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 버클리와 MIT가 빠른 속도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놓고 특허 전쟁을 펼치고 있다.
UC 버클리와 MIT가 빠른 속도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유전자 가위 기술을 놓고 특허 전쟁을 펼치고 있다.

‘세기의 과학 특허 전쟁의 승자는 누가 될까?’

지난 12월 6일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의 미국 특허청사 1층 청문회장에선 바이오테크놀로지 기업, 특허 관련 변호사, 과학 기자 1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 UC 버클리와 MIT를 대리하는 변호인들이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논쟁의 핵심은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 기술의 지적 재산권이 누구에게 있는가’였다. 제이콥 셔코우 뉴욕대 법대 교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의 활용 분야가 워낙 광범위해 과학 분야의 사상 최대 특허 분쟁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승자는 수십억달러의 특허료와 함께 엄청난 명예를 거머쥘 것이란 뜻이다.


“신청은 UC 버클리, 특허는 MIT가 선점”

‘21세기 생명과학 분야 최고의 발명’으로 꼽히는 ‘크리스퍼/캐스9’ 기술은 특정 DNA에만 결합하는 유전물질인 RNA와 특정한 DNA를 잘라낼 수 있는 효소를 결합한 유전자 수정(editing)기술이다. 흔히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불린다. 암·알츠하이머·빈혈 등 유전병, 장기이식·에이즈 등 난치병 치료, 식물 유전자 교정을 통한 식량 문제 해결, 멸종 동물 복원 등 의학·생명공학·식량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명문 대학의 특허 전쟁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Doudna·53) UC 버클리 생화학과 교수는 엠마뉴엘 샤펜티어(Emmanuelle Charpentier) 막스 프랑크 질병연구소 연구원과 함께 크리스퍼/캐스9의 사용 기전을 밝혀내고 그해 ‘사이언스’ 8월호에 논문을 발표했다. 다우드나 교수팀은 이듬해 3월 특허를 신청했다. 비슷한 연구를 진행하던 펭 장(Feng Zhang) MIT 연구팀은 2013년 10월 특허를 신청했다.

특허 신청은 UC 버클리가 빨랐으나 특허 획득은 MIT가 먼저 했다. MIT는 특허 신청 6개월 만인 2014년 4월 특허를 받았다. 중요 발명일 경우 속성으로 특허 심사를 하는 ‘특별 리뷰 프로그램’을 이용한 덕분이었다.

UC 버클리는 결국 2015년 4월 “MIT의 특허는 무효”라며 소송을 냈고, 미국 특허청이 이를 받아들여 재심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기의 특허권은 누가 가져갈까. 관련 전문가들은 특허청 결정은 내년 1월 말 또는 2월쯤 내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어느 한쪽이 완승하기는 어렵다는 전망도 있다. 로버트 쿡디간(Robert Cook-Deegan)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두 대학 모두 부분적인 특허권을 인정받아 반쪽짜리 승자, 반쪽짜리 패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최종 결과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누가 지든 패한 쪽이 항소할 가능성이 높아 몇년 걸릴 가능성이 높다.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UC 버클리와 미국 동부 사학을 대표하는 MIT가 체면 불구하고 특허전을 벌이는 이유는 수십억달러로 예상되는 특허 수입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마켓앤드마켓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 관련 시장이 2021년 55억달러(6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관련 기업 나스닥 속속 상장 , 투자 급증

두 대학의 핵심 연구자인 다우드나 교수와 장 교수는 “학문 연구자에게는 특허료를 받을 생각이 없다”고 공언했지만 기업들은 사정이 다르다. 크리스퍼 유전자 기술 기업들이 속속 나스닥에 상장하고 거액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크리스퍼 테라퓨틱스는 지난 10월 말 나스닥에 상장, 5600만달러의 자금을 모았다. 크리스퍼 테라퓨틱스는 독일 제약사 바이엘로부터 기업 상장과 별도로 350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미국의 에디타스 메디신, 인텔리아 테라퓨틱스도 올해 초 나스닥에 상장했다. 인텔리아 테라퓨틱스는 1억800만달러, 에디타스 메디신은 9440만달러의 자금을 유치했다.

바이엘, 노바티스, 아스트라제네카 등 글로벌 제약회사들의 관련 투자액이 20억달러가 넘는다고 제약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이 발명된 지 4년에 불과하지만 인간 질병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에 돌입했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하버드대 연구팀은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 돼지 유전자 중 사람에게 면역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유전자만을 잘라내는 것에 성공했다. ‘사이언스’는 “돼지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이종(異種) 간 장기이식의 길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미국 ‘샌가모 바이오사이언스’는 혈우병 유발 유전자를 교정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 연구팀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근육 발달을 억제하는 유전자를 제거, 근육 양을 2배 이상 키운 개량 돼지를 만들었다. 황쥔주 중국 중산대 교수는 지난해 4월 인간배아에서 혈관질환인 ‘지중해성 빈혈’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잘라내는 것에 성공했다. 이론적으로 인간 배아의 유전자를 수정해 자궁에 착상시키면 빈혈 등 특정 질환에 걸리지 않는 아이를 만들 수 있다. 황 교수는 ‘네이처’가 선정한 ‘2015년 과학 인물 1위’로 꼽혔다.

‘네이처’는 지난달 15일 중국의 루 유(Lu You) 쓰촨대 연구팀이 폐암 환자에게 ‘유전자 가위’로 변형한 면역세포를 주입하는 임상시험을 통해 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칼 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박사는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가 우주 개발 전쟁을 촉발한 것처럼 중국의 임상시험은 생명과학·의학 분야의 기술 전쟁을 촉발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Plus Point

특허 소송 주역 다우드나 교수

21세기 생명공학 연구 패러다임을 바꾼 핵심 연구자이자 ‘세기의 특허 재판’의 중심에는 다우드나 교수가 있다. 다우드나 교수는 “생명의 비밀을 풀었을 뿐 아니라 생명 조작의 가능성도 열었다”는 평가와 함께 노벨상 수상이 당연시되고 있다. 특허소송에서 이기면 수십억달러의 부를 거머쥘 수도 있다.

1963년 워싱턴 D.C. 태생인 다우드나 교수는 하와이대 힐로캠퍼스 미국 문학 교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하와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와이의 열대 밀림을 탐험하며 과학에 흥미를 느꼈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선물한 왓슨의 ‘DNA 이중나선 모형’을 “손에서 내려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황홀했다”고 말했다.

1985년 캘리포니아 포모나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1989년 하버드대에서 노벨상 수상자인 잭 조스택(Jack Szostak) 교수 지도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콜로라도 볼더대에서 역시 노벨상 수상자인 톰 체크(Tom Cech) 교수와 함께 연구한 뒤 1994년 예일대 교수가 됐다. 2002년 이후 UC 버클리에서 재직 중이며 현재 버클리 ‘리카싱 석좌 교수’로 있다.

다우드나 교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발견한 공로로 ‘타임’ 선정 ‘100대 영향력 있는 인사(2015년)’에 선정되는 등 생물학, 화학, 의학 관련 주요 상을 휩쓸고 있다. 예일대 교수 시절 네 살 어린 대학원생 제자였던 제이미 케이트(48) UC 버클리 교수(생화학)와 만나 결혼, 현재 아들(13) 하나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