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4년 4월 23일, 도르곤에게 투항 의사를 밝힌 오삼계가 난공불락의 철옹성이던 만리장성 산해관의 정문을 열었다. 그러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10만의 청(淸)군이 진입을 개시해 만리장성을 넘었고, 그로부터 불과 한 달 만에 북경을 점령했다. 이로써 중원은 원(元)이 고비 사막 북쪽으로 밀려난 후 270여년 만에 다시 이민족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이자성의 난으로 인해 명(明)은 이미 붕괴된 상태였기에 청의 북경 점령은 싱거울 정도로 빨리 끝났다. 하지만 청은 지난 20여년간 만리장성 남쪽으로 내려오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었다.
청 태조 누르하치나 태종 홍타이지 모두가 만리장성을 최후의 보루 삼아 뛰어난 방어전을 펼친 명의 명장 원숭환에게 좌절을 맛봤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벽은 소수의 전력으로도 다수를 막아낼 수 있는 뛰어난 군사 시설이다. 특히 서쪽 끝 옥문관에서 동쪽 끝 노용두까지 약 6000㎞에 이르는 만리장성은 인류가 만든 모든 방어물의 백미라 할 만하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만리장성의 극히 일부라 할 수 있는 산해관이 뚫리면서 제국은 멸망했다. 만리장성이 완벽한 보호막은 아니었다.
사실 이것은 17세기에 처음 벌어진 일이 아니고, 그 이전에도 수시로 반복돼 온 역사였다.
이미 기원전 8세기경, 춘추시대부터 장성을 축조했을 정도로 한족은 북방의 유목민족을 막아내기 위해 애써왔다. 처음 대륙을 통일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진시황조차도 두려움을 느꼈을 만큼 그들은 위협적인 존재였다.
만리장성도 막지 못한 패망
하지만 그렇게 오랜 세월 국력을 쏟아부어 축성한 만리장성이 제국을 지켜내지는 못했다.
흉노·돌궐·선비·거란·여진·몽골·만주족 등이 수시로 만리장성 이남으로 영향력을 확대했고, 경우에 따라 대륙 전체를 지배한 시절까지 있었다. 따라서 중국 역사에서 만리장성이 방어 시설로 뛰어난 위력을 발휘했던 경우는 정작 많지 않았다.
물론 유목민족이 중원으로 남하하려 했을 때 만리장성은 상당히 돌파하기 어려운 장해물이기는 했다. 하지만 최전방이라 할 수 있는 이곳이 뚫려버리면 그다음은 크게 문제가 없다시피 했다. 오늘날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취급될 정도로 어마어마하지만, 앞에 소개한 사례처럼 만리장성은 일각이 무너지면 그 효과가 즉시 사라져버렸다.
지배자나 민족이 바뀌어도 동양사의 전범인 24사(史)를 이어 써내려갔을 만큼 중원을 차지한 이들은 과거의 역사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군사적으로 투입 대비 효과가 미미한 만리장성에 계속 매달리는 우매한 행위를 반복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만리장성을 돌파해 중원을 차지한 이민족들도 마찬가지였다.

현실에 안주하며 사라진 도전의식
분명히 그들도 돌파든 우회든 아니면 상대방과 공모를 통해 문을 열어 주는 것처럼 만리장성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많고, 주력 대부분을 거대한 성벽에 배치해야 하기에 일단 이곳이 뚫리면 다음 방어 전략을 구사하기 힘들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눈에 보이는 만리장성에만 계속 의지하다가 화를 자초했다.
그런데 이는 현대 서양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보편적 사례이기도 하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지만 당대 20~30대 남성의 70% 이상이 사상하는 혹독함을 경험한 프랑스는 앞으로 예상되는 전쟁을 연구하며, 방어가 최선의 방책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분명히 참호전으로 일관한 지난 전쟁은 끝까지 방어에 성공한 쪽이 이겼다.
그 결과 등장한 괴물이 마지노선(Maginot Line)이다. 당대 최고의 토목 기술이 집약돼 독·불 국경 350㎞를 따라 건축된 이 거대한 요새에서 프랑스군은 안전하게 전투를 펼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10년의 공사 끝에 1936년 마지노선이 완공됐을 때 독일도 이곳으로의 공격이 무모하다고 인정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40년 독일은 험준하고 중간에 룩셈부르크와 벨기에가 위치해 프랑스가 마지노선을 축성하지 않았던 아르덴 고지를 통해 프랑스를 침공해 불과 6주 만에 항복을 받아냈다. 그렇게 독일의 기습에 일방적으로 밀리는 동안 마지노선에 있던 100만의 프랑스군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만리장성이나 마지노선은 그 자체로는 흠잡기 어려운 훌륭한 군사 건축물이다.
하지만 고정된 시설에 의존해 스스로의 행동을 수세적으로 제한하도록 만들어버린 족쇄이기도 했다. 사실 정적인 방어물에 의지해서 동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기는 어렵다.
기업 경영도 이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급속히 성장한 데는 도전정신도 한몫했다. 하지만 최근 2·3세 경영자가 전면에 나서면서 요식업처럼 내수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보인다. 그렇게 수세적으로 변한 기업의 미래가 밝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 든든해보이지만 결국 나라를 구하지 못한 만리장성이나 마지노선은 그래서 충분한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 남도현
럭키금성상사 근무, 현 DHT에이전스 대표, 군사칼럼니스트, ‘무기의 탄생’ ‘발칙한 세계사’ 등 저술