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들 광고 좀 하겠다.” 2010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가전전시회(CES)에서 두 딸의 손을 꼭 잡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한 말이다. 당시 이 회장은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삼성에버랜드 전무와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제일기획 전무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 나섰다.
2010년 말 삼성그룹 인사에서 이부진 전무는 호텔신라 사장에 올랐고, 이서현 전무는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때만 해도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은 ‘포스트 이건희 시대’에서 각각 호텔·화학 부문과 패션·광고 부문을 맡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입원한 이건희 회장이 현재까지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고,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그룹 승계 구도가 구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두 딸의 역할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모양이다. 2016년 현재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 외에 삼성물산 리조트건설 부문 경영전략담당 사장과 상사 부문 고문을 맡고 있고, 이서현 사장은 삼성물산 패션 부문을 이끌고 있다.
삼성그룹은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면서 삼성물산을 사실상 지주회사로 한 지배구조를 만들었다. 동시에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경영 승계 구도의 틀을 구축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물산의 최대주주(17.23%)다. 삼성물산 지분 5.51%를 보유한 이부진 사장보다 훨씬 많다. 특히 삼성의 호텔 사업을 따로 떼어내 독립적으로 경영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부진 사장은 현재 호텔신라 주식을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재계에선 이부진 사장이 ‘언젠가는 호텔신라 지분을 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선 삼성물산 지분을 팔고 호텔신라 지분을 살 수 있지만 아직은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다. 현재로선 삼성물산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부진 사장에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의 시가총액은 24조5649억원이고, 이부진 사장이 보유한 지분 5.51%의 평가액은 1조3535억원에 달한다. 호텔신라의 시가총액은 2조95억원이다.
이건희 회장 와병에 두 딸 역할 줄어
전문가들은 삼성물산을 분할하면서 계열사 간 지분 교환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CJ(당시 제일제당)가 삼성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사례를 보면,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아내 손복남 고문이 보유하고 있던 삼성화재 지분을 CJ의 지분과 맞바꾸면서 가능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완료되면 이부진 사장이 삼성물산 지분을 (이재용 부회장에게) 넘길 수 있는데 그에 대응하는 뭔가를 받을 것”이라며 “호텔신라와 관련된 삼성물산의 사업부를 떼어내 호텔신라와 함께 경영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동시에 호텔신라 지분도 매입한다.
현재 삼성물산은 건설·상사·패션·리조트·급식 식자재 유통·바이오 등의 사업부로 구성돼 있다. 업계에선 이부진 사장이 리조트건설 부문 경영전략담당 사장을 맡고 있는 만큼 리조트, 급식 식자재 유통과 건설 부문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실 이부진 사장은 삼성그룹 내 호텔과 함께 화학 부문도 맡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삼성은 삼성종합화학·삼성정밀화학 등 화학 계열사를 한화와 롯데그룹에 매각했다. 그만큼 이부진 사장의 역할이 줄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 부문 사장 역시 언니인 이부진 사장과 마찬가지로 삼성물산 지분 5.51%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2013년 12월 제일모직 패션 부문을 삼성에버랜드에 넘겼고, 2014년 7월 삼성에버랜드를 제일모직으로 사명 변경했다. 이후 2015년 제일모직을 삼성물산과 합병했다. 2016년 3분기 누적 기준 삼성물산 패션 부문 매출은 1조3056억원으로, 삼성물산 총매출(20조1592억원)의 6.5%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삼성물산 패션 부문은 5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서현 사장이 가지고 있는 삼성물산 지분 5.51%는 그가 삼성그룹에서 패션 부문을 따로 떼어내 경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2002년 제일모직(현 삼성물산 패션 부문)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한 이서현 사장은 2009년 12월 제일모직 전무로 승진했다. 동시에 그룹 광고 계열사인 제일기획 기획담당 전무에 올랐다. 이후 이서현 사장은 제일기획 부사장(2010년), 사장(2013년)으로 승진했고, 재계에선 ‘포스트 이건희 시대’에서 삼성그룹의 패션·광고 부문을 맡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서현 사장은 2015년 12월 삼성그룹 인사에서 삼성물산 패션 부문 사장에 오르면서 제일기획 경영전략담당 사장에선 물러났다. 광고·패션 부문으로 예상됐던 그의 역할이 패션 하나로 줄어든 것이다. 더욱이 삼성은 제일기획을 해외 광고 회사에 매각하려고 했다.
이건희 회장 재산 상속도 관심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과 현금·부동산 등 재산을 이재용 부회장과 이부진 사장, 이서현 사장에게 어떻게 물려줄지도 그룹 승계 구도에서 중요한 포인트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전자(3.54%)·삼성물산(2.86%)·삼성생명(20.76%)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부진 사장이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주식을 물려받는다면, 호텔신라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 삼성생명은 호텔신라 지분 7.3%를 보유한 2대 주주다. 그러나 이부진 사장이 삼성생명뿐 아니라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삼성물산 등의 지분을 물려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재계의 일반적 관측이다. 이는 이서현 사장도 마찬가지다.
이재용 부회장과의 지분구조가 더 복잡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사장은 이재용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물려받는 주식에 상응하는 정도의 현금·부동산 등의 재산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크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의 아내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과 3남매 등 삼성 오너 가족이 모여 각자 경영할 사업 부문을 어떻게 분할할지 합의를 이룬 다음에 재산 상속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건희 회장 사후 삼성이 이재용-이부진-이서현으로 쪼개질 것은 분명하다. 언제가 될지는 예상하기 힘들지만 그것이 삼성의 전통이었고, 그렇지 않으면 분할 과정에서 남매간 다툼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