체화돼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 기술을 말한다. 문서 등에 의해 표출되는 형식지(形式知)와 상대되는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