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요타자동차가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사장 직속으로 전기차 전담 조직을 만들고 공격적인 투자 계획을 내놨다. 도요타는 그동안 전기 배터리를 보조 동력으로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수소연료전지차(수소차)를 미래 자동차로 내세웠다. 이번 전기차 전담 조직 설치는 도요타의 방향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자동차 업계는 배경과 향후 행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도요타는 12월 1일 전기차 전담 조직인 ‘EV(전기차·Electric Vehicle) 전담 기획실’을 도요다 사장 직속으로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실장은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 4세대 모델 개발에서 수석 엔지니어를 맡았던 도시마 코지(豊島浩二)다. 그 외에 도요타자동직기·아이신정기·덴소 등 계열사에서 각각 1명씩을 파견해 4명으로 구성됐다. 이들 계열사는 부품·산업차량·공장자동화 설비 등을 생산한다.
도요타는 EV 전담 기획실을 일종의 사내 벤처로 운영할 방침이다. 도요타 사장은 “전기차 전문 벤처기업이나 마찬가지인 조직이 될 것”이라며 “속도감 있는 업무 수행을 위해 독립성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마 실장을 비롯해 계열사에서 파견된 임직원 3명 모두 전기차 개발과 관련된 경험을 갖고 있다.
“수소차보다 전기차 충전소 더 빨리 늘 것”
도요타는 그동안 친환경 자동차로 하이브리드차와 수소차를 내세웠다. 2015년 10월 발표한 ‘도요타 환경 챌린지 2050’에서 도요타는 2050년까지 자사 생산 자동차의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을 2010년 대비 10분의 1로 줄이기 위해 수소차와 하이브리드차 판매를 늘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지만, 전기차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수소차 콘셉트 차량 ‘미라이(未來)’ 발표 등에서 “전기차는 미래 자동차 시장에서 주류 모델이 되기에 부족하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발표를 계기로 앞으로 도요타는 수소차와 함께 전기차도 차세대 친환경차로 내세우게 됐다. 도요타는 2017년 1월 수소 연료 전지 버스 판매에 나서고, 수소차 개발도 계속한다. 하지만 전기차 상용 제품이 출시되면 도요타 브랜드를 단 전기차 판매가 수소차 판매를 앞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본 자동차 업계의 전망이다. 실제로 한 도요타 임원은 “수소차나 전기차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충전소가 곳곳에 설치돼야 하는데, 참가 회사가 많은 전기차 쪽이 충전소 정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도요타가 사내 벤처 형태로 전기차 전담 조직을 꾸린 이유는 개발 속도를 끌어올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도요타의 신차 개발 주기는 27개월(2년 3개월)로 자동차 업계에서 빠른 편이다. 하지만 현재 전기차 경쟁에 뛰어든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차 개발 주기를 20개월 안팎으로 잡고 있다.
도요타가 개발 속도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또 다른 이유는 미국·중국·독일 등이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순수 전기차의 의무 판매 비율을 대폭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정부의 전기차 강화는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라는 목적 외에도 내연기관 자동차에 강한 일본 업체를 견제하고, 자국 전기차 회사를 육성하겠다는 산업정책적 동기도 강하다.
친환경 가술 앞선 도요타에 견제 움직임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2018년부터 자국에서 연 5만대 이상 자동차를 판매 또는 수입하는 회사들이 판매량의 일정 비율을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차량(ZEV·Zero Emission Vehicle)으로 채우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상 전기차 의무 판매 제도다. 공업정보화부의 초안에는 의무 판매 비율을 2018년에는 판매량의 8%로 시작해서 2020년에는 12%로 늘리도록 했다.
중국 정부의 정책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2018년부터 시행되는 전기차 의무 판매법을 모방한 것이다. 캘리포니아주는 지역 내에서 연간 6만대 이상을 판매하는 회사는 전체 판매량의 4.5%를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차량으로 채우도록 했다. 하이브리드차의 경우 판매량의 일부만 전기차 판매 실적으로 집계된다. 이 때문에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가 주력인 도요타 입장에서 순수 전기차를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일본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과 중국 정부가 규제를 활용해 친환경 기술에서 앞서 있는 도요타의 발목을 잡았다는 게 업계 통설”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독일도 폴크스바겐이 2025년까지 전기차 30개 차종을 내놓고, 전체 판매량의 20~25%를 전기차로 채울 것이라고 6월 발표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10월 독일 연방 상원은 2030년까지 자국에서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 금지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냈다. 이에 대해 도요타 최고위 임원은 “많은 사람들이 현재 내연기관 자동차가 좋지 않은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지도 사업에 뛰어든 도요타
도요타는 12월 1일 전기차뿐만 아니라 차량용 전자지도(내비게이션) 사업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주차장 공유 서비스 등 자동차와 연관된 사업에도 뛰어든다.
먼저 도요타는 현재 자사 고객들을 대상으로 월정액으로 서비스하는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형태로 구글 플레이, 애플 앱스토어 등에서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후발 주자’인 도요타가 차별화 요소로 내세우는 것은 자사 자동차를 통해 수집한 방대한 데이터이다. 도요타는 2020년까지 자사 자동차에 사물인터넷(IoT) 센서와 통신 단말기를 탑재하고, 교통 데이터를 수집할 계획이다.
스타트업과 연계된 서비스도 탑재했다. 개인들이 보유한 여유 공간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차 공간으로 내주는 주차장 공유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 아키파(akippa)와 제휴해, 내비게이션 서비스 이용자들이 편리하게 주차공간을 찾아갈 수 있도록 했다.
토모야마 시게키(友山茂樹) 전무는 “모빌리티 서비스(자동차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것) 분야에서 플랫폼 회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